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침체로 중신용자들의 신용 위험이 고조되는 가운데 정부가 경제 허리를 보호하기 위한 금융 안전망 구축에 나섰다. 정책과 민간의 경계를 허물고 자율적인 금리 인하를 유도해 중신용층이 고금리 늪에 빠지지 않도록 ‘금융 사다리’를 보강한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27일 서울 동작 KB 희망금융센터에서 제4차 ‘포용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개최하고, 중신용층의 금융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중금리대출 활성화 방안과 민간 금융권의 포용금융 이행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회의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진흥원 등 정부·유관기관 관계자와 은행·저축은행·여신금융협회장, 학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우선 이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중신용자는 상하 이동성이 큰 민감한 계층으로, 이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을 제공하는 것이 포용금융의 핵심”이라며 경기 위축이 중신용자에게 미치는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방위 대안을 제시했다.
가장 큰 변화는 정책 중금리 상품인 사잇돌대출의 공급 요건 개편이다. 그간 다소 포괄적이었던 공급 대상을 ‘신용 하위 20~50% 구간에 70% 이상 공급’하도록 규정했다. 중금리대출의 마중물이라는 사잇돌대출 도입 취지에 맞게 실제 도움이 필요한 중신용자에게 자금이 집중되도록 한 조치다.
신용 하위 20%에 해당하는 저신용자는 금융기관 출연·재정 지원에 기반해 더 낮은 금리로 더 많은 자급을 공급한다. 올해 안으로 정책서민금융 총 12조 원을 공급하며 햇살론 금리를 15.9%에서 12.5%로 인하해 금융 소외 방지에 나선다.
공급 채널도 확대한다. 기존 은행, 상호금융, 저축은행에 더해 카드사와 캐피탈사(여전업권)를 사잇돌대출 취급기관에 추가하면서 연간 약 5000억 원의 추가 투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8~12%대 금리 구간의 ‘금리 단층’ 해소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성장성 있는 중신용 소상공인을 위해 한도를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상향한 전용 상품도 신설한다.
사잇돌대출에 이은 민간중금리대출 제도도 손질한다. 금융회사가 스스로 금리를 낮춰 중금리대출을 공급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중점을 두고 금리 산식 개선으로 조달 금리 등 대출원가 변동분을 매년 반영하도록 했다. 예보료 제외 등을 통해 업권별 금리 요건은 최대 1.25%p까지 인하한다.
또 제2금융권 민간 중금리대출을 금리 수준에 따라 1·2형으로 분리하고, 더 낮은 금리를 제공하는 기관에는 영업 구역 내 여신비율 우대(200% 적용) 등 파격적인 규제 완화를 제공한다.
이날 회의의 주된 내용 중 하나는 KB금융의 포용적 금융 이행 방안이었다.
이창권 KB금융지주 미래전략부문장이 2호 안건으로 ‘KB 국민행복 희망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과 서민을 위한 금융 지원과 맞춤형 포용금융을 확대해 나간다는 뜻을 밝혔다. 2030년까지 총 17조 원을 투입하고, 이중 10조5000억 원을 서민·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을 지원에 집중한다는 계획이 골자다.
우선 5년 초과 연체채권에 대해 자체 소각 및 부채 경감을 추진하며 취약차주에 대한 채무 감면을 실시한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나 고령층·청년층에 대해서는 원금의 최대 60~90%까지 감면을 실시, 이들의 조속한 경제 복귀를 돕는다는 방침이다. 올해에만 약 1만2000 명의 채무 2785억 원이 정리를 앞두고 있다.
아울러 소득 증빙이 어려운 프리랜서나 배달 플랫폼 라이더 등 청년 긱워커(Gig worker)를 위한 전용 미소금융 상품도 도입한다. 금리를 점진적으로 낮춰주는 ‘Step Up, Step Down’ 프로그램을 적용한 청년 새희망홀씨 상품도 선보인다.
‘KB희망금융센터’를 통해서는 연체 차주에게 전문적인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등 정서적 자활까지 지원한다.
지난해 말 대통령 지시 사항에 따른 사회연대경제조직 자금 지원 확대 방안도 점검됐다. 은행권은 사회적기업 등에 2028년까지 총 4조3000억 원을 대출할 계획을 밝혔는데, 지난 3년 대비 약 18.3% 증가한 규모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의 민간 금융시장 역할 확대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지속 가능성을 위한 보완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남재현 국민대 교수와 이수진 금융연구원 박사는 “중금리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신용평가 역량 축적이 필수적”이라며 “제2금융권의 대출 심사 능력을 정교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특정 금리 구간에 대출이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고, 차주의 실제 위험도에 기반한 합리적 가격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번 대책은 정부의 재정 지원(사잇돌대출, 정책서민금융)과 금융권의 자발적 참여(민간 중금리, 채무조정)를 이분화하면서도 유기적으로 결합했다는 데 의미가 깊다.
이억원 위원장은 “포용금융의 핵심 과제는 중신용자가 금융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라며 “민간 금융사가 서민층에게 합리적인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중금리 대출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또 “앞으로도 재정과 민간의 조화로운 협업을 통해 저신용자와 중신용자를 모두 아우르는 진정한 포용금융을 구현하겠다”는 발언으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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