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역할 자체가 다른 부처와 중복돼 업무의 비효율화를 초래할 뿐 아니라 젠더갈등,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비위 사건 등 사회적 논란을 초래한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목적과 기능을 상실한 부처를 지속시키는 것은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행태나 다름없다는 게 여론의 중론이다.
역할·기능 모호한 여가부, 박원순 성비위 사건 침묵에 존재의미 마저 상실
여가부의 시초는 1988년에 설치된 정무장관(제2)실부터다. 과거 정무장관(제2)실은 대통령 및 그 명을 받아 국무총리가 지정하는 사무를 수행하면서 사회·문화에 관한 업무를 대상으로 하되 특히 여성분야에 중점을 둬 전반적인 여성정책에 대해 총괄·조정했다. 이후 몇 차례의 직제 개정을 거친 후 1998년에 폐지됐다.
김대중정부가 출범하면서 비슷한 성격을 지닌 대통령소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해당 기구는 여성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기획·조정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다. 2001년에는 각 부처에 분산된 여성 관련 업무를 일괄 관리·집행하는 역할을 맡은 여성부가 신설됐다. 여성가족부의 시초로 평가된다.
여성부는 2004년 영유아 보육업무 등을 보건복지부(복지부)로부터 이관 받았으며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엔 통합적 가족정책 수립 등을 위해 지금의 여성가족부로 개편됐다. 2008년에는 가족 및 보육정책 기능을 복지부로 다시 이관하며 여성부로, 2010년에 가족기능을 이관 받으며 여성가족부로 개편됐다.
여가부는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및 여성의 권익증진 △청소년의 육성·복지 및 보호 △가족과 다문화 가족정책의 수립·조정·지원 △여성·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피해 예방 및 보호 등이 주요 업무다.
그런데 최근 여가부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여성 관련 업무 외에 다른 부처와 업무가 중첩되는 청소년·가족 업무에만 집중해 존재의미 자체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여가부 조직도만 보더라도 청소년·가족 업무는 청소년가족정책실이 맡고 있다.
반면 여성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는 ‘실’보다 격이 낮은 여성정책‘국’이 담당하고 있다. 예산 역시 청소년·가족 관련 업무에 집중돼 있다. 올해 여가부 예산 1조2325억원 중 △가족 7375억원 △청소년 2422억원 △권익 1234억원 △여성 982억원 등이다.
여가부가 여성 관련 업무가 아닌 청소년·가족 업무를 주로 다루다 보니 다른 부처와 업무가 중첩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여성인력의 개발·활용 업무는 고용노동부와, 디지털 성폭력 및 가정폭력 관련은 경찰·검찰과 각각 중복된다. 아동 양육, 돌봄 등은 복지부와 겹친다. 앞서 여가부는 ‘게임 셧다운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여가부 폐지론이 대두된 또 다른 이유로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한 책임회피가 꼽히고 있다. 젠더갈등,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행 사건 등의 경우 여가부의 주요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음에도 다소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9년 여가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배포한 ‘초중고 성평등 교수·학습 지도안 사례집’에는 역대 노벨과학상 여성 수상자가 남성 수상자보다 적은 이유가 심사위원 대부분이 남성이기 때문이라는 내용, 김치녀는 혐오 발언이지만 김치남은 혐오 발언이 아니라는 내용 등 담겨 있어 오히려 여가부가 사회적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여가부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비위 사건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하는가 하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줄곧 미온적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 여론 안팎에선 여가부가 진영논리에 치우쳐 정부 부처 본연의 역할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정옥 전 장관은 여권의 성추행 사건으로 치러지게 된 4·7재보궐선거에 대해 “큰 예산이 소요되는 사건을 통해 국민 전체가 성인지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역으로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아울러 여가부는 지난해 당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연루된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예산낭비·정치부처 비판에 힘 실리는 여가부 폐지론…“이름 바꾸고 가족·인구 문제 다뤄야”
정치권 안팎에서는 업무중복에 따른 예산낭비 등을 이유로 여가부 폐지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국민 여론 역시 찬성 쪽으로 크게 기우는 모습이라 여가부 폐지론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여가부라는 별도의 부처를 만들고 장관, 차관, 국장 등을 둘 이유가 없다. 여가부 장관은 정치인이나 대선캠프 인사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자리에 불과하다”며 “타 부처 사업과 중복되는 예산은 의무복무를 마친 청년들을 위한 한국형 G.I.Bill 도입에 쓰겠다”고 공약했다.
여성정치인 및 전문가들 역시 여가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의 뜻을 내비쳤다. 여명 서울시의원은 “여가부의 기능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기존에는 극소수의 엘리트 여성들이 절대다수 비엘리트 여성을 상대로 적선하듯 지원해주는 기이한 형태였고 그렇기에 실효적이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여 의원은 여가부가 남녀갈등 해결 역할이 아닌 인구절벽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부처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녀갈등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식이 아닌 해체되고 있는 가족공동체 회복과 다양한 형태의 가정 정착 그리고 인구 절벽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기능을 바꾸고 그에 맞게 부처 이름도 바꾸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여 의원은 진영에 갇힌 여가부가 아닌 열린 여가부가 돼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그는 “이번 정권에 들어와 여당과 친밀한 특정 여성계 위주로 여가부가 흘러갔기에 박 전 시장 성범죄 사건 당시의 논란이 불거졌던 것이다”며 “모든 여성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고 전했다.
김광수 차별금지법반대청년연대 대표도 여가부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여가부 폐지론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를 따지기는 어려우나 여가부 예산에 대해서는 집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실제로 여가부 존재가 세계적으로 한국의 남녀평등지수를 올리는데는 기여를 했으나, 그것은 여가부의 성인지 예산 32조라는 명시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가부가 이 많은 예산을 집행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여성인권을 위한 예산이 제일 적게 쓰여졌다는 것에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면서 “엄청난 돈으로 여성의 인권을 대변한다 해놓고, 세계 남녀평등지수만 올렸지 실제로는 예산을 적재적소가 아닌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 따라서 여가부는 개혁의 대상이 분명하다”라고 강조했다.
마직막으로 김 대표는 여가부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여가부의 양면성이 제일 부각되는 곳이 바로 정치적 이념편향이다”면서 “이번 윤석열 검찰총장의 아내에 대한 벽화논란 문제에도 여가부는 어떠한 중재나 국가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못했다. 여성의 사생활에 대한 침해에도 여당 편에서는 강조하면서 야당 편에서는 회피한다. 따라서 여가부는 정치적 중립조직으로 거듭 나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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