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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330] 아, 고구려 ③
적장은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이라 하오
임동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17 06:30:20
 
 
이 무렵 남생은 부장 대극렴(大棘廉)과 함께 군사 3만을 거느리고 압록수 하구로 나아갔다. 그곳에 당도해 보니 당군이 이미 도착해서 도하(渡河)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생은 강을 사이에 두고 당군과 대치했다. 계필하력은 고구려군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경계심이 발동해 강을 건너지 못했다. 양군이 대치한 채 열흘의 시간이 흘렀다.
남생이 답답한 마음에 대극렴에게 물었다.
이렇게 대치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소. 무슨 수가 없겠소?”
대극렴은 병법에 능통한 장수였다. 대막리지에게서 금해병서(金海兵書)를 사사받고 전장을 누비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 금해병서는 연개소문이 저술한 전략과 전술에 관한 책이었다.
대극렴이 계책을 끄집어냈다.
벌써 9월 중순이니 조금 있으면 추위가 닥쳐 강물이 얼어붙을 겁니다. 그러면 저들이 걸어서 강을 건너올 것이니 그때 후방 산골짜기에 군사를 매복시켜 두고 못 이기는 척 슬쩍 퇴각하면서 당군을 유인하십시오. 그러면 당군이 신나서 산골짜기로 들어올 것입니다. 이때 기습하면 궤멸할 수 있습니다.”
남생이 듣기에는 그럴듯한 계략이었다.
저들이 압록수를 넘어오겠소?”
틀림없이 넘어옵니다. 계필하력은 용맹은 뛰어나지만 성미가 매우 급합니다. 첩보에 의하면 평양 땅에 진주한 소정방의 군대에 전달할 군량미를 대량 싣고 왔다 하니 서두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남생은 대극렴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압록수에서 남쪽으로 30여 리 떨어진 지점에 있는 골짜기에 2만의 군사를 매복시켰다.
 
갑자기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압록수의 물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를 본 계필하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군사들을 모았다.
드디어 압록수가 얼었다. 모두 강을 건너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곧바로 평양까지 내달리자!”
용기백배한 당나라 군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언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당군이 쳐들어오자 남생의 군대는 각궁을 들어 쏘아댔다. 그러다가 힘이 부친 듯 뒤돌아서서 달아났다. 당나라 군사들은 신바람이 나서 추위도 잊은 채 열심히 추격했다. 고구려군은 돌아서서 싸우다가 후퇴하기를 거듭하면서 당군을 산골짜기로 유인했다. 당군은 승리감에 취해 적이 쳐 놓은 그물인지도 모르고 발걸음을 옮겼다.
골짜기는 예상보다 깊었다. 앞에서 달아나던 고구려 군사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계필하력은 급히 채찍을 들어 군사들의 진격을 중지시켰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둥둥 크게 울리더니 좌우 언덕에서 통나무와 바위·유황 뭉치가 굴러 떨어졌다. 곧이어 불화살이 소낙비처럼 마구 쏟아졌다.
계필하력이 다급하게 외쳤다.
적의 함정이다. 후퇴하라!”
그의 외침은 군사들의 비명에 묻혀 버렸다. 염초와 시체가 타는 냄새가 천지에 진동했다.
계필하력은 너무도 분했다. 전투 경험이 일천한 남생과 같은 애송이에게 초전에 참패를 당했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다.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일단 살아남고 봐야 했다.
계필하력은 뒤따르던 몇몇 부하와 간신히 활로를 뚫고 산골짜기를 빠져나왔다. 그들은 한참 달려서 압록수 가에 이르렀다.
계필하력이 말에서 내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쉬는데 패잔병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서 몰려들었다. 나중에 점호를 해 보니 6만의 군사 중 4만이나 보이지 않았다.
애송이에게 처참하게 당했구나. 무슨 낯으로 도성에 돌아가 폐하를 뵙겠느냐.”
계필하력은 탄식하며 칼을 뽑아 들었다.
그가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려고 하자 주위에서 극구 말렸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장군께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마음이 움직인 계필하력은 칼을 내던지고 한숨을 내쉬었다.
패잔병은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고구려군이 맹렬히 추격해 오고 있었다. 계필하력은 남은 군사를 모아서 다시 압록수를 건넜다. 남생의 군대는 적의 낙오병을 베면서 추격을 계속했다. 계필하력은 싣고 온 식량마저 포기한 채 간신히 배에 올라 산동반도로 도망쳤다.
 
요동도행군이 압록수 전투에서 대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당 고종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한동안 씩씩거리기만 했다. 그는 계필하력이 돌아오면 참수하겠다고 별렀다.
이때 이세적이 계필하력을 변호하고 나섰다.
자고로 패배는 전장에서 늘 있는 일이라 했습니다. 이번에 패하기는 했지만 계필하력은 양대(兩代)에 걸쳐 충성을 바친 신하입니다. 이번만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소서.”
고종은 쉽게 분이 풀리지 않았다.
 
