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를 핑계로 한 지자체의 수수방관으로 남해안 청정 바다가 오염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거제시 둔덕만 매립지에서 흘러나온 강알카리성 침출수가 1년째 바다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량 농지조성을 위해 매립재로 양질의 토사를 사용하기로 했지만 제철소 슬래그로 매립재를 변경한 탓이다.
거세시는 사업자에게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지만 이를 강제할 법적 조항이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제시가 법적 조항을 핑계로 강력한 조치를 미루는 동안 남해 청정바다 오염은 물론 마을 어민들의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철강쓰레기 매립에 오염되는 청정남해, 피폐해진 어부들의 삶
스카이데일리가 찾은 거제시 둔덕만 매립지는 소위 말하는 ‘버려진 땅’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매립지 대부분은 땅이 갈라지고 침출수를 막겠다며 덮어놓은 비닐(방수포)은 찢어진 채 너저분하게 방치돼 있었다. 행정당국의 원상복구 명령이 이행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다만 매립지 둘레만 복토가 이뤄져 흙 빛깔을 띠고 있을 뿐이었다.
매립된 땅 속에는 철강 제련한 후 남은 찌꺼기인 철강슬래그가 가득하다. 오염된 침출수를 만들어내는 주범이다. 매립지를 둘러싼 배수로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순물들이 곳곳에 가득했다. 매립지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는 배수로를 타고 차수벽 한쪽 수로를 통해 바다로 유유히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차수벽 너머 바다위에는 마을주민들의 주 생계원인 거제지역의 특산품 굴·미역 등이 대규모로 양식되고 있다.
마을주민 김 모씨는 “철강슬래그 매립지에서 흘러나온 강알카리성 침출수로 인해 식물성플랑크톤이 배양되지 않는다”며 “육상종묘 생산, 굴 채묘가 부진하면서 심각한 어업피해를 입고 있다”고 토로했다.
‘거제 둔덕면 하둔리 농지조성사업’은 둔덕만 간척지 새우양식장 8만732㎡를 매립해 농지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사업자는 민간업체인 ‘둔덕에스엠’이다. 2017년 1월 낙동강유역환경청 협의를 거쳐 같은해 2월 거제시는 수산자원보호구역 개발행위를 허가 했다. 낙동강환경청은 소규모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에서 매립재료로 부족토를 사용하도록 했다. 사업자 또한 부족토 21만7944㎡는 거제시 연초면 오비리 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수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업자는 ‘철강슬래그와 석탄재 배출사업자의 재활용 지침에 따라 순환골재인 철강슬래그는 성토재로 재활용이 가능하고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폐기물종합재활용업체에서 생산한 재활용순환골재는 별도 신고 없이 사용가능하다’는 거제시 답변을 근거로 2018년 2월부터 5월까지 광양제철소 철강슬래그 9만3940㎥를 매립했다.
거제시가 ‘철강슬래그 매립에 대한 위법사항은 없다’며 요지부동인 사이 사업자는 마음 놓고 철강쓰레기를 매립재로 사용한 것이다. 이후 철강슬래그가 땅으로 스며들면서 발생한 침출수는 바다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매립재가 철강슬래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둔덕만 5개 어촌계와 굴양식업, 멍게양식업, 육상종묘업 등 어업인들은 ‘둔덕만 어업인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매립공사 허가 취소 △매립지 원상복구 △피해조사 실시와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2018년 10월 도의원·시의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매립장 웅덩이에서 침출수를 측정한 결과 수소이온농도지수(pH)가 12.9로 나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건설폐기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건폐법) 시행령에는 ‘순환골재(철강슬래그)를 배수층 설치용으로 사용할 때는 pH가 9.8 이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사업자가 양질의 토사가 아닌 철강슬래그를 매립한 것은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소규모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에 ‘거제시는 협의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조치를 명하거나 공사 중지 명령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거제시를 강하게 압박했다.
철강쓰레기 매립 눈감은 거제시, 이제 와서 “법적근거 없다” 팔짱만
결국 거제시는 지난해 8월 낙동강환경청의 요청에 따라 ‘거제 둔덕면 하둔리 농지조성사업’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 했다’며 업체 측에 원상복구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원상복구 명령이 내려진지 8개월여가 지난 현재 매립지 둘레만 원상복구가 이뤄졌을 뿐 매립지 대부분은 원상복구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원상복구 불이행에 대해 과태료 이외에 별다른 제재조항이 없어 사업자가 버틸 경우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거제시는 지난해 12월 사업자를 상대로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했다’며 거제경찰서에 고발조치했지만 경찰조사 결과 사업자에 대한 기소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역 관계자는 “경찰은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혐의여부를 판단하는데 수산자원보호구역 관련법 재료원 규정에 대한 법령이 없어 기소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일이 글자 하나하나 법 관련 규정을 나열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경찰은 세부적인 구체적 조항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업자에 대한 기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낙동강유역청이 부과하는 과태료 이외의 제재 방법이 없는 셈이다. 원상복구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바다오염과 주민피해는 계속되고 있지만 거제시는 마땅한 피해방지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원종태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사업자측은 ‘철강슬래그가 순환골재이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다’고 주장하지만 낙동강유역청은 불법으로 판단한 사안이다”며 “하지만 원상복구 명령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강행되고 있고 현재 매립공사는 거의 완료된 상태다”고 전했다.
거제시 안전도시국 강석현 주무관은 “지난해 사업자에게 침출수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방수포 설치 등 최대한의 방법을 취하도록 조치했다”며 “임시 정화시설도 설치 등 시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한 상태다”고 밝혔다. 이어 “주민피해가 없어야 되는 만큼 주민의견을 좀 더 수렴할 예정이며 아직 조치계획은 결정은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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