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는 초·한 전쟁 시기의 인물이다. 파부침주(破釜沈舟·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히다)의 기세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뒤덮는다)의 전설을 써 내려간 영웅이었으나 용인술에 소홀해 패망하고 만다.
항우에겐 뛰어난 혜안의 책사 범증이 있었다. 범증의 대표적 책략은 단연 홍문의 연회(鴻門宴·홍문연)다.
유방은 항우에 앞서 진나라 수도 함양에 입성해 항복을 받아냈다. 거록(巨鹿) 대전에서 파부침주의 괴력으로 진나라 대군을 격파한 항우는 뒤늦게 함양에 도착했다. 그러자 유방은 함곡관 문을 잠갔다.
관문을 부순 항우는 유방을 치려 했다. 용병술에서 적수가 못 된 유방은 뒤늦게 목숨을 애걸했다. 창을 거둔 항우는 홍문연을 열고 유방을 소환했다. 범증은 “유방은 장차 최대 우환이 될 것이다. 죽여 없애야 한다”고 조언했다. 항우는 연회장 밖에 도부수(刀斧手)를 매복시켰다.
막상 유방과 만난 항우는 그 처량한 몰골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범증이 누차 눈짓했으나 항우는 본체만체했다. 설상가상 유방을 수행한 용장 번쾌가 “진나라를 멸한 패공(沛公·유방)을 죽이려 하니 이런 도리가 어디 있소!”라고 따지자 항우는 유방을 덥썩 풀어 줬다.
기가 막힌 범증이 “어린아이(항우)와 대사를 도모할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유방의 포로가 되고 말 것이다!”는 폭탄 발언까지 했으나 항우는 요지부동이었다. 범증을 제외한 측근 상당수는 항우의 눈치만 봤다. 결국 훗날 항우는 한신의 용병술을 앞세운 유방에게 대패해 패왕별희(覇王別姬·항우가 우미인과 작별하다)의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쓴소리 잘하는 이들을 중용한 유방은 그 고언들을 받아들여 패업을 이룬다. 홍문연 이후 유방이 항우에 의해 산간벽지로 쫓겨나던 어느 날 소하는 무명 소졸 한신을 대장군으로 천거했다. 유방은 마지못해 건성으로 허락했다. 소하는 “그 오만무례함 탓에 호걸들이 떠나간다”고 직격했다. 정신이 번쩍 든 유방은 길일을 잡아 목욕재계한 뒤 엄숙한 의식 속에 한신을 대장군에 봉했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 녹취록이 공개됐다. 설상가상 대통령 지지율은 20%의 벽이 무너졌다(상세 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홍준표 대구시장 등 당내에선 용산·내각의 전면적 인적쇄신 촉구 목소리가 나온다. 정 바뀌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결단할 때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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