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진짜 ‘반 잔의 물’ 된 워싱턴선언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기자수첩

곽수연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10 00:02:30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월26일 한·미 동맹 70주년 정상회담에서 ‘워싱턴선언’을 채택했다. 당시 일부 언론과 여당에선 “워싱턴선언으로 한국이 이제 핵 방패를 손에 쥐었다” “나토 핵 공유보다 더 좋다” 등 호평 일색이었다.

워싱턴선언은 ‘한국에 대한 핵 공격 시 즉각적·압도적 대응’ ‘미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 증진’ 등 북핵 위협으로부터 당장 철통방어를 해 줄 것 같은 든든한 약속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북핵 위협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북한은 9월28일 사회주의 헌법에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해 나라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 평화·안정을 수호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더 이상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입장과 언제든지 핵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워싱턴선언은 북핵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해 주기에 충분한 대처 방안일까.

군사 전문가들은 워싱턴선언의 내용이 전략적으로 모호하고 ‘핵 균형’ 가능성을 단념시킨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실장은 워싱턴선언을 ‘반 잔의 물’에 비유했다. 그는 워싱턴선언이 확장억제를 강화해 우리나라 국민을 안심시키는 데 성공했음을 강조했다.

다만 북한 비핵화가 물 건너간 상황 속 핵 균형을 통한 남북 간 핵 비대칭의 해소가 필요한데 워싱턴선언은 핵 균형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즉 미국 전술핵 재배치와 이후 북핵 위협이 심각해질 경우 미국이 한국 자체 핵무장에 동의하는 시점에 핵무장을 할 가능성을 막아 놓았다는 것이다. ‘반 잔의 물’이라고 평가된 이유다.

이런 가운데 아산정책연구소와 미국 랜드연구소도 보고서를 통해 워싱턴선언의 전략적 모호성을 짚었다. 보고서는 김정은이 2030년쯤 최대 300~500개 핵탄두를 보유하려 할 것이고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실질적 위협을 가할 핵무기 전력을 확보한 점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미국 핵우산의 전략적 모호성이 더 이상 적절치 않고 전략적 명확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도 워싱턴선언의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7월 한·미 핵협의그룹 창설이 실질 확장억제로 이어지기 위한 구체적 협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4년 미국 대선 전까지가 미국과의 핵 재협의 협상 골든타임이라고 데드라인까지 못 박았다. 재촉 이유는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경시의 입장을 보여 온 예비 대선후보 때문이다. 직접적 언급은 피했지만 트럼프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문제의 트럼프는 현재 미 대선 여론조사에서 선두주자다. 경합주 6곳 중 5곳에서 트럼프가 우세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 재당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한반도 안보엔 불확실성이 드리워졌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우리나라 독자 핵무장을 용이하게 해 줌으로써 전략적 구체성을 확보할 수도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트럼프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주한미군 철수 △김정은과 종전 선언 등을 추진할 가능성이 상존하기에 한반도 안보 측면에서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재당선과 북한 핵 위협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5000만 명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은 무엇을 해야 할까? 워싱턴선언의 전략적 모호성과 핵 균형 가능성의 단념을 지적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조속히 시정할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곽수연 sykwa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온라인 판 스카이데일리닷컴과 32면 대판으로
매일 발행되는 일간종합신문 스카이데일리(조간)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후원자 분들께는 지면광고를 하고자 하실 경우
특별 할인가격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