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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황영택 휠체어 성악가 겸 전 테니스 국가대표

“장애시련 단련된 후 삶의 희망노래 널리 전하죠”

두 차례 사고로 인한 좌절과 방황…이젠 희망 주는 도구로 쓰이는 삶

김진강기자(kjk5608@skyedaily.com)

기사입력 2019-11-05 00: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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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영택 성악가(사진)는 그동안 1420회 강연·공연·방송출연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장애인 성악가다. 그는 장애를 겪으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됐고 지금도 삶의 고난을 겪고 있는 이들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성경 욥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사탄의 시험으로 전 재산과 자식들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을 연단시키기 위한 것임을 신뢰한 욥의 고백이다.
 
장애인 성악가 황영택. 건설회사 재직 중 크레인사고로 하반신 마비, 휠체어테니스 국가대표, 방콕아시안게임 동메달, 오른손바닥 인대파열, 수능입시를 통해 성악과 졸업, 1420회 강연·공연·방송출연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장애인 성악가. 대중에게 알려진 그의 이력이다.
 
26살에 크레인사고로 하반신 마비…좌절에 술로 방황, 자살시도까지
 
하지만 ‘희망과 꿈을 전하는 메신저’라는 피상 너머로 그의 지난(至難)한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면 황 성악가를 ‘단련된 정금(精金)같은 사람’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27년의 세월동안 지옥 같은 절망과 기적 같은 극복을 수차례 거치며 단련된 그의 희망 메시지는 지금도 ‘울림’과 ‘감동’으로 우리 곁에 다가서고 있다.
 
경기 부천의 자택 앞 한 카페에서 만난 황 성악가는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이었다. 인터뷰 내내 겸손한 어투와 자세. 첫 대면인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려는 배려가 엿 보였다. 
 
“많은 허물을 가진 제가 장애를 겪으면서 오히려 더 삶의 깊이를 느끼게 됐죠. 진정한 삶의 의미와 철학을 배우게 된 같아요. 장애를 가진 후 세상을 보는 눈이 더 깊어 진 거죠. 마음과 육체의 고통 속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제 삶의 이야기와 노래를 통해 위안과 희망을 주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부족함이 허물이 아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죠. 자신에게 주어진 좋지 않은 환경들은 자신이 더 훈련되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모티브인 셈이죠. 그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찾는다면 삶의 의미와 보람도 커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 황영택 성악가는 26살 젊은 나이에 크레인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됐다.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술로 방황하면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연히 접한 테니스는 그의 삶에 목표를 심어주었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 계기가 됐다. ⓒ스카이데일리
 
황 성악가는 26살이던 1992년 지방의 한 중견 건설회사에 다니던 중 크레인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척수손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의식을 잃은 지 10일 째 깨어난 그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으로 건설현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그에게 ‘평생 걸을 수 없다’는 주치의의 진단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의식이 깨어났는데 너무 아팠어요. 이틀정도 잠도 못 잘 정도로 통증이 심해서 나중에는 모르핀이라는 진통제를 맞았는데도 통증이 멈추지 않더군요. 병원에 있으면서 온갖 행패를 부렸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링거줄도 뽑아버리고 그랬어요. 극심한 통증에다 다리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사람이 큰일을 겪으면 무아지경이 돼요. 그때는 너무 힘들고 외롭고 불안하고, 어떤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있었던 것 같아요. 퇴원해서 6개월 동안 술에 취해 방황 했죠. 수차례 죽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안 되더군요. 만취상태에서 깊은 강물에 뛰어내리려 해도 다리를 넘어 갈 수가 없었고, 차도에 뛰어들었지만 차들이 피해 가더군요” 방황의 시간을 회상하는 동안 그의 멋쩍어 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나 팔뚝만한 크기의 아들을 보는 순간 ‘아 내가 아빠구나, 남편이구나’란 사실을 깨닫게 됐죠. 그렇다고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살아 있어야 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어요. 무엇을 해야겠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욕도 없었어요.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현실적으로 없었죠”
 
하지만 우연히 접한 테니스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병원 외래진료 후 집에 오려고 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장애인 주차장에 스포츠카 한 대가 주차를 하더군요. 그리곤 저같이 똑같은 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 라켓가방을 싣고는 어디론가 가는 거예요. 궁금해서 따라 가봤죠”
 
“테니스 코트로 가보니 7~8명 정도 장애인들이 라켓을 잡고 휠체어를 밀면서 공을 치고 있는 거예요. 순간 너무 쇼킹했죠. 신세계를 본거에요. 그동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했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죠”
 
단순 재활을 위해 시작한 휠체어 테니스는 황 성악가에게 새로운 목표를 심어주었다. 아내와 아들에게 멋진 남편과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테니스 초년병인 그가 선배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몇 곱절 더 훈련을 해야 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폐타이어를 끌며 학교 운동장을 수없이 돌면서 근력과 지구력을 키워나갔다. 점점 상대방을 이기게 되면서 자신감이 붙었고 국가대표 감독님 권유로 일본 테니스 트레이닝센터에서 전문 트레이닝을 받았다.
 
