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제청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청와대가 재제청 요구를 한 데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극심한 갈등을 낳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단체까지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선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시하는 행태라며 헌정사 초유의 대법원장 탄핵소추에 나설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에 응하는 순간 삼권분립은 무너지고, 대통령의 대법관 ‘쇼핑’을 인정하는 치욕적 선례를 남기게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23일 청와대의 재제청 요청 관련 문서에는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어 재제청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정면 반박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28일 대법관 재제청을 요청하면서 손 대법관 후보자 제청은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청와대와 사법부 간의 갈등이 정면충돌로 번지자 변호사 단체들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수 성향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은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는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헌법 수호의 결기를 보여준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 절차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헌법정신을 위배할 뿐만 아니라 헌법이 예정한 대법원장, 국회, 대통령 간의 상호 협력적 임명 절차를 형해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갈수록 여‧야, 보수‧진보 간 갈등만 심화되는 이런 상황이기에 합리적 해법 마련이 요청된다. 조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 결단으로 인해 노태악 전 대법관 퇴임 이후 반년 넘게 이어져 온 대법관 공석 상태가 내년 6월까지인 조 대법원장 임기 내에 해소되기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는 현실이다.
결국 대법관 재제청을 둘러싼 이견은 대법원과 청와대가 협의를 통해 풀어야 한다. 노력과 의지 없이 입장 표명에 머문다면 대법관 공석 사태의 책임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만 커질 뿐이다. 헌법은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104조 2항)는 규정을 뒀다. 그래서인지 대법관 인선을 앞두고 대법원·청와대 간 물밑 조율이 일종의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문제는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원하는 대법관 후보자가 서로 다른 경우다.
헌법상 대법원장 제청권과 국회 동의권,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는 지혜가 요청된다. 과거 정권 교체 시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은 대법원장과 새 대통령 간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며 대법관 제청 문제가 논란이 되곤 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청와대가 희망하는 후보가 추천 후보군에 포함될 경우, 제청 과정에서 사법권 독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하에 추천 단계에서 배제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청와대가 요구한 인물 대신,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가 추천한 4명 중 현직 법원장급 3명 중 한 명을 대통령이 고르라는 타협안을 제시하여 갈등을 해결한 사례가 있다. 윤석열 정부 시기에는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이 2명의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기 전, 윤 전 대통령이 거부하는 특정 후보 2명을 배제한 사례가 있었다.
대법원장은 신속하게 추천위를 새로 꾸려 대법관 후보를 다시 제청하고, 청와대와 국회가 절차를 밟는 게 순리다. 청와대와 여야는 지나친 감정 싸움은 식히고 이성에 기반한 합리적 선택을 하길 당부한다. 국민이 기대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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