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서초구, 용산구 등의 노후 아파트 단지에서 리모델링 바람이 불고 있다. 건물 노후화로 생활에 불편을 겪는 상황에서 강도 높은 규제로 재건축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대안으로 비교적 규제가 적은 리모델링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부동산 업계 안팎에서는 리모델링 열풍을 씁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주를 이룬다. 리모델링 사업은 완전히 새로 짓는 재건축보다 노후가 빨리 이뤄져 하자 발생이 잦은 데다 재건축 사업과 비교해 공급량이 적어 집값폭등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역시 리모델링이 한 번 이뤄질 경우 주택공급 방안인 재건축이 수십년 간 이뤄지지 않을 경우가 많다며 지금이라도 리모델링 열풍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집값안정화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재건축 규제 대신 활성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새고 금 갔는데 재건축 규제 봇물…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리모델링 선택
서울에서 재건축 사업을 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2011년 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직후 부터다. 박 전 시장은 취임 당시 개발 사업이 집값상승을 일으킨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뉴타운 출구 전략과 정비사업 인·허가 강화 등의 규제로 재개발·재건축을 막았다. 서울시의 ‘서울 정비사업 출구전략의 한계 및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따르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재개발·재건축이 추진되다가 취소된 지역은 총 393곳에 달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엔 정부 차원에서의 재건축·재개발 규제가 쏟아졌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안전진단 기준 강화,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재개발·재건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고강도 규제에 결국 사업을 포기하는 단지가 속출했고 그 중 일부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적고 사업기간이 짧아 비용이 적게 드는 리모델링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통상적으로 재건축 사업의 평균 소요 기간이 9.7년이나 리모델링 사업은 6년 정도다. 재건축은 안전진단 등급 D·E를 받아야 사업이 가능하지만 리모델링은 C등급만 되면 사업추진이 가능하다. 주민동의율도 재건축은 75%인데 반해 리모델링은 67%에 불과하다. 임대주택 건립 의무와 재건축 초과 이익환수제 등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단지는 △송파구 문정시영(1316가구)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1758가구) △서초구 잠원 동아아파트(991가구) △강서구 강변3단지(1556가구) △성동구 벽산(1707가구) △양천구 목동우성2차(1140가구) △용산구 한가람건영2차(2036가구) △중구 남산타운(5150가구) 등 50여 곳에 달한다.
리모델링 사업 단지 증가에 싸늘한 시선…“집값안정 위한 공급에 부정적 영향”
부동산업계 안팎에서는 최근 불고 있는 리모델링 열풍에 대해 부정적 시선이 주를 이룬다. 사업성이 뒤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민 삶의 질 향상 측면에서도 재건축과 비교해 나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특히 최근 집값폭등을 잠재울 해법인 주택공급에 있어서도 부정적 영향만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수직 증축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강남구 개포동 대치 2단지의 경우 올해 2차 안정성 검토를 완료하고 내년 초 사업계획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반대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는 상황이다.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할 경우 사업성이 우수하고 주택공급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재건축 사업은 아예 무산되기 때문이다.
대치2단지 주민 이정숙(50대·여·가명) 씨는 “최근 리모델링 조합 집행부가 75% 동의율을 달성했다고 하지만 재건축 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굳이 리모델링으로 갈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이 지고 있다”며 “리모델링을 진행할 경우 최소 수십년 간은 재건축 사업을 진행할 일이 없기 때문에 주민들 입장에서도 그렇고, 부동산 시장 전체를 놓고 봐도 불리한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잠원 동아아파트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잠원동 동아아파트 입주민 이태희(가명) 씨는 “이미 조합설립인가 동의율을 달성했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이것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문재인정부가 재건축을 못하게 막아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지만 재건축을 사실상 포기하면서 리모델링을 선택할 경우 잃을 게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은 재건축 사업에 비해 속도가 빠르다는 이점은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단점들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집값폭등 문제 해결의 열쇠인 주택공급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리모델링이 이뤄질 경우 최소 수십년 간은 해당 단지 내에서의 공급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사실 리모델링 사업이라는 게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실제로 진행된 단지가 손에 꼽히다 보니 단점이 있음에도 ‘쉬쉬’하는 경향이 많다”며 “리모델링 사업이 재건축 사업에 비해 사업기간이 짧다는 장점도 있지만 꼭 빠른 것만은 아니며 다른 단점들이 많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장 큰 단점은 아파트를 허물지 못하기 때문에 기존 아파트 단지 배치도를 그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 꼽힌다”며 “기존 단지 배치도를 허물지 못해 새로 늘어나는 세대 수가 적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사업성 뿐 아니라 주택공급 문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4베이 형식이 각광 받고 있는데 리모델링은 내력벽 때문에 앞뒤로 증축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이러한 4베이 형식의 구조가 어렵다”며 “이에 앞뒤로만 넓은 동굴 형태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고 스프링쿨러러, 층간 소음제 등으로 천장이 낮아지는 단점도 있다. 요즘에는 리모델링 사업단지 라고해도 꼭 사업이 빠르게 추진되는 것만도 아닌 만큼 장·단점을 잘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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