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로 밀을 수출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전쟁으로 밀 가격이 하늘을 찌를듯 치솟고 있다. 이에 자국 내 수급이 어려워진 주요 수출국들은 수출 제한 조치를 내걸면서 전 세계적으로 식품 물가가 크게 오르는 등 ‘식량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밀 국제가격 상승 및 작황 부진 예상 등으로 자국 내 수급이 어려워진 인도는 수출 제한 조치를 내걸었고, 인도네시아도 같은 이유로 팜유 수출을 금지했다가 최근 해제했다. 밀가루와 식용유 등 주요 식료품의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자영업자들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정부는 주요 수출국의 제한 조치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작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주요 수출국 ‘식량 보호주의’에 국내 식료품 가격 올라
세계 2위의 밀 생산국인 인도는 이달 14일 전격적으로 밀 수출 금지를 발표했다. 인도 정부는 국제 밀 가격 상승과 올해 자국 내 이상고온으로 밀 작황 부진이 예상됨에 따라 인도와 이웃 국가 등의 ‘식량 안보’가 위험지대로 내몰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인도는 밀 생산량의 대부분을 자국 내에서 소비했으나 지난해부터 자국 내 작황이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국제 밀 가격이 오르자 수출량을 늘려왔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와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인도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밀 생산국이지만 수출량은 세계 8위 수준으로 전 세계 수출량의 4%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기준 제분용과 사료용으로 연간 334만톤(t)의 밀을 수입하고 있다. 제분용은 미국·호주·캐나다 등 국가에서 전량을 수입하고 있으며 사료용은 대부분 우크라이나·미국·러시아 등으로부터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국내 업계는 제분용 밀의 경우 8월 초, 사료용 밀의 경우 10월 초까지 사용할 물량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인도 정부의 밀 수출 제한이 국내에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수출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 밀 수급·가격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의 이같은 예측과 관계없이 밀 가격의 상승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러·우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3월, 국제시장에서 밀 가격은 전월 대비 37% 급등해 t당 405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달 16일에는 t당 약 459달러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적도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2020·2021년(추정) 기준 러시아의 밀 수출량은 3850만톤으로 세계 1위다.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량도 1666만톤으로 세계 4위를 차지했다. 두 나라의 수출 규모를 합치면 전 세계 밀 수출량의 27.4%를 차지할 정도다. 우크라이나는 옥수수 수출량에서도 4위(13.1%)에 오를 정도로 곡물 수급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불안요인으로 글로벌 식품 공급망이 크게 휘청거리자 인도뿐 아니라 세계 주요 식품 수출국들이 식료품 수출을 제한하면서 ‘식량 보호주의’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달 28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팜유 수출을 제한했다. 팜유는 팜 나무의 열매를 쪄서 압축하고 채유해 만든 식물성 유지로 식용유, 가공식품 제조 등에 쓰일뿐만 아니라 화장품, 세제, 바이오디젤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인도네시아산 팜유의 수입량은 34만t 수준으로, 식품 분야에 사용되는 팜유는 대부분 말레이시아 산이며 인도네시아산은 화장품, 세제 등 분야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국내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식용유 가격은 크게 올랐다. 한국소비자원이 가격동향을 제공하는 플랫폼 ‘참가격’에 따르면 ‘해표 콩기름 식용유(900㎖)’의 5월 대형마트 평균 판매가는 작년 5월보다 17%가량 올랐다. ‘오뚜기 콩기름 100%(900㎖)’의 경우는 5월 평균 판매가격이 4916원으로 1년 전(3855원)보다 27.5% 상승했다.
다행스럽게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달 23일부터 팜유 수출을 재개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수출금지 조치 이후 식용유 월간 수요를 웃도는 21만1000t까지 공급량이 상승하며 자국 내 공급이 안정됐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현지 시장의 식용유 가격은 리터당 1만9800루피아(약 1720원) 수준에서 1만7200~1만7600루피아(약 1530원)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에 농식품부는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재개 조치가 향후 국내 식용유 수급 및 가격 안정화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살펴보겠다”며 “인도네시아 정부의 팜유 수출 정책이 여러 차례 변화하고 있는 바, 주재국 공관 등을 통해 관련 사항을 지속 점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식용유 구하러 가족들까지 동원… “가격 올리지 않으면 운영 못할 수준”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전, 치킨 등 밀가루와 식용유를 주로 사용하는 요식업종에서는 최근 가격 상승의 여파에 시달리며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창고형 할인매장들에서는 1인당 식용유 구매 수량을 제한했다. 이마트가 운영하는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는 지난달 30일부터 1인당 식용유 구매 수량을 2개로 제한했고, 코스트코 역시 일부 식용유 제품에 대해 1인당 1개로 수량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에 자영업자들은 가족을 동원해 식용유를 구매하는 등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용인시에서 전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가정용 식용유는 가격이 오른 것이 잘 체감되지 않는데 매장에서 사용하는 ‘말통 기름’(18L 이상)은 모든 제품이 3만원대에서 5만원대로 크게 오른 데다 한 통씩 구매할 수밖에 없어 피해가 더욱 크다”고 하소연했다. 이 자영업자는 이어 “장사를 위해선 식용유를 쟁여놔야 하는데 구매제한으로 분량을 충족할 수 없어 가족들까지 동원해 구매하고 있다”면서 “마스크 대란 이후 구매제한으로 불편함을 겪긴 처음”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스카이데일리가 서울시 마포구 공덕시장에 위치한 전골목에 방문했을 때는 진열된 전 및 튀김류 가격표에는 모두 견출지, 스티커 등으로 가격이 새로 붙어 있었다. 식용유, 밀가루 등의 가격이 올라 이를 반영해 가격을 소폭 올린 것이다.
이곳의 한 상인은 “기름(식용유)값이 다 올라서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며 “예전에도 물가 상승을 반영해 가격을 올린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가격을 올리는 간격이 짧아지는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던 한 손님도 “나도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모든 메뉴를 500~1000원 올렸다”며 “이렇게 좁은 동네, 골목 식당들은 단골손님들이 없으면 장사가 되지를 않는데 가격이 올라 단골들이 떠날까 겁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서 한 식당을 운영하는 식당 사장은 최근 전 메뉴의 가격을 1000원 인상했다. 물가가 크게 올랐다는 것이 이유다. 그는 “이 주변에 식당들이 대부분 비싸서 직장인들 끼니를 챙겨주겠다는 마음으로 저렴한 가격에 식당을 운영해 왔지만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으면 더 이상 식당을 운영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전반적으로 물가가 대부분 크게 오른 가운데 모든 메뉴에 필요한 식용유가 크게 올라 어쩔 수 없었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권재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식용유 공급 문제는 치킨집, 중국음식점, 전집 등 중소외식업체, 소상공인의 생계 안정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와 기업이 적극 협력해 식용유 수급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겠다”며 “가격 불안 심리로 필요 이상 미리 구매하는 상황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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