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양력 10월8일 새벽, 일본군이 사다리로 광화문을 넘어가 궁궐문을 열어젖혔다. 칼잡이와 군인들은 순식간에 궁궐 안으로 들이닥쳤다. 경복궁 깊이 건청궁은 지난밤 연회의 흔적을 지니고 막 잠들 참이었다. 궁궐을 지키던 충신 홍계훈은 일본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이 일은 1894년에도 일어났었다. 7월23일 새벽에 그들은 아무 맥락 없이 경복궁을 쳐들어왔다.
건청궁 옥호루 앞에는 망연히 앉아있는 사람이 많다. 야생화가 피어있는 계절, 그곳에서 한 여인이 무참하게 죽었다. 숨이 채 끊어지기도 전에 굴욕을 당했고 불 살라졌다. 그런 사연 때문일까? 옥호루 앞마당은 검붉은 핏자국이 남아있는 듯하다. 바람과 비가 그 흔적을 지우려 했건만 세월을 건너와 남은 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양 열강의 웅성임을 무시하고 일본인들은 그녀를 죽였다. 왜였을까? 사실상 그녀가 죽은 날은 1년 전 갑오년 7월23일이다. 이웃나라를 손에 넣고 싶었던 일본이 나라를 접수한 날이 그날이기 때문이다. “조선 왕궁에 대한 위협적 운동 계획”을 실행하려고 일본 공사의 명령을 받은 8천 명의 군사가 경복궁을 쳐들어왔다. 이 작전의 당일 목표는 “국왕을 포로로 잡아(받들어) 수호한다”는 것이었다. 오전 4시 20분부터 7시 30분까지, 약 3시간에 걸쳐 그들은 왕궁을 습격해 전투를 벌였고 국왕 부처를 포로로 잡았다.
점령 당일 그들은 무기를 탈취했고 내별고의 국보를 실어 날랐으며 금궤와 은궤도 약탈했다. 왕조의 전통과 유산을 모두 가져갔다. 조선은 이날 완전히 “털렸다”. 무엇보다 국왕 부처를 포로로 삼아 모든 국권을 장악했다. 지금으로 치면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틀어쥔 것이다. 궁궐이 장악되자 군사들이 오후 2시부터 궁 밖에서 맹렬히 저항했으나 포로가 된 고종의 명으로 울분하며 해산했다. 오후 6시경에 일본군은 경복궁을, 아니 조선을 손에 넣었다. 1894년 7월23일은 조선이 망한 날이다.
이후는 ‘광복’을 위한 치열한 날들이었다. 다음 해 을미왜변은 왕후가 외교력으로 나라를 되찾으려다가 살해된 사건이며, 그 다음 해 아관망명은 왕이 치외법권인 러시아 공사관에 망명정부를 세운 일이다. 조선은 자멸한 것이 아니다.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것이다.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집요함이 있었다. 하지만 1894년의 그들은 아직 힘이 증명되지 못한 상태였다. 일단 조선의 심장에 못을 박은 후 열강의 눈치를 살폈다. 안으로는 조선의 인부와 우마를 강탈했고 군량미를 챙겼다. 침략을 확고히 하려고 곳곳에 군용 전신선을 가설했다. 그들은 마비돼 가는 조선을 완전히 차지하려고 러시아와도 싸웠다. 물론 그때도 기습이었다. 진주만 습격처럼.
시청에서 광화문 지역은 유독 외국인이 많다. 서울시티투어버스의 물결도 만만치 않다. 도심의 궁궐에는 한류를 사랑하는 관광객들이 몰린다. 그들은 아름다운 기후와 전통을 즐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의 후손들은 알아야 한다. 조선이 침략당해 망한 날을, 궁궐의 아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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