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안동권씨 정산공계 중망공파 종중회관의 시세는 약 30억원에 달한다. 종중회관 부지는 1974년 5월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카이데일리
▲ 안동권씨 정산공계 중망공종중 회관 ⓒ스카이데일리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족보는 안동권씨 추밀공파 ‘성화보’라고 한다. 성화보는 성종 7년인 1476년에 제작한 목판본이며 서거정이 서문을 썼다. 하버드대 동양학과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마이크로 필름에서 찾아냈다.
3권 126면인 성화보에 담긴 족보 개념은 조선 후기 때와는 전혀 달랐다. 특히 여자의 지위가 남자와 대등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우선 성화보에선 친손과 외손을 구분하지 않고 기록했으며, 여성의 재혼을 인정해 전남편(前夫)과 후남편(後夫)이란 표현을 썼다.
또 사위를 여자의 남편(女夫)으로 표기했고 적자와 서자를 구분하지 않은 채 출생 순으로 등재했다. 이 같은 족보 개념은 주자학이 뿌리를 내린 18세기 들어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추밀공파의 파조는 안동권씨 시조의 10세손이며, 중망공파의 파조는 23세손이다.
안동권씨 중망공파 종중은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에 종중 회관을 소유하고 있다. 종중회관은 지상 3층에 대지면적 1135㎡(약 343평), 연면적 1240.25㎡(약 375평) 규모다. 1974년 5월에 종중이 토지를 매입해 1999년 9월 빌딩을 착공, 2000년 1월에 준공했다.
종중회관은 분당선 영통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다. 건물 바로 앞쪽으로는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제2기숙사인 우정원이 있다. 대학교 캠퍼스 바로 앞에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상대로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
3층에는 안동권씨 중망공파 사무실이 있고 2층 전층과 3층 일부는 원룸으로 꾸며 학생들이 입주해 있다. 여름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거주 학생들이 남아있어 건물 안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1층에는 도시락 가게, 카페, 술집 등이 들어서 있다. 중중회관에 입주한 점포 관계자는 “지금은 방학이라서 우리 가게를 제외한 다른 점포들은 일시적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며 “우리 점포는 카페여서 시즌을 덜 타기 때문에 방학 때도 영업 중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에 이 일대는 안동권씨 집성촌이었다고 한다”며 “안동권씨 종친회가 있어서 그런지 할아버지 할머니들들이 자주 이 건물을 찾는 편이다”고 밝혔다.
정성진 어반에셋매니지먼트 대표에 따르면 종중회관 건물의 현 시세는 30억원 안팎이다.
▲ 종중회관 인근에는 안동권씨 일가의 묘소가 곳곳에 있다. 인근 상인에 따르면 이 일대는 안동권씨 용인 서천문중의 집단 세거지다. 때문에 몇백년 전부터 이 일대에는 안동권씨가 대대로 살아왔다고 한다. ⓒ스카이데일리
원래 성씨는 김씨…견훤 물리친 공로 인정받아 태조 왕건이 권씨 성 내려
안동권씨의 시조는 태사공 권행(權幸)으로 원래 성씨는 김씨였다. 신라말인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경애왕을 살해하자 권행은 격분했다. 3년 후 겨울에 권행은 고을 성주인 김선평, 장정필과 의논해 향병을 모았다. 그리고 고려 태조 왕건 편에 서서 견훤의 8000여명의 대병을 무찌르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후삼국의 요충인 병산(현 안동군 서지리) 대첩은 후백제의 멸망과 삼국통일에 큰 영향을 준 전투였다. 특히 열세에 놓였던 태조 왕건을 일거에 구원한 싸움이기도 했다.
태조 왕건은 이에 “정세를 밝게 판단하고 권도를 잘 취했다”며 권씨 성과 함께 정1품 태사 벼슬을 내렸다. 또 싸움을 벌였던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키고 안동부를 식읍으로 하사했다.
그로부터 권행은 안동권씨의 시조가 됐고 후손들은 안동을 본관으로 삼았다. 향병을 모아 전투에 가담한 김선평은 훗날 신안동김씨 시조로 모셔졌고, 당나라에서 이주했던 장정필은 안동장씨 시조가 됐다.
안동권씨의 조선시대 과거급제자는 모두 1398명이다, 그중 문과가 367명, 무과가 99명, 사마시가 913명, 역과가 9명, 의과가 4명, 음양과가 1명, 율과가 5명이다. 지난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안동권씨는 총 19만6566가구에 62만9291명이 살고 있다.
안동권씨는 크게 검교공파, 복야공파, 호장공파, 추밀공파 등 총 15개 종파로 나뉜다. 서천동에 건물을 소유한 정산공계 중망공파는 추밀공파에 속한다.
추밀공 권수평(權守平)은 고려 고종 때 사람으로 정3품 추밀원부사에 올라 추밀공이라고 불린다. 안동권씨 측에 따르면 추밀공은 성품은 순박하고 강직해 예를 갖춘 사람의 풍모가 있었다.
중망공 후손들 경희대 국제캠퍼스 덕에 큰 돈 벌고 종중 회관도 설립
▲ ⓒ스카이데일리
후손들은 권급(1598~1677)의 자(字)인 중망을 따서 중망공파 종중을 구성했다. 후손들은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 일대에 거의 400년째 대대로 거주하고 있어 이른바 용인 서천문중이라고도 부른다.
서천문중은 경희대 국제캠퍼스 이전 덕을 톡톡히 봤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수도권 인구 분산을 목적으로 서울에 본교를 둔 대학들에 분교 혹은 캠퍼스 이원화를 촉구했다. 대학 캠퍼스가 들어서면 인근 지역 개발이 촉진되고 상권이 살아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부 정책에 따라 몇몇 서울 소재 대학들이 지방 캠퍼스를 설치하게 된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역시 1979년 설립 인가를 받고 1980년 3월 수원캠퍼스 1호 건물을 완공했다. 캠퍼스 일대는 수백년 전부터 중망공파가 집단으로 거주하던 세거지였다.
대학 캠퍼스 이전 덕분에 일대 안동권씨 일파의 토지 가치 또한 크게 올랐다. 중망공 종회는 1997년 서천동 인근에 위치한 하갈동에 크게 묘역을 조성해 문중의 세장지(世葬地)를 만들고, 종중회관 건물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상인에 따르면 “경희대 캠퍼스가 조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집성촌에 불과했다”며 “대학 캠퍼스가 들어선 후 인근 토지가 개발되면서 서천문중 권씨들이 조상님들 덕에 많은 돈을 번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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