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 양복은 반드시 잘 만들어야 해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을 위한 옷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무엇보다 제작 기술이 중요해요. 그러나 패션도 놓쳐선 안 돼죠. 옷은 당시의 유행과 스타일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만큼 감각적으로 제작돼야 해요. 이것이 갖춰져야만 비로소 고객으로부터 신용을 얻을 수 있어요. 기술·패션·신용, 고객과의 이 세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바늘을 잡아요.”
2016년 우리나라 안방을 울리고 웃긴 주말 드라마가 있다. KBS2에서 방영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맞춤 양복점인 ‘월계수 양복점’을 배경으로 네 남자의 눈물과 우정, 성공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 많은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맞춤 양복점은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의 의류매장처럼 웅장하고 화려하진 않다. 다소 소박하지만 품격 있고 정감 가는 인테리어로 동네의 터줏대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덕분에 많은 국민들이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껴 드라마에 더욱 빠져들게 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드라마 같은 장소가 우리네 삶 속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서울 왕십리 지역에서만 근 60년을 자리해 온 GQ양복점이 바로 그곳이다. GQ양복점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맞춤 양복을 통해 품격을 선사해 온 업적을 인정받아 올해 상반기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백년가게’ 인증을 받기도 했다. 드라마 같은 GQ양복점이 오늘날까지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평생 바늘을 손에서 놓아본 적 없는 김진업 한국양복명장(74)이 없었다면 결코 실현되지 않았을 일이다.
품격 있는 양복에 대한 동경…한 우물 파는 1만 시간의 법칙, 양복 전문가 되는 지름길
“1964년 양복에 대한 동경으로 상경하자마자 서울 명동에서 양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양복 입은 남성들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옛날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충남 서천 출신인데 서울 갔던 지인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양복을 빼입고 왔더라고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몰라요. 그 때부터 양복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같은 관심이 양복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더군요. 때마침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던 중이었는데 서울에서 양복업에 종사하고 있던 친척 형의 도움으로 양복업에 뛰어들게 됐죠.”
김 명장은 ‘양복이 사람을 만든다’는 신념 아래 맞춤 양복점 GQ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다. 1977년 ‘20세기 양복점’이란 상호로 첫 가게를 냈으나 1984년 가게를 확장·이전하면서 지금의 상호로 변경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왕십리에서 오랜 시간을 지켜온 덕분인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며 다수의 단골도 확보했다.
“미국의 유명 남성 패션지 중에 ‘GQ’라는 잡지가 있어요. 그 잡지 속 모델들을 보면 하나 같이 양복을 입고 있는데 감탄스러울 정도로 멋져요. 신사의 품격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래서 GQ라는 이름으로 바꾸면 좋겠다 싶었어요. 우리나라 남성들도 맞춤 양복을 통해 신사의 품격을 갖출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품격을 선사하고 싶다는 김 명장의 바람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으나 그 기술을 수련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김 명장은 맞춤 양복을 짓기 위한 기술을 배우던 시절에 대해 무척 고단하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기초를 다지는 게 가장 중요해요. 맞춤 양복은 더더욱 그렇죠. 바늘 잡는 요령과 자세를 숙달하는 데에만 한달이 넘게 걸려요. 바닥에 바늘을 댄 뒤 날렵하게 땀을 뜨고 다시 바늘을 잡아 다음 땀을 딸 준비를 하는 게 쉬워보여도 막상 하려고 하면 좀처럼 어려운 게 아니죠.”
“상·하의 제작 기술을 터득하는데 각각 2~3년은 걸렸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옷을 2차원적인 관점에서 바라 봐요. 그러나 옷은 입체적이에요. 사람의 몸이 입체적인 만큼 3차원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죠. 그래서 맞춤 양복은 수많은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여 제작돼요. 그래야 사람의 몸에 맞도록 입체감을 살려 만들 수 있는 거죠. 그러다보니 한두달 배워서는 결코 양복을 지을 수 없더라고요.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어깨 너머로 배워가며 약 13년은 양복 제작 기술 습득하는 데 매진했어요.”
김 명장은 오래 걸려 배우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혹자가 보기엔 시간을 허비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김 명장은 장시간에 걸쳐 스스로 노력하고 배움의 의지를 다진 덕분에 남 부럽지 않은 양복 제작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는 1만 시간의 법칙이야말로 전문가로 거듭나는 길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김 명장이었다.
