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교육체계를 뒤흔들만한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시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서울 서초구 소재 경원중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면서 학교와 교육청, 학부모와 학생들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막무가내식으로 혁신학교 지정을 추진한 경원중 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서울시 교육청 등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단체 행동에 나선 상태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자 학교와 교육청 측은 학부모들과의 의견 조율에 나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혁신학교 지정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우려감은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최종 심의는 혁신학교 지정 권한을 가진 서울시 교육청에서 이뤄지는 만큼 철회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교육계와 학부모들, 학생들은 이번 사태의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혁신학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105조(자율학교)’에 의해 학급당 25~30명, 학년당 5학급 이내로 운영되는 새로운 학교다. 입시 위주의 획일적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시키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혁신학교는 2009년 진보 성향의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취임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해당 시·도 교육청에서 최대 1억4000만원까지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나 경쟁을 배제한 교육 방식으로 자칫 아이들의 학습 수준을 낮출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특히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전교조 교사들의 권한이 막강해진다는 점에서 ‘참교육 가장한 정치집단’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에 혁신학교 도입에 대한 찬반 의견은 상당히 뜨겁다.
혁신학교 지정 두고 교육청·학교-학부모·학생 간 갈등…“학부모 몰래 막무가내 지정”
경원중 학운위는 이달 10일 오전 회의를 열고 앞서 지난달 16일 서울시 교육청에서 지정한 ‘마을결합혁신학교’에 대해 지정 철회 신청을 하기로 의결했다. 이날 학운위는 혁신학교 지정 철회 안건에 대해 무기명 투표를 실시했는데 투표 결과 과반수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 경원중의 혁신학교 지정은 철회 수순을 밟게 됐다. 학운위 결정에 따라 경원중은 곧 서울시 교육청에 혁신학교 지정 철회 신청을 하기로 했고 서울시 교육청은 해당 안건을 심의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사태는 앞서 경원중학교에 대한 서울시의 혁신학교 지정과정에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최초 불거졌다. 학부모들의 주장에 따르면 올해 8월 학교 측은 한 차례 알림을 통해 “매년 상당 액수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마을결합혁신학교 지정 신청을 위해 찬반 투표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돌연 투표 마감 이틀 전에 “이미 학부모 과반수의 찬성표를 얻었다”며 학운위에 혁신학교 지정 안건을 상정해 의결했다. 이를 토대로 서울시 교육청은 경원중을 마을결합혁신학교로 지정했다.
이에 대해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당장 내년 3월부터 운영될 혁신학교에 대해 어떠한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반발했으나 학교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학부모들은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국민청원을 내고 지난 1일부터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학교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혁신학교 지정 철회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경원중 측은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지난 7일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서 농성을 벌이자 밤 11시 40분 쯤 혁신학교 지정과 관련해 학부모들의 의견에 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결정은 정회숙 경원중 교장을 비롯해 학운위 위원장, 서울시 교육청 교육혁신과장 등이 합의안 도출에 성공하면서 성사됐다.
3자 합의 당사자인 서울시 교육청 교육혁신과장은 “이번 결정은 경원중을 조속한 시일 내에 정상화하겠다는 큰 방향에 맞춰 마련됐다”고 밝혔다. 이어 “경원중은 마을결합 혁신학교에 대해 학부모의 반대 의사가 있을 경우 이를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며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학교운영위 심의 등 공식 절차를 통해 관련 행정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교육청 “지정 절차 문제 없음” 입장 피력에 “지정철회 안되는 것 아니냐” 뒤숭숭
학운위 의결에 따라 해당 안건은 서울시 교육청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이에 서울시 교육청이 어떤 결과를 내리느냐에 따라 경원중의 향방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청은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어 학부모들의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 교육청은 학부모들의 행동에 우려스럽다는 반응까지 보여 앞으로 해당 사안이 또 다른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경원중의 혁신학교 지정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운위 심의 결과에 따라 경원중이 혁신학교 지정 철회를 요청할 경우 구성원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관련 절차를 밟아갈 것이다”고 운을 뗐다.
이어 “7일 밤에 있었던 학부모들의 집단행동은 매우 우려되고 유감스러운 행위였다”며 “학교 구성원들이 위협과 불안을 느낄 정도의 단체 행동을 한 것은 그 자체로서 정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 비교육적 행위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교직원들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판단해 혁신학교 지정 철회 의견을 존중키로 했다”며 “교권이 침해받고 학교 교육권이 위협당하는 상황에 대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고 학교와 교직원을 보호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교육청은 경원중 외에도 혁신학교 지정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 강동구 소재 강동고등학교 등 다른 학교에도 혁신학교 지정 철회 움직임이 번질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반대 의견이 있더라도 학교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 속에서 제시해야 한다”며 “향후 적법한 절차로 지정된 혁신학교를 개인 또는 집단 이기주의에 바탕해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경우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부모도 학생 교육을 중심에 두고 학교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길 바란다”며 “지역 사회 또한 교육의 본질은 뒤로 한 채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행동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원중 학부모들은 서울시 교육청의 발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원중 학생을 둔 한 학부모는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문제를 눈앞에 두고 가만히 방관하고 있을 학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며 “경원중과 서울시 교육청이 혁신학교 지정을 놓고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자리가 있었다면 이번 일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원중은 올해 8월 혁신학교 공모에 대한 학부모 설명회나 공청회를 한 차례도 열지 않았고 가정통신문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아 안내했다”며 “경원중과 서울시 교육청은 혁신학교 지정을 졸속으로 처리해 학부모와 아이들을 속여 놓고 정작 학부모들이 국민청원과 서명운동을 벌이고 학교 앞에서 교장 면담을 요구한 것을 두고 교직원들이 위협받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학교와 교사를 믿어온 학부모와 아이들의 신뢰를 져버리는 일이다”고 꼬집었다.
교육계 안팎에선 서울시 교육청의 입장에 비춰볼 때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지적하는 절차상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혁신학교 지정을 둘러싼 갈등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교육계 관계자는 “서울시 교육청은 2018년 12월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내 신설 초등·중학교의 혁신학교 지정을 놓고 학부모와 첨예한 갈등을 빚은 바 있다”며 “서울시 교육청은 해당 학교들을 1년 간 예비 혁신학교로 지정해 운영키로 발표하는 등 혁신학교 도입에 대한 뜻을 관철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헬리오시티 내 학교들은 학부모들의 지속적인 반발로 결국 일반학교로 전환했다”면서도 “이번에도 서울시 교육청이 혁신학교 지정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완고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만큼 이번 경원중의 혁신학교 지정 철회 과정 역시 원만히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우려했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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