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 등 글로벌 경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에 발맞춰 상시적인 산업구조 재편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산업구조 재편의 핵심은 인적쇄신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발맞춰 그에 걸맞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과도한 노동권·정규직 보호로 인해 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인적쇄신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노조권력의 비대화로 인적쇄신을 시도하다 오히려 산업현장이 마비돼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전문가들은 ‘노동권·정규직 보호’라는 미명 하에 존재하는 과도한 규제를 개혁하고 미국 등 노동유연성이 확보된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 기업 발목 잡는 노동권·정규직 보호…유례없는 ‘해고금지법’까지 등장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하반기 신규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는 기업이 54.5%에 달했다. ‘하반기 신규채용을 하지 않겠다’는 응답도 13.3%로 집계됐다.
기업들이 채용을 포기하거나 아직까지 채용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이유는 코로나19 위기와 더불어 근로자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법안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업들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기악화(32.4%) △고용경직화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 어려움(14.7%) △인건비 부담 증가(11.8%) 등을 호소했다.
기업들이 체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노동유연성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9년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유연성은 141개국 중 97위를 기록했다. WEF는 “노동시장 내 강력한 내부자들이 영구적인 노동 계약과 관대한 혜택을 향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정규직이 높은 임금과 복지혜택을 누리면서 해고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에서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을 보장하고 있다. 단체행동권은 임금 또는 근로조건 등에 관한 고용자와의 단체교섭이 결렬됐을 경우 근로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집단적으로 근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다.
문제는 근로자들이 단체행동에 돌입했을 경우 생산을 지속하기 위한 노동력 투입이 필요한데 현행법상 대체근로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근로자의 지위는 과도하게 보장되고 불리한 입장의 사측은 근로자 측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정규직 보호를 위한 과도한 법 규제도 문제로 꼽힌다. 근로기준법 24조에 따르면 사용자가 경영상의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상황이 긴박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기준 등 복잡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실상 근로자의 해고가 불가능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높은 해고 비용도 노동유연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우리나라 해고 비용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근로자 1명을 해고하는데 1주일 급여의 27.4배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독일(21.6배), 프랑스(13배), 영국(8.3배), 일본(4.3배) 등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금액이다.
과도한 법 규제로 기업들이 채용을 망설이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문제해결은 커녕 오히려 규제를 더욱 확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함께 ‘해고금지법’ 입법을 추진 중이다. 해당 법안은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위기 상황’에서 양도·인수·합병 제외. 영업 양도 등의 기업 변동이 있을 때도 고용승계 보장, 일정 수준 이상 비정규직을 채용할 경우 고용부담금 부과 등의 내용이 골자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유연한 해고 등 선진국 노동유연성 확보 노력 벤치마킹해야”
다수의 전문가들은 글로벌 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산업구조의 변화 역시 필연적이라며 그 핵심인 인적쇄신을 용이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노동권·정규직 보호라는 미명 하에 각종 규제가 산적해 있어 구조조정 및 신규채용 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미 선진국의 경우 인적쇄신의 필수조건인 노동유연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법·제도 등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은 근로자의 파업 시 대체근로 금지 조항이 없다. 기업의 부당행위가 없을 경우 파업 참가자를 해고할 수 있고 대체근로 투입자의 지속 채용이 가능하다. 독일, 프랑스 역시 신규채용 및 하도급을 통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으며 가까운 일본도 대체근로 금지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진국들은 해고 문제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다. 미국의 경우 ‘임의고용의 원칙’이 존재한다. 회사와 직원이 각자 임의로 고용관계를 종료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회사는 별다른 사유가 없어도 미리 해고 통보를 하지 않고 직원을 해고 할 수 있다. 직원 역시 별다른 사유가 없어도 회사에 미리 사직 통보를 하지 않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
미국은 ‘일시해고제’도 도입한 상태다. 일시해고는 회사가 근로자와의 고용 관계를 일시적으로 끊고 나중에 사정이 좋아지면 다시 재고용할 것을 약속하는 방식이다. 또 노조는 사용자의 정리해고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하거나 쟁의행위도 할 수 없게끔 돼 있다.
이탈리아 역시 노동유연성 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탈리아 의회는 지난 2014년 해고요건을 완화한 노동법을 통과시켰다. 고용된 종업원에 대한 해고 요건을 대폭 완화했으며 고용주가 종업원을 재고용해도 12~24개월 치 월급을 지급하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도록 했다. 근로자의 적격성 결여 등 객관적인 사유에 의한 해고도 사전 통보만 하면 노동법원 심리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 원장은 “한국의 경우 한번 채용하면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한 나라다. 노조에 단체행동에도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정규직은 연봉으로 보상을 받다보니 횟수만 채우면 별다른 노력 없이 높은 임금과 복지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세계를 뒤져봐도 한국과 같은 노동권·정규직 보호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며 “국제 표준 기준에 맞춘 노동개혁이 시급한 상황이다”고 강조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노동유연성, 해고의 유연화 등을 기업의 편의적인 장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상황이 어렵거나 인력이 덜 필요해졌을 때, 사회적인 구조로 원하는 인재상이 달라졌을 때 기업이 불필요한 사람을 정리하고 필요한 사람을 채용하게 해야 기업의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또 “노동유연성이 확보되면 해고도 쉬워지지만 그만큼 또 다른 기회도 많이 창출된다는 사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며 “자신의 능력의 맞는 곳에 재취업이 그만큼 쉬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회의 장이라고 봐야 옳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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