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무분별한 플랫폼 규제가 첨단 금융기술 경쟁력마저 추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대형 플랫폼, 소위 ‘빅테크’로 불리는 기업의 독과점, 골목상권 침해 등을 제한하는 과정에서 소규모 핀테크 기업까지 규제범위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빅테크 기업과 핀테크 전문 기업은 엄연히 차이점이 있다며 규제 과정에서도 구분을 명확히 해 첨단금융 기술 경쟁력 저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권, 구글·아마존 해외 플랫폼공룡 경쟁자 네이버·카카오 때리기 골몰
최근 정치권의 대형 플랫폼 때리기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는 ‘플랫폼 국감’으로 불릴 만큼 주요 플랫폼 기업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대형 플랫폼 기업의 중·소상공인 영역 침해, 수수료 과다 부과, 광고 경쟁 유발 등의 문제가 주로 다뤄졌다. 국감 전 구글·애플의 갑질로부터 한국 기업을 보호하는 내용의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카카오와 네이버로 대표되는 대형 플랫폼 기업은 최근 ‘빅테크(BigTech)’로도 불리고 있다.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을 뜻하는 단어로 국내 금융산업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온라인 플랫폼 제공 사업을 핵심으로 하다가 금융시장에 진출한 업체를 지칭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카카오와 네이버 등도 인터넷 검색 기능을 중심으로 블로그·카페 등 각종 커뮤니티 및 전자상거래(e-commerce), 사회관계망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 등을 제공하다 금융시장에까지 진출한 케이스다.
정치권에선 빅테크 기업이 기존에 운영 중인 서비스 이용자를 새로운 서비스로 유입할 수 있기 때문에 타 분야 진출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고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제재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비난의 화살은 카카오에 더 집중되는 모습이다. 이용자수가 무려 4500만명에 달하는 메신저 서비스 ‘카카오톡’이 지닌 영향력을 앞세워 문어발식 화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올 6월 말 기준 카카오의 연결회사는 115개에 달한다. 해외법인까지 포함하면 158개다. 2016년부터 인수한 기업만 47개에 이른다.
국내 빅테크 기업은 플랫폼 사업 특성상 핵심사업 관계 기업의 수가 많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경쟁상대가 해외 빅테크 기업이라는 점과 코로나19 백신 예약 및 지도, 상생지원금 신청 및 사용처 등 국민에게 유용한 정보 제공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사용자는 국경에 관계없이 브랜드 선택하기 때문에 해외 업체와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국내는 카카오·네이버가 독점한다기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틱톡 등 해외업체가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고 우리가 시장을 뺏기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한국 플랫폼 규제의 강도에 대해 그는 “해외 업체와의 경쟁이 저해돼 시장을 잃게 될까봐 큰 두려움 있다”면서 “시가총액은 커졌지만 이동통신사보다 못한 수익 내는 상황에서 연구개발(R&D), 스타트업 인수, 새로운 투자도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코로나 외기를 성공적으로 이겨낸 것은 네이버와 카카오 등 자국의 빅테크 기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며 “자칫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가 국내 기업 규제로 바뀌어 역차별이 생길까봐 걱정이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치권 빅테크 때리기 유탄 맞은 핀테크 업계…금융선진화·소비자편익 악영향 우려
세계 최초로 ‘구글 갑질방지법’을 통과시킨 정치권이 국감소환, 관련 규제법안 마련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내 빅테크 기업에 대해서도 압박의 수위를 높이자 중·소형 핀테크 전문 기업들도 덩달아 울상을 짓고 있다. 지금까지 등장한 규제가 빅테크·핀테크를 구분하지 않고 있어서다. 금융상품의 정보 제공, 비교·추천 서비스를 ‘광고’가 아닌 ‘중개’로 간주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이 대표적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카드·펀드 등 금융상품을 비교 또는 추천하는 서비스나 소비자의 상담 의뢰로 제휴 보험설계사를 연결하는 서비스의 경우 “잠재고객 모집, 가입 유도 등 중개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투자 상품의 정보를 제공한 뒤 플랫폼 안에서 계약을 진행할 경우 “계약 주체를 플랫폼(빅테크·핀테크)로 오인할 수 있다”고 봤다.
