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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궁극의 미 수원화성 야행과 추억의 맛집

통닭거리 ‘매향통닭’‧화홍문 옆 ‘연포갈비’‧인계동 ‘가보정’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7-27 17:50:37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수원을 다시 찾은 것은 2년 만이다. 엄밀히 말해 수원화성을 답사하기 위해 찾은 것이 이태만이란 것이다. 2년 전에는 낮에 둘러봤지만 지난 11일 답사는 밤마실, 야행(夜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원화성의 궁극의 미는 밤에 만날 수 있다. 특히 수원화성의 가장 높은 곳인 서장대는 ‘늑대와 개의 시간’이라는 땅거미 내릴 무렵 야경이 무척 아름다웠던 기억이다.      
 
수원역에서 만난 야행팀은 수원향교를 거쳐 팔달산 지석묘 군으로 올랐다. 팔달산 기슭에 4기가 산재해 있는 지석묘는 흔한 돌무더기처럼 보였다. 울타리를 치고 안내판을 세워놨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형태다. 이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 무덤이다. 그렇다면 수원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한반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70만년 전인 구석기시대부터다. 수원시청 안내에 따르면 수원 지역에 자리 잡은 것은 대략 25~20만년 전으로 추정한다. 수원의 지동과 이의동에서 이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긁개와 여러면석기, 몸돌, 격지 등이 나왔기 때문이다.     
 
삼한시대 수원의 첫 이름 모수국(牟水國)인데 이는 ‘벌물’이란 뜻을 갖는데 지금의 수원(水原)을 뜻하는 ‘물벌’과는 순서만 다를 뿐 같은 셈이다. 이후 수원은 ‘매홀(買忽)’, ‘수성(水城)’, ‘수주(水州)’ 등으로 바뀌었다. 매홀에서의 ‘매’는 물을, ‘홀’은 고을을 나타내는 말로 매홀은 ‘물고을’이라는 발음 표기로 추정되는 등 늘 ‘물’이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백제, 고구려의 땅을 거쳐 고려 땅이 된 1271년(원종12년) 수원도호부가 설치되면서 수원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조선시대에서는 한때 화성유수부가 된 적도 있지만 1949년 8월15일 행정명칭을 확정하면서 수원시로 정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조가 만든 수원화성, 야경이 백미
 
▲ 야경이 빼어난 수원화성. 서장대에서 수원시내를 등지고 찍은 수원화성 야행팀 단체사진과 서북공심돈, 화홍문 야경. [사진=필자제공]
       
수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정조와 사도세자이고 유적은 수원화성이다. 1789년 10월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수원의 관아가 있는 중심부(현 화성군)로 옮기고 이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현재 수원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이때부터 팔달산과 주변 지역이 수원의 중심이 된다.     
 
정조는 1793년 수원의 새로운 읍치를 ‘화성’이라고 바꾸고 유수부로 승격시켰다. 수원이란 이름이 잠시 사라진 것이 이때다. 물론 이름은 화성유수부지만 수원이란 이름을 널리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유수부는 지금의 광역시 또는 수도권 신도시와 같은 개념이다. 당시는 한성을 둘러싸고 있던 개성·강화·광주가 유수부였다. 수원화성은 정조가 1794년 1월에 쌓기 시작해 1796년 9월에 완공했다.     
 
수원화성의 백미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서장대의 어스름 무렵 수원 야경이다. 장대(將臺)는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던 곳을 의미한다. 명칭은 서장대지만 편액은 화성장대다. 힘찬 정조의 어필로 썼다. 이곳에서 야행팀은 인생 사진을 한 장 남기고 또 한 곳의 백미인 서북공심돈을 찾았다.     
 
공심돈은 성곽 주변을 감시해 적의 접근을 살피고 공격 시에는 방어시설로 활용되는 곳으로 내부는 나선형 벽돌 계단만 있고 텅 비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원화성 야경 출사 포인트로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이다. 둥그런 외벽과 높이 솟은 문루와 하늘빛이 어우러지면 아름다운 사진이 연출된다.     
 
야행팀은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을 마지막으로 답사를 마쳤다. 답사의 끝은 늘 그렇지만 배를 채우는 미식(美食)의 시간이다. 수원은 수원갈비, 통닭골목, 만두 등이 유명하다. 수원갈비는 조선 후기 우시장이 발달하면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메뉴다.     
 
갈비 계보를 탄생시킨 수원갈비 원조 ‘화춘옥’
 
▲ 화춘옥은 영동시장 싸전거리에서 미전옥으로 문을 열었다가 화재로 인해 인근으로 옮겨 간판을 바꿔달았다. 사진은 당시 화춘옥을 묘사한 모형물과 수원갈비 상차림.[사진제공=수원시청]
 
장날 우시장이 섰고 이는 전국 3대 우시장으로 발달했다. 1년 동안 거래된 소가 약 2만 두를 웃돌았다고 한다. 수원 우시장의 발달도 수원화성과 관계있다. 정조는 화성을 축성하고 수원을 신도시로 만들고자 했다. 신도시는 자립이 생명이다. 그래서 화성 주변에 대단위 둔전(屯田)을 뒀다. 둔전 농사를 위해 농민들에게 벼 종자와 소를 나눠 줬다.    
 