▲ 장애인테니스 국가대표로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참가해 동메달을 따는 등 새로운 희망의 삶을 살던 그에게 손바닥 인대파열이라는 또 다른 고난이 닥쳤다. 테니스를 그만두면서 또 다시 좌절했지만 그는 ‘성악’이라는 새로운 희망의 끈을 찾아 나섰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장애인테니스 국가대표 시절 모습, 199년 9년 체육활동을 통한 국위선양 공로로 받은 대통령 표창장, 2014년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출연 모습, SBS TV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영국 출신의 성악가 ‘폴포츠’와 합동공연 후 기념사진 [사진=황영택 성악가]
 
피나는 노력 끝에 테니스국가대표…이번엔 인대사고, 라켓 못 잡게 돼
 
각고의 노력 끝에 테니스 라켓을 손에 잡은 지 5년만인 1997년 장애인테니스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1999년 방콕에서 열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세계 프로대회 참가를 위해 6개월 동안 유럽 투어생활을 하면서 그는 세계랭킹 36위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그의 두 번째 고난은 멀지 않아 찾아왔다.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어요. 훈련을 마치고 경사로를 내려가고 있었는데 앞바퀴에 돌 같은 것이 걸렸나봐요. 휠체어가 앞으로 구르면서 손을 짚을 수밖에 없었는데 인대랑 뼈가 많이 다쳤어요. 거기에다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왼쪽 눈의 망막이 떨어져 나갔어요. 안과에서 응급으로 붙였는데 지금도 왼쪽 눈은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됐죠”
 
“처음 크레인 사고를 당했을 때 보다 더 힘들고 괴로웠어요. 노력 끝에 이뤄낸 테니스 국가대표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거죠. 삶의 목표가 좌절되면서 ‘내 인생은 여기까지구나, 불행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생각에 고통스러웠죠. 그러던 중 ‘몸이 안 된다면 목소리로라도 뭔가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장애인 4중창단 활동을 하게 됐고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하기도 했어요”
 
“찬양인도는 정말 애절한 마음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찬양인도자가 되고 싶은 소원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노래를 제대로 배워보자는 마음에 대학 성악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제 목소리가 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썩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단지 열정으로 성악과를 가겠다고 하니 주위에서는 기가 막혀했죠. 독한 마음먹고 7일간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했어요. ‘이거 아니면 안 되겠어요. 제가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죠”
 
36세의 늦깎이 수험생이 된 그는 1년 동안 실기와 이론을 공부한 끝에 2003년 성결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며 4년간 쉼 없이 성악과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2007년 대학 졸업 후 그는 ‘하반신 마비’라는 자신이 겪었던 고통 속에 놓여있는 환자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통스런 과거를 이야기하며 공감하려 했고, 노래로서 위로해 주고 싶었다. 이후 병원은 물론이고 사업 실패, 탈선, 생활고와 가족불화 등 다양한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 황영택 성악가는 지체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인식개선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장애인도 당당히 예술가로서 평가받기 위한 활동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스카이데일리
 
현재 1420회가 넘는 강연, 공연, 방송출연 뿐 아니라 지난 24년 동안 만난 이들도 약 124만 명에 달한다. 지난 2010년 희귀난치병 어린이를 돕기 위해 진행한 핸드바이클 국토대장정은 1522km 15박16일 동안 전국을 돌며 휠체어 장애인의 무한도전을 국민들에게 알렸고, 장애인은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2014년 SBS TV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영국 출신의 성악가 ‘폴포츠’와 합동공연을 펼쳐 많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국토대장정을 통해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라는 틀을 깨고 싶었어요. 제 자신이 증명해 보이고 싶었죠. 제가 비장애인으로 있어봤기 때문에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알거든요. 도전을 통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번은 강연을 했던 한 중학교 학생들이 쓴 편지를 모아서 보내 온 적이 있었어요. 편지 내용 중에 ‘선생님 강연을 듣고 큰 결심을 하게 됐어요. 죽고 싶었는데 선생님을 뵙고 죽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죠. 삶에 대해서 작으나마 생각하게 됐어요’라는 글을 읽고 그 학생에게 너무 고마웠고, 제가 이렇게 쓰임 받는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했어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같은 감동이 그동안 자신을 이끌어 준 힘이었을 것이다. 
 
“장애를 이유로, 아니면 또 다른 이유로 좌절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제가 직접 위로해주지는 못하죠. 하지만 제 삶의 과정을 진정성 있게 말함으로서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고, 부족한 재능이지만 노래를 통해서 그들이 스스로 갇힌 공간의 창을 통해 빛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제가 고통 속에서 단련된 이유이고, 앞으로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김진강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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