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초부터 올해 신년사까지 주요 그룹 총수들은 ‘포스트 코로나’를 강조해왔다.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우리 사회는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다. 생활·소비패턴의 중심이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옮겨갔다. 산업계 전반의 질서도 개편됐다. 혁신에 게을렀던 기업들은 전과 같은 위용을 뽐내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롯데가 그렇다.
재계서열 5위 롯데그룹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유통 사업을 중심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국민에게 꼭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우리 생활 전반에 파고들었고 그렇게 사업성과를 내왔다. 국내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해 국민 대다수가 롯데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이 불편해지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여느 기업보다도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롯데를 흔들었다. 코로나19는 롯데 없이도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알려줬다. 롯데마트 대신 이용해야 했던 쿠팡과 마켓컬리는 넉넉한 만족감을 안겨줬다. 네이버와 11번가 등은 롯데백화점을 대체했다. 명품 정도를 제외하면 특정 재화를 구매하기 위해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방문해야 할 필요성이 점차 흐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롯데는 부리나케 야심작 ‘롯데온’을 출범했지만 돌아오는 건 혹평이었다. 그간 롯데온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사실상 실적 부진의 책임을 떠안고 경질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룹 내부적으로도 롯데온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라는 걸 엿볼 수 있다.
화학 산업에서도 롯데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 정유·화학업계가 전기차, 배터리 등 신규 사업의 고삐를 당길 때 롯데케미칼은 정통적인 화학 산업을 고수하고 있다. 신소재 등을 만들고 있다곤 하지만 배터리와 비교해 사업성, 성장 가능성 등이 떨어진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청사진을 내놓곤 있지만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경쟁사의 그것에 비해 추상적이다.
장기적으로 롯데가 지금과 같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큰 틀에서 롯데그룹이 단행했던 체질개선은 지금까지 직급체계 단순화, 임원진 ‘물갈이’ 정도가 전부였다. 아직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롯데가 실질적으로 바뀐 부분은 크지 않다.
잠재역량은 충분하다. 재계서열 5위 그룹이라는 점부터가 그렇고 롯데가 지닌 풍부한 자금동원력도 체질변화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 롯데그룹은 국내 주요 기업 중에서도 ‘부동산 부자’로 유명하다. 2018년 말 기준으로 롯데그룹의 토지자산 규모는 약 18조원으로 현대차그룹(약 25조원)에 이은 재계 2위었다. 삼성보다도 많은 토지자산이다. 이를 사업투자에 활용한다면 롯데는 의미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임병연 롯데미래전략연구소 소장(대표이사, 부사장)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임 소장은 그룹 내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호남석화에 입사해 그룹에 첫 발을 내딛은 그는 그룹 정책본부, 가치경영실 등을 거쳤다.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은 이력도 있다. 그간 롯데그룹 ‘2인자’로 활약했던 황각규 전 롯데지주 부회장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점에 ‘포스트 황각규’라는 평가도 나온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돈독한 신임을 받는 것으로도 알려져 차기 실세로도 유력 거론된다.
그의 직책에서 드러나듯 임 소장은 그룹 미래전략을 수립해야 할 중책을 맡고 있다. 흐릿한 그룹 미래경쟁력을 선명하게 그려내야 한다. 시작이 늦어진 만큼 효과는 확실해야 한다. 풀기 힘든 난제를 풀어냈을 때 임 소장은 차기 실세가 아닌 분명한 실세로 도약할 수 있다. 스스로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건 그룹의 재도약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롯데그룹의 미래 전략만큼이나 임 소장의 행보가 중요해진 셈이다.
[강주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1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