“나만의 양복 기술을 확보하게 되니 자신감이 늘면서 제 이름을 걸고 본격적으로 맞춤 양복을 제작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1977년 과감히 가게를 차렸죠. 힘든 일이지만 참 재밌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제아무리 많은 일감이 들어와도 즐겼던 것 같아요. 그러나 주문 마감을 맞춰야 하는 까닭에 자연스레 직원들을 고용하게 됐죠. 이 때까진 몰랐어요. 사람을 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맞춤 양복업에선 꼼꼼한 성격이 매우 좋은 것 같아요. 체형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의 몸에 딱 맞는 양복을 제작하기 위해선 일말의 실수 없이 완벽하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제가 딱 이런 성격이라 완성된 양복을 받아 든 고객들의 만족도가 참 높았어요. 그런데 직원들은 그렇지 않았나 봐요. 제가 너무 꼼꼼하다보니 힘들다고 볼멘소리하는 경우가 꽤 있더라고요.”
“하루는 직원 한 명이 무단결근하는 사태가 발생했어요. 그 때 당시 주문 물량이 밀려들어 일손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직원이 힘들다는 이유로 출근을 안 한 거예요. 당장 직원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말고 좀 더 쉽게 대강대강 일하게 해주면 출근을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단칼에 직원에게 해고를 고했어요. 당장 일손이 부족하니 직원의 요구에 맞춰 그러겠노라고 약속할 수도 있겠지만 양복점을 찾아준 고객들과의 약속이 우선인 만큼 직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겠더라고요. 비록 마감을 지키기 위해 새벽까지 고생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뚝심 있게 결정을 잘 내렸던 것 같아요.”
꼼꼼한 성격·강한 집념이 만든 양복명장…젊은 감각 유지해 후학 양성 앞장
이러한 김 명장의 마음을 알아준 것인지 한번 찾아준 고객들은 지금까지도 김 명장에게 양복 제작을 맡기곤 한다. 지인에게 추천하는 경우도 잦다. 이렇듯 알음알음 찾아주는 고객들이 있어 김 명장은 기쁘다고 했다.
“한 번은 보통 사람과 달리 매우 특수한 체형의 고객이 제 가게에 방문했는데 지금껏 만났던 고객 중에서 맞춤 양복을 제작하기 가장 어려운 경우 중 하나였어요. 사이즈를 측정하고 패턴을 재단하는데 아무리 해도 양복의 태가 잡히지 않더라고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어요. 패턴을 수차례 다시 재단하면서 완벽한 실루엣을 찾기 위해 부단히 애썼어요. 고객을 위한 패턴을 마무리 짓고 보니 밤을 지새웠더라고요. 이러한 집념 덕분이었을까요. 지금도 찾아주는 고객들을 보면 참 감사해요.”
꼼꼼한 성격과 강한 집념은 김 명장으로 하여금 수많은 국제 기능대회에서 수상의 영예을 안겼다. 또 국내 최고의 기능장에게 수여되는 석탑산업훈장도 받았다. 일평생 맞춤 양복에 대해 애정을 쏟아온 김 명장은 지난해 한국양복명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도 수여받았다.
김 명장은 자신의 분야에서 수많은 성과를 이뤄온 만큼 더 이상의 욕심은 없다고 했다. 단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도록 천직을 지켜나가고 싶다고 소망했다. 이어 김 명장의 뒤를 이을 후학을 양성하고 후계자를 찾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 양복 인재 육성 프로그램에서 직접 교육을 맡은 적이 있어요. 그 때 손바느질부터 양복 제작 기술 등 다양한 내용을 가르쳤죠. 프로그램이 끝나고 난 뒤 참가했던 청년 중 95%가 관련 직종에 취업하거나 창업에 성공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다만 프로그램 기간이 단기간에 불과하다는 단점이 있었어요. 기초를 다지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죠. 그러다보니 일부 청년들이 맞춤 양복업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기도 했어요. 참 안타깝더라고요. 이에 정부나 지자체에서 보다 오랜 기간 맞춤 양복업에 종사하길 희망하는 청년들을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어요. 정책적인 지원과 여건이 마련되면 맞춤 양복업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과 참여도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 명장은 60여년 간의 맞춤 양복 전문가로서 성공한 비결에 대해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행에 뒤처지기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 온 김 명장은 앞으로도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양복의 유행 스타일과 젊은 감각을 적용해서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이를 위해 매년 외국에 나가 기술 교류를 하고 패션 정보를 교류하면서 패션쇼도 참관해요. 제 자신의 옷도 항상 유행에 맞게 젊게 만들어 입죠.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젊은 고객들도 꾸준히 찾아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도 유행을 놓치지 않는 젊은 양복명장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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