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묘하게도 자포자기한 심정의 라라는 커다란 짐을 벗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유는 있었다. 기헌이 진옥에게 더 이상 비밀을 유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박기헌은 고뇌를 털어놨다.
“진옥이는 참 좋은 여자야. 차마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라라는 그렇게 서울을 다시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 라라 역시 진옥에게 상처를 주길 원치 않는다는 걸 기헌도 확인했다.
“나한테 진심으로 잘해줬던 언니예요. 언니는 힘들어도 끝까지 나를 마음에 보듬으려 했으니까. 그런 여자 거의 없어요. 대부분 이유 없이도 비난하고 배척하고 망가지길 원하죠. 진옥 언니는 달랐어요. 그런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옳지 않아요. 진옥 언니가 이겼어요. 이건 내가 아무리 힘들고 망가져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룰이에요. 나를 이기는 방법을 진옥 언니는 아는 거죠.”
“진옥이 라라를 진짜 부러워해. 아무한테도 그런 감정 가진 적 없는 여잔데……”
“오래전 2차 대전 당시 클라우디아라는 이름의 실존 러시아 여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타인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세울 수는 없다고. 나도 나를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의 불행 위에서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리고 싶지는 않아요. 진옥 언니와 기헌 선배의 행복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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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봄, 모스크바.
베라와 다리야는 ‘파랑새’를 여전히 ‘구로’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반감의 의지를 시위라도 하듯. 그것은 갑자기 나타난 라라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내비치는 행동이었다.
라라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다. 라라는 곧 대응법을 찾아냈다.
“그런 촌스러운 이름을 우리 한국에서 온 유좐들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농담이기는 했다. 라라를 골탕 먹여 포기하고 물러서게 하려는 그녀들에게 한국에서 온 사람들, 그들 표현대로 남한에서 온 ‘유좐’에 대한 그들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것으로 은근히 앙갚음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동포이면서도 이방인으로 처신했다.
구로반점이라는 이름은 다리야와 베라가 미스터 김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옛 주인 김후원이 서울 구로에서 오랫동안 주방장을 했던 나이든 할머니 요리사의 강권에 못 이겨 지은 이름이었다. 한국말 발음에 서툰 그녀들이 반점이라는 단어를 어려워해서 그저 구로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이다. 그게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줄 알았다가, 그냥 서울의 한 지명이라는 것을 알고 내심 서운하면서도 라라 앞에서는 끝까지 구로라고 불렀다. 이름이 바뀌면 다른 식당이 되어 자신들이 쫓겨날지 모른다는, 나름의 근거 있는 우려였다.
라라에게는 구로반점이라는 이름 자체가 트라우마였다. 그 식당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의 충격은 그만큼 컸다.
“구로반점이 뭐야?”
그 이름을 후배로부터 듣는 순간, 타박하듯 후배를 핀잔주며 따져 물었다.
“구로인지 목로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게 뭔데?”
“아직 모르고 있었어요? 준호 선배 거기서 식당하고 있는데……”
그 후배는 벌써 1년쯤 되었다며 자못 호들갑스럽게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아, 라라 언니는 준호 선배 거기서 식당하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괜한 이야기를 했나?”
모스크바에 다시 돌아온 후 벌어진 일들은 라라의 충격과 우려가 공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해주었다. 아들 주원이 다니게 된 학교의 학부모들인 기업과 대사관 주재원 부인네들이 구로반점, 구로반점 하면서 한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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