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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 창간 12주년 기념으로 지난 20여 년 앞장서 ‘자유’의 가치를 역설해 온 경제학자 민경국(74) 강원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인간과 시장의 자율성’에 주목한 학자다. 1999년 하이에크소사이어티 창립을 주도해 이끌었으며 현재 한국자유주의학회(사) 회장으로서 학계와 시민을 향해 자유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일정한 도덕관 내지 기본원칙을 가진 개념이다. 개인의 자발적·창의적 활동 틀과 영역의 제공이 자유주의의 핵심이며 거기에 합리적 선을 그어 주는 게 ‘법의 지배’ 즉 자연법사상에 근거한 법치다. 의회 의석수로 밀어붙인 ‘법에 의한 지배’와 전혀 다르다. 법치를 통해 규칙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개인의 영역을 확립하는 것이다. ‘사유재산’ ‘경제적 자유’ ‘기업가 정신’ 이 세 가지가 함께하는 자유의 길을 헌법적 가치로 삼고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사회주의경제를 ‘노예의 길’이라고 설파한 하이에크를 1999년부터 적극 알리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경제학’이 생소하던 시절인데…
1970년대 독일 유학 시절 사회민주당(SPD) 집권으로 독일에 사회주의 정책들이 도입되면서 경기침체 심화를 목격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그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지만 도덕률·전통·법 등 행동 규칙을 지킴으로써 사회질서가 형성된다며 이를 ‘자생적 질서’로 불렀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경제학자들에게서 계승된 자유주의의 핵심 논리다. 이 자생적 질서에 의해 시장경제가 작동한다. 시장은 정부보다 똑똑하다.
18세기 말 자유주의의 선구인 영국의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독일의 칸트·훔볼트 등이 나타났다. 하지만 영국에서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 등이, 대륙에선 헤겔과 마르크스·엥겔스가 해석을 가하면서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와 적대감을 키웠다. 자본주의 전개 과정의 경제적 불평등 해소에 집중한 페이비언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가 주목받았고 미국에서마저 경제공황을 겪으며 뉴딜정책 등 ‘자유의 제약’이 공감을 얻는다. 자유주의의 몰락과 함께 자본주의 자체가 부정되기도 했다.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하이에크는 국가의 역할이 최소화된 ‘열린사회의 자생적 질서’를 말했다. 원칙적으로 개인의 계약·소유권·책임에 대한 자생적 질서가 공고해지는 곳이 바로 문화적 진화의 도달점이다. 서구에선 ‘큰 정부’를 통한 복지 확대 등 사회주의적 요소의 부작용이 1980년대 이후 자유주의의 복권을 불렀다. 이를 ‘신자유주의’로 부르는 것에 난 비판적이다. 자유주의를 향한 적대감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탈규제·민영화·복지 축소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 모두 고전적 자유주의의 범주에 포함된다.
-한국 현대사를 ‘자유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시각이 신선하다.
우리나라에선 자유에 대해 ‘정치적 권리의 확장’ 측면만 주목해 온 편이다. 실제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적 자유의 확장을 통해 산업화를 일궜다. 국가주도형이었으나 공장에 나가든 노점상을 하든 ‘먹고살 자유’가 확대됐다는 게 중요하다. 노동운동을 강제하고 탈퇴도 막는 등 자유의 옥죄임 현상이 오히려 노동조합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전두환 대통령 역시 시장자유의 수준을 높였다는 점에서 재조명할 수 있다. 그는 경제 부문에서 적극 자유주의를 펼치려 했다. 외자를 적극 끌어들였으며 시장의 장벽을 낮췄다.
1987년 개정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가면서 자유에 반하는 경향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본다. 경제민주화란 명분으로 추진된 정책들이 사실은 경제의 숨통을 틀어막는 것들이었다. 전두환정부가 물가안정을 실현한 반면 87체제는 민주화의 이름으로 ‘저성장의 기조’를 제도화한 셈이다. 민주화란 나눠먹기(평등)보다 우선 자유의 확장이어야 하는데 ‘규제’를 합리화해 시장의 생명인 자유를 억압하게 만든 것이다.
소련·동유럽권 붕괴 직후 민간주도 경제, 시장의 개방화 등을 위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된 바 있다. 유럽의 복지 모델과 동아시아 발전국가 모델이 혼합됐는데 이게 결국 경제위기를 불러 다시 큰 정부를 만들고 경기침체와 빈곤층 확대로 이어졌다. 한국도 그랬다. 경제민주화를 중소기업·노동자·소액주주 보호·지원에만 적용하며 대기업과 대주주 등 강자 규제의 허무맹랑한 논리로 썼다. 시장을 ‘약육강식의 현장’ ‘악한 존재’로 보는 논리가 자리 잡으면 나라의 미래는 뻔하다. 경제민주화 역시 ‘경제 자유의 확장’으로 대체돼야 한다.
-권위주의시대에도 자유가 부정된 적 없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자유를 향한 길’ 위에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자 ‘자유’를 헌법에서 지워 버리려 했다. 한때 ‘자유주의자’를 자처했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자유는 반독재·반체제 투쟁의 수단일 뿐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박정희정부는 사유재산을 보호했고 중화학공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개인에게 ‘먹고살 자유’를 보장했다. 통상국가로서 세계를 향한 문호도 열려 있었다. 정부주도 성장 시대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자유를 부정한 적은 없다.
