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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진단] - 청년실업
“피할 곳이 필요해”…취업난에 ‘혼설족’ 자처한 취준생들
취업난에 설날 두려운 취준생들…가족 피할 장소·단기 알바 찾아 나서
경제전문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재현 우려”…‘캥거루족’ 확산 되나
심리전문가 “어른들, 비교 삼가야…청년들은 현실적 낙관성 가질 필요”
김찬주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2-13 00:42:24
▲ 2021 신축년 설날을 맞은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이 가정이 아닌 카페와 자취방 등으로 피신했다. 설날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지만 취준생들은 이날에 카페 등을 찾았다. 카페는 그들에게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 사진은 설 연휴기간 동작구 노량진 소재의 한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 ⓒ스카이데일리
 
신축년 설날을 맞은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이 가정이 아닌 카페와 자취방 등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설날 피신 명분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를 다행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취준생들은 “요즘 뭐하니”라는 어른들의 인사치레 한 마디에도 눈치가 보이다보니 불확실한 미래를 묻는 질문을 피하려 홀로 설을 보내는 이른바 ‘혼설족’을 자처했다.
 
설날 마음 둘 곳 없는 취준생…카페 자리·단기 아르바이트 있나 두리번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절 중 하나인 설은 취준생들에게 있어 마냥 즐거운 날이 아니다. 설 연휴기간에 찾은 노량진 카페들은 홀로 앉아 공부를 하는 ‘혼설족’ 취준생들로 붐볐다. 혼설족이란 홀로 설을 보내는 사람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설날 카페는 취준생에게 있어 취업에 관한 가족의 질문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인 셈이다.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지난해 1월16일 20세 이상 성인남녀 3390명을 대상으로 ‘설날에 듣기 싫은 말’을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이니(29.1%)’가 듣기 싫은 말 1위를, ‘취업은 언제쯤 할거니(26.6%)’가 2위를 각각 차지했다. 이처럼 가족들의 관심과 취업에 대한 질문 한마디가 취준생에게는 부담스러울 뿐이다.
 
스카이데일리가 취업·입시준비의 집결지로 불리는 노량진으로 취준생들을 찾아갔다. 즐비한 학원가 사이 한 카페에서 만난 이근택(28) 씨는 “수원 본가에서 취업준비를 하다가 여동생이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먼저 되니 가족들 눈치가 보여 4개월 전 노량진 고시원에서 자취를 시작했다”며 “부모님께서 ‘오빠가 동생보다’라는 등 비교하는 말씀을 종종 하셔서 수시로 다투다가 이래서는 마음이 삐뚤어질 것 같아 자취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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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업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 씨는 “부모님께서 설날만이라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자고 하셨는데 취업준비 한다고 거절했지만 진짜 이유는 여동생을 만나기 싫어서다”며 “부모님 잔소리야 입술 한번 깨물면 되지만 직장인인 동생의 모습을 보면 내가 잘못 살았나 하는 의심이 들어 스스로가 미워질까봐 그 이유 때문에 못가겠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설날에 가족으로부터 피신한 취준생들은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알바)를 하겠다고도 했다. 취업 사이트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직장인과 취준생 및 대학생 총 1212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2일 ‘올해 설 연휴동안 알바를 할 계획인가’를 조사한 결과 취준생 10명 중 7명 이상인 72.5%가 설에 알바를 할 계획이라 답했다. 알바를 하려는 가장 큰 이유로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라는 응답은 취준생이 76.1%로 가장 높았다.
 
▲ 설날 취준생들은 적은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알바)를 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취업 사이트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지난달 ‘설날 계획’을 조사한 결과 72.5%의 취준생이 설에 알바를 할 계획이라 답했다. 사진은 설 연휴기간 일주일 전, 노량진역 앞 사거리 구인구직 종이신문인 벼룩시장·교차로 가판대가 텅 비어있는 모습. ⓒ스카이데일리
 
3년째 소방공무원을 준비 중이라는 변재원(31·가명) 씨는 “공무원을 준비하기 전에 프리랜서로 설계도면 그리는 일을 했는데 코로나로 일거리가 없어 잘렸다. 지금 벌이는 없고, 오래된 취업 문제에 작년 설엔 공부 핑계, 이번 설엔 코로나 핑계 대고 혼자 있기로 했다”며 “코로나 때문에 시험도 원래 3월인데 4월 언저리로 연기됐고, 시험이 밀리니까 가족들도 돈이 얼마나 또 들어가냐고 묻는데 이 돈 때문에 정말 눈치가 많이 보인다”고 하소연 했다.
 