농민들은 소출의 절반을 바쳤고 소는 3년에 한 마리씩 갚았다. 그러면서 늘어난 소를 처분하기 위해 자연스레 우시장이 만들어졌고 많은 소를 취급하다면서 소고기가 주요 식재료로 등장했다. 특히 갈비를 구하기 쉬웠기 때문에 갈빗집이 많이 생겼다.     
 
수원갈비 원조는 이귀성 씨가 8·15 광복이 되면서 팔달문 밖 장터인 지금의 영동시장에 낸 ‘화춘옥’이다. 이 씨는 원래 1940년대 싸전거리에서 어머니, 형과 함께 화춘제과를 경영하던 사람이다. 이 씨는 독립하면서 싸전거리에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뭐든 잘되겠다 싶어 음식장사 경험도 없이 ‘미전옥’이란 해장국 집을 열었다.     
 
처음엔 소갈비를 넣은 해장국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전략을 바꿔 1946년 소금양념 갈비를 팔았다. 이 씨의 전략은 적중해서 갈비 맛집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됐다. 1953년 영동시장에 큰 불이 나서 근처로 이전해서 화춘옥이란 이름으로 간판을 바꿨다. 이후 수원 명소로 신문에 소개되면서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도 다녀갈 정도였다고 한다. ‘화춘옥=수원갈비’라는 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1979년 화춘옥 자리가 개발되면서 간판이 사라지고 수원갈비는 수원을 대표하는 일반명사가 됐다. 수원시는 1985년 수원갈비를 향토음식으로 지정해 맛을 이어가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밖에 수원갈비의 특징은 갈비뼈를 자를 때 톱 대신 도기를 사용했고 갈비형태도 양갈비에서 외갈비로의 변화다. 한 대 길이가 13cm, 250g에 달하는 크기도 수원갈비의 특징이다.       
 
수원갈비 양대 산맥, 가보정과 연포갈비
 
▲ 가보정과 연포갈비의 점포 전경과 갈비구이. [사진=필자제공]
 
수원갈비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곳은 팔달구 인계동이 있는 가보정이다. 매출이 경기도 내 모든 음식업종 중 가장 많다. 대략 연간 4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상급 한우생갈비, 양념갈비 맛도 좋지만 가보정의 숨은 보물은 고급 한정식집 수준의 밑반찬이다.     
 
김외순 대표는 떡볶이 포장마차로 시작해 지금은 5층짜리 건물 세 개 동으로 이뤄진 갈비타운을 만들었다. 1관 600석, 2관 550석, 3관 250석 등 총좌석만 1400석의 매머드 음식점이다. 가보정 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맛과 실력으로는 화홍문 건너편에 있는 ‘연포갈비’도 지역에서 강자다. 연포갈비는 빙상국가대표 코치출신인 봉주현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연포갈비 역시 소금을 간을 한 갈비가 주력이다. 300여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대형음식점이고 주차장 시설이 좋아 단체회식, 가족모임 손님이 많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깨끗한음식점’이며 수원음식문화축제 참가업소로 수원맛집으로 인정된 곳이다.     
 
지난해에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더했다. 이번 야행도 화홍문에서 끝이나 연포갈비를 들리려 했지만 ‘매향통닭’을 예약해 놓은 상태라 어쩔 수없이 지나쳐서 10분을 더 걸어 통닭거리에 다다랐다.     
 
통닭거리 반백년 역사 산증인 ‘매향통닭’
 
▲ 통닭거리 초입에서 반백년 이상 자리를 지키면서 거리 형성의 초석이 된 ‘매향통닭’. 2대째 내림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필자제공]
     
통닭거리는 원조인 매향통닭을 비롯해 진미통닭, 용성통닭, 남문통닭, 장안통닭, 중앙치킨타운 등 수 십 년 동안 형성된 통닭집들이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과거에는 통닭거리축제까지 여는 등 수원을 상징하는 음식 콘텐츠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매향통닭’은 1970년 개업해 한 가지 메뉴로만 반백년을 넘겨 영업해 오고 있다.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최용철 대표는 “메뉴가 통닭 한 가지이기 때문에 손님이 오시면 자동으로 기름이 끓고 있는 무쇠솥에 생닭 한 마리를 집어넣는다”고 말했다.
         
기름이 스미어 나와 번지르르한 양회(시멘트)봉투를 들고 집으로 향하던 뿌듯한 아버지의 뒷모습이 절로 떠오르는 통닭이다. 일체 간을 하지 않은 생닭을 그대로 12분 정도 튀겨 내 비밀 맛소금을 살짝 뿌려 내온다. 쫄깃하고 식감이 재밌는 닭 근위(똥집)도 함께 튀겨서 내주는 데 양을 아쉬워할 만큼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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