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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과거 독재정권을 비판한 서적들을 찾는 독자가 급증한 가운데 이들이 책을 사는 이유는 독서를 위해서가 아닌 책의 ‘보존’을 위해서인 것으로 밝혀졌다.
17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필리핀 사람들이 독재자 페르디난드 E.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 관한 서적을 다량으로 사들이고 있는데 이는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2세가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이후 생긴 현상이다.
지난달 30일 17대 대통령에 취임한 ‘봉봉’ 마르코스 2세는 아버지 마르코스의 독재정권이 비판받았던 인권침해·부패·횡령 등의 사안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CNN은 권력을 장악한 마르코스 2세가 역사를 새로 기록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필리핀 국민 사이에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우려가 이미 출판된 역사관련 서적에 대한 수요 폭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016년 1월 출판됐던 ‘마르코스 계엄령, 다시는 안 돼(Marcos Martial Law: Never Again)’의 저자 라이사 로블스는 마르코스 2세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전 세계 독자로부터 이 책을 재출판 해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CNN에 전했다.
이 서적은 1972년 9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이후 14년간 그의 독재 통치 하에서 필리핀 국민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를 다루고 있다.
로블스는 “책 가격이 정가의 거의 2배로 뛰었다”면서 “그것도 한 두 권이 아니라 5권이나 10권 묶음으로 사람들이 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책의 갑작스런 열풍 뒤에는 현 대통령 마르코스 2세에 대한 필리핀 국민의 우려가 있다고 CNN은 전했다.
2020년 마르코스 2세가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그는 자신의 부모가 저지른 부패와 잔혹한 독재가 기록된 교과서를 개정할 뜻을 밝힌 바 있다.
인권단체들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수만 명의 필리핀 국민이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감금·고문·살해됐다고 주장한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1989년 사망)과 그의 부인 이멜다(93)는 또한 100억달러(약 13조원) 상당의 공금 횡령과 다양한 부패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독재자의 아들’이라 불리는 데 불편함을 드러내며 자신을 ‘가문의 과거’가 아닌 ‘자신의 행동’으로 판단해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식 연설에서 그는 아버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훌륭한 업적을 쌓았다며 칭송하기도 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학교에서 다루는 수업 교재의 개정에 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교재는 개정되어야 한다”면서 다만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교육·과학·이론적 적성 연마와 기술교육을 말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이 같은 마르코스 대통령의 발언은 그의 아버지의 독재통치를 경험했던 필리핀 국민에게 새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으며 이것이 독재정권을 다룬 서적의 주문이 쇄도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고 CNN은 분석했다.
아테네오드마닐라 대학 출판부의 알미라 만두리아오 마케팅 부장은 대통령 선거 이후 필리핀 역사서 주문이 몰렸다고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독재비판 서적이 판매금지될 것을 우려하게 됐다”면서 “책을 구입할 수 있을 때 사서 보관하겠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만두리아오에 따르면 이 대학 출판부 발행의 마르코스 독재정치와 계엄령 관련 서적 중 10권 이상이 품절된 상태다.
홍콩에 거주하는 한 필리핀인은 마르코스 독재 관련 서적 10여권을 주문했다면서 “우리 자신과 다음 세대의 교육을 위해 책을 구입하는 것이 불의에 대한 우리의 작은 저항이다”고 CNN에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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