올 9월 금융당국이 이 같은 규제 방침을 통보하자 빅테크·핀테크 기업은 일제히 해당 서비스를 중단 또는 변경했다. 일부 서비스는 이달까지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대출 비교 등 중개업자 면허를 얻으면 서비스 영위가 가능한 경우도 있으나 보험 비교 등은 현행법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와 빅테크와 핀테크 간 경쟁 및 혁신 촉진을 함께 잡겠다”는 의지와 달리 법적 보완 없이 양쪽 모두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소형 핀테크 기업들은 빅테크와 기업 규모에서부터 차이가 크며 사업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규제법안 마련 단계부터 엄격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 한 핀테크 기업 관계자는 “금융소외현상이 생기는 주된 이유는 흩어진 정보를 일일이 모아서 비교·검증하려면 의사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며 “소비자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 금융상품 정보를 제공하고 비교하는 서비스를 금융 외 사업까지 전개하는 빅테크 플랫폼과 같은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핀테크 기업의 플랫폼은 일반적으로 한두 개 업권이나 서비스에 특화돼 있다. 파운트(FOUNT), 에임(AIM), 불리오 등은 로보어드바이저로서 개인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알고리즘을 통해 자동으로 구성·관리해준다. 테라펀딩, 렌딧(LENDIT), 8퍼센트 등은 P2P대출로 자금 및 투자가 필요한 사람을 연결해준다. 뱅크샐러드, 보맵, 시그널플래너 등은 보험·카드·증권·대출 등 하나 또는 여러 업권의 금융상품 정보를 비교·추천한다.
이러한 핀테크 기업의 서비스들은 금융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접근성과 이해도를 높이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이나 카드가 없어도 결제할 수 있는 ‘간편결제’가 대표적이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에 따르면 20·30대 2000명을 대상으로 7월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간편결제(송금) 서비스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수단에 대한 질문(복수응답)에 응답자의 96.2%가 핀테크 플랫폼이라고 답했다. 은행 앱(60.4%), 신용카드 앱(48.6%), 삼성·LG페이 등 스마트폰 결제서비스(44.7%)가 뒤를 이었다.
간편결제(송금)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8.71점이었는데 매우만족(10점)을 선택한 비중이 34.5%로 가장 높았다. 간편결제(송금) 등 핀테크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간단하고 편리한 절차 등 편의성을 1위로 선택한 응답자가 89.1%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저렴한 이용료 및 수수료(8.4%), 기존에 없던 새롭고 혁신적인 서비스(2.5%) 등이 뒤를 이었다.
핀테크를 포함한 빅테크 규제 방향에 대해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와 다른 접근을 보이고 있다. 올 8월 세계 중앙은행 협의체인 국제결제은행(BIS)은 지금의 면허를 내주고 규제 관할권 아래에 두는 방식과 더불어 플랫폼별 맞춤형 규제를 조언한 바 있다.
신현송 BIS 조사국장 등은 “금융 서비스를 규제하기 위한 지금의 틀은 서비스 공급자가 해당 사업에 대한 면허(license)를 보유해야 하는 행위 기반(activity-based) 규제를 따른다”며 “유럽연합(EU), 중국, 미국 등은 특정 실체 기반 규제(entity-based rules)를 개발해 새로운 정책을 다룰 여지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지난해 비슷한 취지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조영은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은 “핀테크·빅테크 기업은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대안금융의 역할을 수행해 금융 산업의 외연을 넓히고 있으며 기존 금융기관과 협력 또는 경쟁함으로써 금융 혁신의 촉매 역할을 한다”면서 “다만 빅테크 기업이 주력 사업에서 획득한 데이터와 브랜드 인지도를 이용해 시장지배력을 획득하는 부작용은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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