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약 1년 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선거제도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과 시민단체들은 다양한 정당이 원내로 진출할 수 있는 선거방식인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동안 입장을 달리하던 자유한국당 또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 선거제도 개편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그러나 의석의 다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소극적인 입장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개편 등을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아직까지 구성되지 않아 선거제도의 개편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독립적인 협의체 구성을 통해 국민적 협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 득표율 통해 전체 의석수 배분, 소수 정당에 유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원 선거와 정당 비례 선거가 결합된 방식으로 ‘혼합형 비례대표제’ 또는 ‘혼합명부 비례제’ 등으로 불린다.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은 지금의 비례대표제와 동일하지만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의석 비율과 비례대표의 배분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활발히 운영되는 국가로는 독일이 꼽힌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로도 불리는 독일식 선거제도는 16개 주의 인구 비례에 따라 지역구를 배분하고 동시에 지역구와 동일한 정당명부(비례대표) 의원 정원을 배분한다. 정당명부 의석의 배분은 각 주별 득표 비율에 따라 결정되는데 지역구와 정당명부 정원을 합친 전체 의석을 기준으로 배분한다.
예를 들면 서울의 지역구 의석이 50석이면 비례대표 의석 역시 50석을 배분한다. 의석 배분은 정당의 득표율을 기준으로 나눈다. 만약 A당이 서울에서 40%의 정당득표율을 받았다면 지역구+비례대표를 합쳐 40석을 얻을 수 있다. 단 전국 득표율이 5%를 기록하거나 3개 이상의 지역구에서 승리한 정당에 한해서만 정당명부 의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초과의석’ 문제가 변수로 작용한다. 초과의석은 정당명부 의석으로 확보한 의석이 지역구 당선자보다 적을 경우 발생한다. 예를 들면 B당이 서울에서 지역구 의원을 30명을 배출했으나 정당 지지율이 20%에 불과한 경우 서울 지역에서 20석의 의석만 가져야 하는 B당은 10석의 초과의석이 발생한다.
이 때 지역구 당선자인 만큼 10석의 의원직은 유지되기 때문에 서울의 총 의석수는 110석으로 늘게 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초과의석의 발생으로 인해 기존 의석수 보다 더 많은 의석이 나오기도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요구하는 국내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지금의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바탕으로 한 선거제도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전국 570여 노동·시민단체가 연대한 정치개혁공동행동은 현재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 체제의 경우 정당의 지지율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사표(死票)가 다수 발생하고 득표와 실제 의석 간 불일치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개혁공동행동이 제시한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인구 14만명 당 국회의원 1명을 기준으로 해 전체 의석을 360석으로 늘리는 방식이다. 지역구는 기존 방식대로 253석을 유지하고 비례대표 의석만 107석으로 늘렸다. 단 현재 국회에 배정되는 연간 예산 6000억원은 동결했다. 초과의석으로 인한 의석 증가는 다른 정당의 의석을 덜 분배하는 방식으로 수를 맞춰 독일처럼 의석이 늘어나는 현상을 방지했다.
다만 비례대표 선거구의 크기는 아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전국 단위의 경우 비례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중앙 집권화가 우려되고 권역별 비례제의 경우 호남과 영남 등 일부 지역의 특정 정당 독점을 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치권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선호하고 있다.
김현우 비례민주주의연대 활동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비례대표 선출 방식에 대한 개정도 필요하다”며 “그동안의 비례대표제는 공천 비리가 많이 발생했던 만큼 민주적 공천을 법제화 하는 방안이 같이 수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물살 탄 선거제도 개혁 움직임…실제 현실화되기 까진 갈 길 멀어
정치개혁공동행동과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소수정당들은 지난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한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했다. 이들은 “현행 선거제도는 승자독식 중심의 구조를 띄고 있어 표의 등가성을 깨뜨리고 민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며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가 정치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시민의 참정권을 제약하는 독소조항도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의 선거제도는 전면적 개혁이 불가피하고 한국정치의 변화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실한 과제다”며 “정치장벽을 깨고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치개혁과제도 한시 바삐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선거제도 개혁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긴 했지만 현실화되기 까지에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선거제도 개혁의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는 국회 정개특위는 아직까지 출범조차 못 했다. 지난 7월 6개 비상설특위의 구성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의석수 배정을 두고 각 정당 간에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서다.
여야는 정개특위에 한해 민주당 8석, 한국당 6석, 바른미래당 2석, 비교섭단체 2석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타 특위의 인원 배분도 동일하게 맞추고, 동시에 출범하자고 주장하며 특위 명단 제출을 거부했다. 특위 구성이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는 동안 국회는 국정감사에 돌입했다. 결국 11월이 지나서야 정개특위 구성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시민들은 국회가 더 이상 늦장을 부리지 말고 정치권이 서로 협의해 선거제도 개편 요구에 화답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학생 강민구(28)씨는 “국회의원들이 매번 자신들의 이권에 맞춰 싸우느라 협상이 늦어졌는데 이대로라면 21대 총선에서도 기존의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우려를 표했다.
직장인 조준호(51) 씨는 “그동안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담론이 형성되지 않았던 만큼 이제는 민의를 반영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다양한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지지하는 만큼 국회의원 수가 배분되는 형식으로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선거제도 개혁과 선거구 획정 등을 논의하는 독립적인 기구를 구성해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지난 20대 총선에서도 정당별 유불리 싸움에 선거구 획정이 선거를 2개월 앞두고 마무리 됐다”며 “그동안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협상이 지연되거나 당파적 타협으로 운영됐는데 이제는 사회적 공론화를 위한 기구의 설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한빛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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