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으로 하면 3000원 할인해드립니다. 이 계좌번호로 보내주세요”
서울시 서초구 소재 한 의류매장. 셔츠 하나를 구매하자 가게 점원이 이같이 말했다. 계산대 앞에 적혀있는 계좌번호는 법인명의가 아닌 개인명의 계좌였다. 점원은 할인을 해주기 때문에 현금영수증 발행은 안 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찾은 서울시 종로구 소재 한 카페. 결제를 위해 계산대 앞에 서자 점원은 “카드는 4만4000원인데 현금이나 계좌이체로 결제하시면 3만9000원에 해드립니다”라며 계산대 위에 적힌 계좌번호를 가리켰다. 이곳도 현금영수증은 발행되지 않았다.
비밀번호 하나로 현금이체 가능한 ‘간편 송금 앱’ 사용 증가에 악용 사례 속출
간편 송금 앱 사용이 늘어나면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고속터미널·혜화·건대입구·강남역 등 서울 시내 주요 상권의 간편 결제 실태를 확인한 결과 상당수의 매장들이 부가세가 포함된 카드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면서 할인을 내세워 간편 송금 앱을 통한 현금 거래를 유도하고 있었다. 과거 현금으로 계산하면 가격을 깎아주던 탈법 행위가 간편 송금 결제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간편 송금 앱이란 공인인증서나 OTP(보안카드)없이 쉽고 빠르게 계좌이체를 할 수 있는 금융 서비스를 말한다. 앱에 은행 계좌를 한 번 등록하면 비밀번호 입력 후 바로 송금이 가능하다. 2017년 핀테크 업체인 토스(TOSS)와 카카오페이가 간편 송금 서비스를 출시한데 이어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는 하나의 앱으로 여러 은행의 계좌 조회, 결제∙송금 등을 할 수 있는 ‘오픈뱅킹’을 도입했다.
서비스 출범 이후 간편 송금 이용금액과 건수는 크게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중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간편 송금 서비스 이용금액과 건수는 각각 2346억원, 250만건 등이었다. 전년 대비 각각 76.7%, 124.4% 늘어난 수치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오픈뱅킹’ 실시 후 올해 6월말까지 가입자(중복가입 제외)는 2032만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이용건수는 10억5000만건으로 가입자 한 명당 50건 가량을 이용한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7월 기준 국내 결제활동인구가 271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3명 중 2명은 오픈뱅킹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간편 송금 서비스 성장을 견인하는 이들은 20·30세대다. 한국은행이 올해 3월 발표한 ‘2019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대의 간편 송금 서비스 이용은 무려 53.5%에 달했다. 이어 30대가 42.8%를 차지했다. 사용 이유는 이용절차가 편리하다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소비시장에서 2030세대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간편 송금 서비스는 머지않아 결제 수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젊은층 몰리는 번화가, 탈세 목적 할인 앞세운 간편송금·현금결제 유도 기승
2030세대의 간편 송금 서비스 이용이 늘면서 이들이 주로 다니는 건대입구역, 강남역, 대학로 등 유흥가에서 간편 송금 결제 업소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일부 점포에서는 간편 송금 서비스를 이용한 현금할인 혜택도 부여하고 있다.
건대입구역 근처 미용실에서 만난 대학생 김효진(가명)씨는 “매직셋팅 C컬 시술 비용으로 14만원이 나왔는데 현금으로 결제하면 10% 할인 되길래 곧장 송금했다”며 “원가주고 카드로 계산할 때 보다 계좌이체로 결제해 할인받는 게 효율적인 소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현금할인 혜택을 부여하는 목적이 매출 누락을 통한 탈세에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간편 송금 결제를 통한 탈세 행위가 늘고 있다. 국세청이 5월 발표한 탈세사례를 보면 유흥업소, 클럽, 성인게임장 등을 운영한 사업자 15명이 현금수입을 친인척·지인 등의 차명계좌로 받아 매출을 누락시키며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클럽의 수법은 은밀했다. 영업 직원을 통해서만 예약을 할 수 있는 테이블 좌석을 해당 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로 선입금 받으면서 매출을 누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20대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 등이 자주 찾았던 점을 고려하면 간편 송금 앱이 결제수단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소득세법에 따라 탈세는 불법이다. 사업자는 구매자의 현금영수증 발급 요청을 거부해선 안 되고 10만원이상 결제에 대해서는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해야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같은법 제81조 9항에 따라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영수 금액의 50%를 과태료로 내야한다. 2016년 3월 ‘계좌이체도 현금영수증 발급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결(2015마1864)이 나오면서 처벌 대상의 범위가 넓어졌다.
간편 송금 서비스를 이용한 탈세 시도 논란에 대해 관련 업체들은 난처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당초 결제 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게 아니라는 반응이다. 토스 관계자는 “매출을 축소하는 행위는 은행이나 송금 서비스의 문제가 아닌 행위자의 문제다”며 “이와 관련해 국세청 등 정부 당국으로부터 협조 요청이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부가가치세법에 따라 온라인결제, 카드결제뿐만 아니라 QR코드로 인식된 결제부분에 대한 결제대행 자료도 비교해볼 수 있도록 국세청에 제출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송금 서비스는) 결제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는 게 아니다. 계좌이체 하는 목적을 (회사가) 알 수 없다”고 했다.
현금수입 탈루행위 근절 표방한 국세청, 수천만 소상공인 세무조시 실시 ‘과연 될까’
정부 당국은 계좌이체를 통한 탈세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국세청은 차명계좌를 가지고 광고수입을 은닉한 크리에이터(유튜버)에게 소득세 수억원을 추징했다. 또한 차명계좌를 활용한 현금수입 탈루행위를 막기 위해 지난달부터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운영을 시작했다.
국세청이 보유하고 있는 세금계산서, 현금영수증, 친인척자료 등 다양한 과세정보를 활용해 사업자가 수입금액을 정상적으로 신고했는지 판단하는 시스템이다. 분석 결과 세금탈루 혐의가 있을 경우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에 활용된다.
국세청은 “금융거래 분석시스템이 차명계좌 분석업무에 본격적으로 활용될 경우 금융거래 분석시간이 크게 단축돼 차명계좌를 이용한 탈세행위에 대해 정확하고 빠른 대처가 가능해지는 동시에 차명계좌 사용 근절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대책도 ‘대규모 탈세’를 잡는 데에만 활용될 뿐 간편 송금 앱을 통한 ‘소규모 탈세’를 잡기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2018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국세청은 2017년 종합소득세 확정신고를 한 개인사업자 중 0.08%에 대해서만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의 칼날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너무 넓은 것이다.
차명계좌 신고절차가 까다로워 탈세 제보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명계좌 신고서를 작성할 때 계약서, 거래대금 입금내역, 거래명세표 등의 증빙서류가 필요하다. 또한 피신고자의 탈루세액이 1000만원 이상 추징돼야 포상금을 받을 수 있어 간편 송금 앱 탈세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윤승준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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