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신도 있긴 해요. 내가 믿는 신은 착하지만.”
하운이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신이 있다고 믿어요?”
“신을 안 믿어요?”
하운이 휙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설마 하운 씨도 누군가 우주를 설계했다고 믿어요?”
“신을 믿는 마음을 부정하진 않아요.”
하운은 긍정과 부정의 단계를 가뜬히 건너뛰어 대답했다.
“보이지도 않는 신을 믿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어요, 난.”
“안 보여요? 난 보이는데. 당신. 그리고 나 자신.”
하운은 웃지 않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인간은 보호받고 의지하고 사랑받고 싶어 해요. 원시 시대, 혼자 떨어져 있으면 쉽게 천적의 먹이가 되었을 테니까. 그래서 가장 믿고 싶은 신은 옆에 있는 당신이고, 가장 믿지 못하는 신은 자기 자신이 됐죠. 하지만 어느 날 깨닫게 된 거예요. 당신도 나처럼 연약하고 불안한 존재라는 걸. 그래서 멀리, 보이지 않는 데서라도 찾아야 했을 거예요.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고 보호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는 걸요. 그런 믿음조차 없다면 이 세상은 너무 넓고 외로우니까.”
내가 반박했다.
“신은 없어요. 사랑이 없는 것처럼.”
하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사랑이 없다는 건 지금 당신이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일 거예요.”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누가 그러더군요. 미래에 사랑을 남기고 싶다면 지금 사랑해야 한다, 과거에 사랑했던 기억을 남기고 싶다면 지금 사랑해야 한다.”
하운이 그 말을 한 사람을 떠올리는 듯 미소 지었다. 나는 또 보이지도 않는 대상에 대해 질투가 끓어올랐다. 사랑을 믿고 기대하고 희망한다는 것이 얼마나 미신적이고 어리석고 무모한 짓인지, 이별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것을 믿지 않는다면 이토록 명백하고 확실한 단 한 번의 삶을,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이 따분한 삶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 것일까.
“저 나무 이름이 뭔지 알아요?”
한동안 말없이 정원을 바라보던 하운이 입을 열었다.
나는 나무를 더 잘 보기 위해 몸을 일으켜 그녀처럼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 주황색 조명등 불빛을 받고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키가 작은 전나무였다. 나무는 바닷바람을 맞아 비틀어진 해송처럼 정원의 다른 나무와 달리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고 있었다.
“근데 나무예요.”
하운이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그런 나무가 있는 줄 몰랐어요.”
“넌 왜 그렇게 못생겼니? 하고 물으면 그래, 나 못생겼다, 근데 어쩔래? 하고 팔짱 끼고 째려보는 거 같이 생겼잖아요. 너 세상에 불만 있지? 하고 물어도 근데 어쩌라고? 하고 따지는 것 같지 않아요?”
하운이 앵 토라진 모양으로 나무를 흉내 내듯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등을 돌려 보이며 말했다.
“어릴 때 무슨 말만 하면 그런데? 그래서? 근데 뭐? 팔짱 끼고 서서 노려보며 꿈쩍도 하지 않는 애가 있었어요. 주먹 센 아이보다 그런 애가 더 강적이었죠.”
하운이 말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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