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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꽃으로 쓰는 역사 [39] 치자는 황금처럼 귀한 식물
노란 색소를 추출할 수 있는 치자 열매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2-02 01:43:00
 
▲ 치자꽃은 홑꽃인데 비해 변종인 꽃치자는 백장미를 닮은 겹꽃이다. 윤상구 사진작가
 
‘치자’라는 이름은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 치자나무 치(梔)는 치자 열매 모양이 술잔을 뜻하는 치(巵) 자와 비슷해 그 글자 옆에 나무 목(木) 자를 붙인 글자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입이 없음’ ‘말하지 말라’는 뜻을 담은 쿠치나시[口無し]라고도 불리는데 입을 오므린 듯한 열매 모양에서 온 이름이라 한다. 함부로 훈수 두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바둑판의 네 발을 치자 열매 모양으로 각지게 조각했다는 설도 있다.
 
치자꽃은 연유를 떠올리게 하는 고운 흰색으로 피어난다. 그런데 치자 열매에서는 황금빛에 가까운 노란색 색소를 추출할 수 있다. 빛깔도 곱고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으며 착색력도 강해서 치자 물은 예로부터 식용 색소로 많이 활용되었다. 
 
치자 물은 단무지는 물론 떡이나 전·튀김·음료·카레 등에 사용되어 음식의 풍미를 높여주고 약 캡슐이나 알약에 색을 넣는 데도 쓰인다. 또 인체에 직접 닿는 화장품이나 섬유 염색에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향수 품명 ‘가드니아’는 치자나무의 속명
 
▲ 치자꽃은 연유를 떠올리게 하는 고운 흰색으로 피어난다. 윤상구 사진작가
 
또 치자는 한방 약재로 쓰인다. 멍든 곳에 치자 물로 갠 밀가루를 붙이는 민간요법이 널리 전해져 왔다. 치자꽃은 맑고 진한 향기로도 유명하다. 치자나무는 실제 향수의 원료로 쓰이는데 향수 품명인 ‘가드니아’는 치자나무의 속명이다. 영국 식물학자 존 엘리스가 친구 알렉산더 가든의 이름을 따서 치자나무 이름을 지은 것이다.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꽃치자’는 변종인데 치자꽃은 홑꽃인데 비해 꽃치자는 백장미를 닮은 겹꽃이다.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꽃치자는 숨이 막힐 정도의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조선 전기의 문인 강희안은 자신의 원예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 “치자는 꽃 가운데 가장 귀한 꽃이며 네 가지 이점이 있다. 꽃 색깔이 희고 기름진 것이 첫째이고 꽃향기가 맑고 풍부한 것이 둘째다. 겨울에도 잎이 변하지 않는 것이 셋째이고 열매로 황색 물을 들이는 것이 넷째다”라고 예찬했다.
 
‘양화소록’에서 치자를 예찬한 강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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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안은 그림을 잘 그렸지만 그 사실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들들에게 “글씨나 그림은 천한 기술이니 후세에 전하면 도리어 이름만 욕될 뿐이다”라고 경계까지 했다. 글씨 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뒷전으로 미룬 까닭은 “사대부의 본분을 망각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희안이 그림 그리기를 아예 멀리한 것은 아니다. 그는 적으나마 명작 몇 점을 남겼고 경치보다 인물 비중을 더 크게 그린 그의 그림 양식은 당시 조선 화단에 유행이 되기도 했다. 또 “그림은 내게 있어 천지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도구다”라고 말했다는 기록도 있다.
 
강희안은 학자로서도 많은 일을 했다.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에 주석 붙이는 작업을 했고 ‘동국정운’ 편찬에도 참여했다. 단종 때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강희안은 성삼문·박팽년 등과 가까이 지냈으며 그들이 주도한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당시 주모자들을 국문할 때 세조가 강희안의 연루 여부를 묻자 성삼문은 “선왕의 명신들을 다 죽여도 강희안만은 남겨 두고 쓰시오. 진실로 어진 사람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덕분이었는지 이 사건으로 수많은 학자가 죽임을 당했지만 강희안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호조참의·황해도관찰사 등 고위 관직을 지냈으나 그는 입신양명에 큰 뜻을 두지 않은 듯하다. 강희안은 글 읽고 꽃 키우는 일을 더 좋아하여 근무하는 시간이나 부모님께 안부를 여쭐 때를 제외하면 꽃 키우는 데 전념했다고 한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원예서 ‘양화소록’
 
강희안은 “근래 여러 꽃 키우는 법을 배워서, 땅과 화분에 각기 심어 좋은 곳 따랐네”라는 자신의 시처럼 실제로도 열심히 꽃을 돌보면서 꽃 키우는 방법을 터득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원예서라 할 수 있는 ‘양화소록’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되었다.
 
이 책에는 강희안이 화분에 심어 키운 꽃나무 열여덟 종에 대한 글이 담겨 있다. 그는 △꽃나무 재배 요령 △개화를 앞당기는 법 △꽃이 싫어하는 것 △종자나 뿌리를 보관하는 법 등 경험으로 알게 된 꽃나무의 고유한 성질을 이 책에 실었다. 뿐만 아니라 △꽃에서 추구해야 할 점 △꽃을 기르는 뜻 등 감성적인 면도 다뤘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한 포기 풀이나 한 그루의 나무라 할지라도 마땅히 그것들이 지닌 이치를 생각하여 그 근원까지 파고 들어가서 그 앎을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고 그 마음을 꿰뚫어 통하지 않음이 없게 되면 나의 마음이 자연히 만물에 머물지 않고 만물의 밖에 뛰어넘어 있을 것이니 그 뜻이 어찌 엷음이 있으리오.”
 
이렇게 식물과 깊이 교감하고 오감으로 꽃을 즐기는 강희안에게 꽃 모양이 예쁘고 향이 강하며 쓸모까지 많은 치자는 황금처럼 귀한 식물로 여겨졌을 것이다. ‘가장 귀한 꽃’으로 강희안에게 사랑받은 치자꽃도 그 사랑에 걸맞는 다양한 즐거움과 유익함을 강희안에게 돌려 주었음에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귀염받는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하지 않던가.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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