적장은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이라 하오. 백전노장 계필하력이 전투 경험도 일천한 애송이에게 당하다니 말이 되는가. 이 모든 게 그의 자만심과 나태함이 부른 참극이오.”
두 사람이 계필하력의 처리 문제를 두고 의논하고 있을 때 영주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그는 북방 철륵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고했다.
철륵은 고당 전쟁으로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여러 차례 사신 왕래를 통해서 연개소문과 뜻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기회를 엿보다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당의 변경을 급습했다.
당 고종은 골치가 아팠다. 주력군의 대부분을 고구려 원정에 투입했기에 철륵의 군대를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
고종의 불편한 심기를 헤아린 이세적이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계필하력에게 철륵 토벌을 맡기십시오. 그는 철륵 출신이니 누구보다 상대를 잘 알 겁니다.”
고종은 마침내 그의 죄를 사해 주고 철륵을 평정하게 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계필하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남은 군사를 이끌고 내주를 떠났다.
 
당의 누방도행군을 격파한 고문은 요동성에 머물러 있던 중 연개소문의 철군 명령을 받고 평양성으로 돌아왔다. 남생의 승전보에 기뻐하던 차에 고문의 군대까지 돌아오니 평양 사람들은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요동도행군이 퇴각했으니 이제 평양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당군만 몰아내면 되는 거였다.
한편, 평양성 근처에 진을 치고 있던 당군은 요동도행군이 고구려군에게 대패하고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 당장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보급이 어려워진 것도 문제였지만 평양의 혹독한 추위가 더 걱정이었다. 당군은 여름에 출병했기에 변변한 방한복도 없었다.
반면에 평양성의 고구려군은 국내성과 요동성에서 달려온 지원군을 합치면 13여 만의 정예병이 건재했고 5년 치의 군량을 쌓아 두고 있었다.
초조해진 소정방은 신라의 문무왕에게 사람을 보내 군량 원조를 부탁했다. 하지만 신라는 때마침 국상 중이었던 데다가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백제 부흥군을 상대하느라 당군을 지원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서력 6622월 초, 드디어 연개소문은 임아상이 이끄는 패강도행군의 진영을 공격했다. 갑자기 밀어닥친 한파로 폭설이 쏟아졌고 몹시 추운 날씨였다. 대막리지의 신호에 따라 평양성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3만의 고구려 철기군과 2만의 보병이 위풍당당하게 눈길을 밟으며 쏟아져 나왔다. 뒤이어 천둥 같은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구려 철기군이 당군의 영채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허를 찔린 당나라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다가 고구려군의 창칼에 맥없이 쓰러졌다. 그들이 흘린 선홍색 피가 하얀 눈을 붉게 물들였다. 뒤따라 도착한 고구려의 도부수 부대는 아직 명줄이 남아 있던 당군의 멱을 끊었다.
끔찍한 살육전이 끝나고 고구려군이 평양성으로 돌아간 후에야 평양도행군과 옥저도행군이 패강도행군의 영채에 이르렀다. 수효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당군이 시체로 변해 나뒹굴고 있었다.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당나라 군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옥저도행군 총관 방효태는 모골이 송연해지고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험한 파도를 헤치고 고구려 땅까지 와서는 단 한 번의 전투로 전멸했으니 누가 봐도 참담한 일이었다.
방효태가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 보니 군사들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기운을 북돋우려고 애썼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식량은 여전히 부족했고 날씨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추웠다. 그렇다고 당장 회군하자니 고구려의 역습이 걱정됐다.
 
사흘이 지난 후 연개소문은 군대를 동원해 옥저도행군의 영채를 공격했다. 이때, 방효태의 진영은 패수의 지류인 사수(蛇水) 유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먼저 각궁 부대로 적군의 영채를 둥그렇게 에워쌌다. 그 뒤에는 장창을 든 철기군이 포진했다. 궁수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수많은 화살이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었다. 당의 군사들이 온몸에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당군은 도망갈 힘조차 없어서 비명을 지르는 게 고작이었다. 뒤이어 고구려 철기군이 거칠게 말을 몰아 당군의 영채를 쓸어 버렸다.
방효태는 하늘이 노래지면서 땅이 꺼질 것 같았다. 수하 장수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소정방의 진영으로 도망치라고 권했다.
총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선대 왕들을 섬기며 과분한 은총을 입었다. 그런데 그분들의 유지를 받들기는커녕 나를 믿고 따르던 군사들만 잃었다. 구차하게 혼자 살아남는다고 해도 고개를 들고 살아갈 수가 없다.”
방효태는 칼을 들고 고구려 군사들을 향해 뛰어나갔다. 그의 아들 13명도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웠지만 결국 고구려군의 매서운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최후를 맞았다.
 
이제 남은 것은 소정방이 이끄는 평양도행군뿐이었다. 소정방은 평양성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기에 그나마 무사할 수 있었다. 다른 부대가 잇달아 몰살당하자 소정방은 덜컥 겁이 났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후퇴도 만만치 않았다. 막사 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이 오들오들 떨리는데 무거운 공성 장비를 끌고 삭풍(朔風)을 뚫고 나간다면 얼어 죽기 십상이었다. 더구나 퇴각한다고 곱게 보내줄 연개소문이 아니었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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