변 씨는 “취준생에게도 돈이 제일 큰 문제다. 다른 것을 다 포기해도 한 달 고정 지출이 학원비, 식대, 월세, 공과금 등 합치면 적어도 130만원이다”면서 “벌이도 없는데 큰돈이 나가니 부모님께 죄송하고 면목이 없어 이번 설에 단기 알바라도 있을 것 같아 벼룩시장 같은 걸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되는대로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설 연휴기간 전부터 노량진역 사거리 앞 벼룩시장·교차로 가판은 텅텅 비어있었다.
 
취업난에 2030청년 앞길 ‘캄캄’…전문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재현될까” 우려
 
청년 10명 중 9명은 “코로나로 취업이 어려워졌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2일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청년위원회가 지난해 11∼12월 구직 중인 29세 이하 청년 596명을 대상으로 한 ‘청년 구직자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코로나 확산 이후 구직이 어려워졌다’는 응답은 전체의 91.7%에 달했고, 미래의 고용 상황에 대해서도 73.9%는 부정적으로 내다보는 등 취업난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어 통계청이 지난달 13일 발표한 ‘2020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수는 2690만4000명으로 2019년 대비 21만8000명 감소했다. 1998년 IMF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다. 또 지난해 실업자 수는 110만8000명으로 전년 보다 4만5000명 늘어 200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정부의 단기 재정 일자리 공급으로 60세 이상 취업자는 37만5000명 늘어났다.
 
국내 주요 대기업이 정기공개채용 제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하거나 경력직 위주로 선발하는 것도 청년층에게는 취업문이 좁아지는 요인 중 하나다. 가령 현대차그룹은 이미 2019년부터 대졸자 공채를 없앴고, LG그룹과 KT도 수시채용으로 방식을 전환했다. 또 내년부터는 SK그룹이 100% 수시채용을 시작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하반기 중견기업 상시채용 2차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신채은(28·여) 씨는 “2개월 전에 외출할 일이 있어서 오전 8시에 지하철을 탔는데 출근하는 사람들이 목에 패찰을 걸고 있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며 “그 때 자리에 앉을 수 있어 신나했던, 추리닝을 입고 앉아있던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그 이후로부터는 지하철 탈 일이 있어도 출퇴근 시간은 기피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번 설에 어머니께서 자취방에 반찬이라도 갖다 준다고 했는데 거절했다. 그냥 왠지 모르게 부모님을 피하고 싶었다”면서도 “어머니와의 전화를 끊고서 ‘내가 도대체 뭐가 못나서,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자괴감이 하루에도 여러번 들지만 외로움도 버티면 단단해질 거라고 위안하면서 이번 설은 심신의 안정을 찾아볼 계획이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코로나, 기업을 옥죄는 법안 등의 영향으로 기업이 수시채용, 경력직 위주의 채용을 하면서 청년들이 2~3년 안에 취업을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가운데 졸업생들은 매년 쏟아져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잘못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던 세대들처럼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비관으로 부모님 밑에서 장기간 신세를 지게 되는 이른바 ‘캥거루족’이 대한민국 사회에 포진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 노량진 컵밥거리로 불리는 길거리에 설치된 ‘소망터널’에는 취준생들과 입시생들의 간절한 염원이 적힌 가지각색의 주머니가 빼곡히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스카이데일리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른들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곽 교수는 “어른들이 취준생을 타인과 비교해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이럴 때 청년들은 부정적 감정, 반감 심지어 무기력해질 수 있다”며 “어른들은 청년들이 많은 고민과 고심을 하고 있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별 의미 없이 비교하는 건 취준생들을 엄청나게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에게 “매일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먼 미래를 전망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언젠간 될 거란 마음을 갖고 노력하면서 좌절하지 않고 현실적 낙관성을 가져야 한다”며 “또 신체적인 활동은 심리적 감정과도 이어져 있기 때문에 운동이나 산책을 하면서 긍정적 생각을 하는 등 힘든 시기를 이기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취재진이 취업난에 힘들어하는 취준생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노량진 컵밥거리를 지나는 가운데 ‘소망터널’을 마주쳤다. 그곳에는 형형색색의 주머니에 취업과 입시를 염원하는 이들의 다양한 소망이 적힌 글귀가 빼곡히 적혀 매달려있었다. 대다수의 주머니엔 ‘취직기원’, ‘취업성공’을 염원하는 글들이 쓰여 있었다. 
 
[김찬주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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