기독교(프로테스탄티즘)의 역할도 크다. 자본주의의 중심에 기독교가 있는 게 우연이 아니다. 기독교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도덕성을 다른 종교보다 훨씬 강조한다. 근대자본주의 폭발적 성장기의 모순 속에서 자유·인권·법치를 도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서 ‘시대적 소명’을 읽어낸 듯한 평가를 했는데…
윤 대통령 취임사는 ‘자유 선언’이라 할 만하다. 이승만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들로부터 못 들어 본 수준이다. 윤 대통령은 초(超)저성장·대규모 실업·양극화 심화 등 경제 문제의 해법을 ‘시장 주도의 자유’에서 찾았다. “정치는 ‘반(反)지성주의 성격’ 때문에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면서. ‘반지성주의’란 사실상 자유의 규제를 말한다. 문재인정부는 반지성주의를 따른 셈이다. 윤 대통령의 자유론엔 정부 주도가 아닌 시장 주도의 자유관이 녹아 있다. 이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정체성 회복이 윤석열정부의 시대적 소명이기도 하다.
저마다 개인의 관심과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할 수 있도록 자유주의 사회질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로크·칸트·흄·스미스 등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법치 실현’ ‘정의 구현’ ‘헌법 정신’ 위에 선 국가, 자유주의에 의한 국가를 추구했다. 이를 기초로 한 시장경제의 질서가 확립·유지될 수 있도록 시장에서 일어나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억제 가능하게 할 행동 규칙을 헌법을 통해 확립해야 한다.
-‘자유’를 적대시하는 것은 반(反)대한민국 세력일까?
직·간접적으로 그렇게 보인다. 예를 들면 유엔사 해체·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세력, 종북·친중· 친러 세력. 모든 정부엔 사회를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리바이어던’ 즉 반(反)자유주의적 성격이 있다. 반면 자유주의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중시하며 개인 및 기업의 시장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려 한다. 반(反)기업 정서와 상대적 박탈감 조장, 나아가 개인의 삶을 책임져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정부를 경계해야 한다.
인류가 30~150명 정도 그룹을 지어 수렵·채집으로 살던 시절엔 자연이 준 것에만 의존했다. 집단적 삶 위에서만 생존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태생적으로 사회주의자다. 시장경제의 ‘경쟁’과 ‘적자생존’ 측면이 잔인해 보일 수밖에 없고 소득불평등 역시 약자 착취의 결과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만 강조하면 사회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화 한다.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구속해 ‘노예의 길’로 가게 만든다.
문재인정부의 탈(脫)원전, 최저임금 대폭 인상, 비정규직 철폐, 분양가 상한제, 소득주도성장 등의 정책은 모두 국가중심 분배에 치우쳐 있다. 그런 기조의 극단이 바로 ‘최고 존엄’ ‘1인 지배’ 아래 수백만 인민을 굶겨 죽인 체제의 출현이다. 북한의 장마당을 보라. 자유만 주면 알아서들 먹고산다. 자유를 없앨수록 무능한 개인들이 늘게 돼 있다.
-대한민국에서 자유주의가 가능할지 회의적 시각도 강하다.
모든 선구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앞서 나가면 후발주자들은 선구자들의 체험을 공유하며 자기가 속한 곳에서 그 이상을 구현하고자 한다. 유권자 개개인의 성숙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이끌어 나가는 입장에서 민도란 늘 충분치 않기 마련이다. 미숙한 인간들의 사회에서 ‘머릿수’가 결정짓는 시스템인 ‘민주’를 보완할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종교 또한 그중 하나다.
자유와 민주가 어디까지 병존 가능한가, 늘 의문을 가져야 한다. 민주를 자유 확립의 수단으로 삼는 게 맞다. 그 선후를 뒤바꾸면 개인의 자유가 선거 결과로 결정되고 만다. 재차 강조하지만 자유주의에서 중시해 온 법은 개인의 자유 및 재산권 보호를 위한 것이다. 자유와 재산권은 한 인간이 노예가 아님을 증명할 두 가지 핵심 증거다.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민주화 세력의 ‘큰 정부 지향’은 자유주의적 법치와 배치된다. 얼마 전까지 한동안 우리나라에선 미국형 ‘맨큐 경제학’ 류의 개입주의 경제학이 주류였다. 정부 간섭을 합리화한 논리, 시장경제엔 정부의 통제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다. 복지가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자유주의를 외치면 극우로 보이는 착시현상도 발생했다.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 프로필=△1949년 강원 홍성 출생 △1972년 서울대 독어독문과 학사 △1980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경제학 석사 및 1984년 박사학위 취득(존 롤즈 정의론의 질서정책적 의미에 관한 연구) △1985~2014년 강원대학교 경제·무역학부 교수, 강원대 부설 사회과학연구소장과 프라이브르크대학 객원교수 등 △2012~2014년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사)한국자유주의 학회 △2016~강원대 명예교수 △2021~ 한국경제 다산 고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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