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 둔화, 구직난 심화 등 한국 경제 전반에 경고음이 울리는 가운데 여론 안팎에서는 최저임금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제도의 모순점이 국내 경제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제계는 물론 일반 소상공인들마저 최저임금의 인상·인하 문제를 떠나 제도 자체가 이대로 유지될 경우 국가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제 국난에도 또 최저임금 인상…최종 피해자는 소상공인·저임금근로자
‘소득주도성장’을 정책 과제로 내건 문재인정부 출범 후 최저임금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문재인정부 출범 전 603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올해 8590원까지 올랐다. 매년 국가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인상폭이 결정됐다. 그 결과 소상공인은 물론 중소기업조차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고 각 사업장에선 인건비 절감을 위한 인력감축이 활발히 이뤄졌다. 일자리 감소로 경기침체는 한 층 심화됐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또 한 번 오른다는 점이다. 지난 14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021년 적용 최저시급을 올해 대비 1.5%(130원) 오른 8720원으로 결정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다. 최저임금 결정에 앞서 다수 경제주체들은 내년도 최저임금의 인하 혹은 ‘최소한 동결’을 주장한 바 있다.
그 이유로 △최근 3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돼 소상공인, 중소·영세 사업장의 부담이 커진 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내수경기 침체가 심화된 점 등을 들었다.
일례로 자영업자 등 영세 사업자가 모인 전국가맹점주협의회(전가협)은 1100만 자영업시장 종사자들의 생존을 위해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낸 바 있다. 이들은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자영업자가 고사 위기에 놓였고 500만 자영업 영역 종사 노동자까지 덩달아 일자리 상실위기와 마주했다고 주장했다.
전가협은 “통계청 발표기준 자영업자들은 주 60시간 노동에 월수입이 220만원 정도로 4대보험을 적용받는 주 40시간 노동하는 노동자들의 330만원에 훨씬 못 미친다”며 “사실상 최저임금 노동자와 같은 처지로 더 이상 인건비 인상을 부담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절대적인 지불능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영업시간 축소와 고용인력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전가협의 주장은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에 따르면 2018년 최저임금 적용대상 미취업자 중 30% 정도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2018년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는 시급이 2017년 기준 최저임금(6470원) 보다 높지만 2018년 최저임금(7530원)보다는 낮아 시급이 올라야 했을 근로자를 말한다.
또 최저임금 차상위 120% 집단의 취업률이 2018년 최저임금 상승으로 4.1%p 가량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130% 집단의 경우 취업률이 약 4.6%p 감소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근로자 고용비중이 높은 영세 사업장의 비용부담이 커졌고 이에 고용축소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들은 내년도 최저임금의 인하를 요구했다. 반면 근로자위원으로 나선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시간당 1만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반발했다. 최저시급 1만원은 올해 최저시급보다 16.4%(1410원) 인상된 금액이다. 이후 경영계와 노동계는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 소폭 인상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주요 경제단체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결정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입장문을 내놓으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취업난·경제난 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전경련은 “많은 경제주체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년도 최저임금의 최소한 ‘동결’을 바라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1.5% 인상된 8720원으로 결정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극심한 경제난과 최근 3년간 32.8%에 달하는 급격한 인상률을 감안할 때 1.5%의 추가적인 최저임금 인상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물론 기업인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며 “청년층, 임시·일용직 근로자 등의 취업난과 고용불안도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경총도 “이번에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률 1.5%는 역대 최저치다”면서도 “최저임금이 이미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인상된 상황과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외부충격으로 올해 우리 경제의 역성장이 가시화되고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빚으로 버티면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동결돼야 했다”고 전했다.
소주성 내세워 최저임금 끌어올린 文정부, 부작용 커지자 ‘과도한 최저임금’ 인정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유례없는 경제난과 마주한 한국경제는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부담까지 더해져 경제 위기는 한층 더 심화될 것이라는 게 여론의 중론이다. 다수 경제단체, 전문가 등은 최저임금제도 자체를 손보지 않는 한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주체의 비용부담을 불러왔고 이를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고용시장 등에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 사업자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하는 행태 자체가 이미 부작용이 심각함을 정부도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영세 사업장 능력 밖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에 일자리 안정자금을 편성해 사태를 잠재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영세 사업자들이 고용을 유지하며 사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최저임금을 준수하도록 인건비 등을 일부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정부는 매년 수조원대 일자리 안정자금을 조성했고 올해도 2조1600억원 규모 일자리 안정자금을 조성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이 투입되는 비정상적 형태가 발생한 만큼 최저임금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최저임금이 너무 높게 형성돼 영세한 사업장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하·인상 여부를 떠나 지금의 최저임금도 사업장들의 능력으로 지급되지 않는다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세기업 등이 감당하지 못하는 최저임금 인상분은 정부가 보조해주고 있는 행태 자체가 우리 경제정책이 영세 사업장 능력 밖으로 향하고 있음을 증명한다”며 “임금은 노동의 대가로 지급하는 것인데 정부 보조금을 바탕으로 지급되는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닌 일종의 퍼주기 복지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제도의 모순성과 위험성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제도개혁이 시급하다고 판단된다”며 “이대로 최저임금제도를 계속 유지할 경우 국가 경제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책임감 있는 결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제도의 개선방안으로는 △사업장별·산업별 최저임금 차등화 △주휴수당 폐지 등이 지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저임금이 단일화 돼 있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타격이 산업 전반으로 퍼지는 형국이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업종과 사업장의 상황을 고려해 각기 다른 수준의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주요 선진국들은 산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해 적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산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방법을 고민해 고용충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주휴수당 폐지를 통해 임금체계를 단순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주일에 15시간 이상을 일한 근로자에겐 유급 주휴일이 발생한다. 유급 주휴일에 받는 수당이 주휴수당이다. 소상공인 등 영세사업자들은 코로나 사태 등으로 매출 피해가 심화된 만큼 복지성격의 주휴수당을 정부가 일부 보조해줘야 하며 장기적으론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체계의 개편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직후 경총은 입장문을 통해 “현 최저임금 결정체계는 노사 사이에서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이 결정적으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구조의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며 “향후에는 소모적 논쟁과 극심한 노사갈등을 촉발하는 후진적이고 구태의연한 현 결정체계를 공정성·객관성에 입각해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합리적 수치를 정부와 공익위원이 책임지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전면 개편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강주현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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