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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군사 행동을 고집하며 사실상 휴전을 거부해 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6명의 인질 사망으로 벼랑에 몰렸다. 휴전·인질석방 합의 요구를 외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 속에 작년 10월7일 하마스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결정적 고비를 맞이한 모양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가자 남부 땅굴에서 총살된 채 발견된 인질 대부분 휴전협상 성사 시 ‘우선 석방’될 예정이었다. 그 중 한 명인 허쉬 골드버그-폴린(23)의 장례식이 2일 예루살렘에서 치러졌다. 일곱살 때 가족과 함께 이주해 온 미국·이스라엘 이중국적자 허쉬는 23번째 생일 기념으로 노바 음악축제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장례식에 추모 인파 수천 명이 몰렸으며 이츠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과 제이컵 류 주이스라엘 미 대사 등이 함께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아들의 귀환을 위해 미 대통령·유엔 사무총장·교황 등을 만나는 등 전방위적 노력을 펼쳐 온 골드버그-폴린 부부가 지난 시간을 “긴 고문의 여정”으로 회고하면서 눈물지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헤르조그 대통령이 인질 보호 및 구출 실패를 인정하며 “이스라엘 국가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또 “인질 구출은 정치적인 목표도 정치적 분쟁이 돼서도 안 된다. 국민에 대한 국가 최고의 도덕적·유대교적·인간적 의무”라며 네타냐후 내각을 겨냥한 듯 “국가지도자가 즉각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현 상황을 전쟁 발발 이후 최대 시위로 전하며 1일 당시 텔아비브 약 30만, 전국 50만 명이었다고 보도했다. 회원 80만의 최대 노동운동 단체인 히스타드루트(이스라엘 노동자총연맹)는 휴전협상을 압박하고자 2일 총파업을 시작했다. 이스라엘 주요 도시 대중교통·쇼핑몰 등 일상도 마비된 가운데 60여 명으로 알려진 생존 인질 문제를 둘러싸고 나라가 두 동강 난 상태다.
이날 오전 7시부터 히스타드루트 주도의 총파업 개시에 맞춰 인질 가족이 참여한 시위대가 텔아비브 등지의 주요 교차로 10여곳에서 거리를 봉쇄했다. 반면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과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 등 시오니스트들은 이들이 하마스의 꿈을 이뤄준다며 비난했고, 이에 동조한 일부 도시들과 정착촌에선 총파업 거부를 선언했다. 갈등은 증폭될 분위기다.
당일 오후 6시까지로 예정된 파업이었으나 제동이 걸렸다. 법원은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 등 정부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경제와 무관한 정치적인 것”이라며 히스타드루트에 ‘오후 2시30분까지 파업 중단할 것’을 명한 것이다. 파업 중단 후에도 수천 명이 총리 관저 앞으로 몰려가 밤 늦게까지 시위를 계속했다.
정권 내홍 또한 격화 일로다. 장관들 일부의 이탈이란 연정 붕괴를 뜻하고 이는 네타냐후에게 정치적 죽음을 의미한다. 총리직을 물러나 면책특권을 상실하는 동시에 뇌물·배임 등 혐의로 기소될 전망이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1일 내각회의 때 “부상자를 홀로 버려 둬선 안 된다고 배웠다. 이는 도덕적 수치다. 인질의 생존을 바란다면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는 CNN 보도가 있었으나 이튿날 네타냐후의 기자회견 태도는 변함없이 강경했다.
이 자리에서 네타냐후는 “악의 축(이란과 대리세력)이 필라델피 축을 원한다”며 이곳의 이스라엘군 주둔 의지를 재확인했다. 필라델피 축(회랑)은 가자지구~이집트 국경 14 km의 좁다란 통로를 말한다. 1979년 이스라엘-이집트 평화조약으로 완충지대가 됐지만 이스라엘군이 지키며 무기 등 불법 물자 이동을 막아 왔다.
전례 없는 규모의 시위가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망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선 “휴전과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움직임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네타냐후 정권을 전복해 조기 총선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텔레그래프 역시 이번 인질 피살과 시위가 휴전협상 진전 및 네타냐후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하마스가 인질 추가 살해를 예고하며 휴전협상을 압박했다. 2일 알카삼 여단은 성명에서 “네타냐후가 협상 성사 없이 군사적 압박으로 인질들을 풀려나게 하겠다 주장한다면 이들이 관 속에 갇혀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임을 의미한다”고 협박했다.
앞서 하마스는 텔레그램 채널에 골드버그-폴린(23)·카멜 가트(40)·에덴 예루살미(24)·알렉산더 로바노프(33)·알모그 사루시(27)·오리 다니노(25) 등 생존 상태의 인질들을 내세운 45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잠시 후 추가 공개한 2분 남짓의 영상에서 예루살미는 고통과 생명의 위협을 토로하며 네타냐후와 정부를 향해 “당장 우리의 석방에 필요한 일을 하라”고 호소했다.
예루살미는 2011년 네타냐후가 상병 길라드 샬리트와 팔레스타인인 1027명을 교환한 사실을 들며 “이해 못하겠다, 난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말이냐” 되묻기도 했다. 당시 풀려난 1027명 중 한 명이 10.7기습의 기획·실행자이자 하마스 새 지도자인 야흐야 신와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일 익명의 미 당국자를 인용해 이스라엘-하마스 양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미국 주도의 휴전협상은 끝장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신와르와 네타냐후를 움직일 요소가 부족하다는 평가 속에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인질사망 규탄 성명에서 네타냐후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 등 자제하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데니스 로스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가 “당분간 (신와르는) 총파업이 네타냐후의 (휴전) 조건 완화로 이어질지 지켜보며 기다릴 것”이라고 짚었다. 2014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에 관여한 전직 미 국무부 관료 프랭크 로벤슈타인 지적은 한층 냉혹한 내용이다. “미사여구를 제외하고 네타냐후가 인질 석방을 우선시한 적은 없다. 생존 인질이 줄어 맞교환해야 할 팔레스타인 죄수도 적어지면 협상에 더 유리할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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