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시장에서 고신용자가 중·저신용자보다 돈을 빌리기 힘든 ‘역차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히려 중저신용자가 신용이 높은 사람들보다 돈 빌리기 쉬운 실정이다. 이는 금융당국이 가계부채의 원인으로 고신용자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를 지목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달부터 개인차주별 대출액이 2억원을 넘으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돼 이러한 상황은 올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인터넷전문은행, 저신용자보다 고신용자 대출 금리 더 올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도 고신용자에 대한 대출 규제가 지속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 시중은행에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 대한 대출 한도를 연소득 범위 내로 제한하라는 지침을 내렸는데 최근 이를 올해 상반기까지 연장하라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대출 조이기’ 방침에 인터넷전문은행들의 경우 신규 대출과 마이너스통장 가입을 제한하거나 대출금리를 올리는 식으로 고신용자 대상 대출을 억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터넷전문은행이 당초 설립 취지와 달리 고신용자 위주의 대출영업을 한다고 금융당국이 지적한데 따른 것이다.
금융위원회(금융위)에 따르면 인터넷전문은행은 지난 4년간 중금리대출을 총 2조5000억원 공급했으나, 보증부 정책상품인 사잇돌대출을 고신용자(1~3등급)에게 66%나 공급했다. 또한 신용대출에서도 고신용자 대상 영업에만 치중해, 2020년 말 기준 인터넷전문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중은 12.1%로 시중은행 평균(24.2%)의 절반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위는 지난해 5월 ‘인터넷전문은행 중·저신용자 대출확대 계획’을 발표하며 인터넷전문은행이 신용등급 4등급 이하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리도록 직접 관리 감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인터넷전문은행들의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비중을 오는 2023년 말까지 30%를 넘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금융당국의 지적에 인터넷전문은행들은 부랴부랴 중금리 대출 확대에 나섰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일반신용대출 신용등급별 금리는 지난해 9월 중 취급된 대출을 기준으로 카카오뱅크 3~4등급이 4.47%, 5~6등급이 5.9%, 7~8등급이 8.61%로 나타났다. 케이뱅크는 3~4등급이 4.94%, 5~6등급이 6.91%, 7~8등급이 11.68%이었다.
11월중 취급된 일반신용대출 기준 신용등급별 금리는 카카오뱅크 3~4등급이 4.54%, 5~6등급이 6.20.%, 7~8등급이 8.82%로 나타났다. 케이뱅크는 3~4등급이 5.17%, 5~6등급이 6.34%, 7~8등급이 10.02%였다. 케이뱅크의 경우 3~4등급이 오른 반면 5~6등급과 7~8등급은 오히려 9월보다 각각 0.57%p, 1.66%p 낮아진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한국은행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한데다,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조치까지 겹치면서 사실상 중금리 대출이 막히자 인터넷전문은행들은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지난해 연말까지 카카오뱅크는 20.8%, 케이뱅크는 21.5%, 토스뱅크는 34.9%를 달성해야 했다. 올해 신용대출 목표치는 카카오뱅크는 25%, 케이뱅크는 25%, 토스뱅크 42%로 3.5~7.1%p 확대된다.
올해에도 고신용자 ‘대출 한파’ 지속될 전망
 |
|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이호연 기자] ⓒ스카이데일리 |
고신용자에게 불리한 대출금리는 은행권에만 국한되지 않고 타 업권으로도 확대되는 모양새다. 카드사의 카드대출 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한 가운데 고신용자 금리가 더욱 올랐다.
3일 여신금융협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기준 7개 전업카드사(롯데·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 가운데 5개 카드사의 평균 금리가 9월에 비해 크게 올랐다. 특히 장기카드대출(카드론) 금리의 경우 1~2등급 고신용자의 지난해 11월 대출금리는 지난해 9월과 비교해 5곳에서 상승했고 5~6등급 중신용자 금리도 5곳에서 올랐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신용자의 금리 증가폭이 중신용자보다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5~6등급의 금리는 최대 1.51%p 올랐지만, 1~2등급의 금리는 두 배에 가까운 최대 2.78%p 상승했다. 회사별로도 편차가 컸다. 롯데카드와 삼성카드, KB국민카드의 경우 1~2등급 금리 증가폭이 훨씬 컸다. 1~2등급 금리가 5~6등급에 비해 적게 증가하거나 떨어진 곳은 신한카드와 우리카드 2곳이었고, 하나카드는 모든 등급에서 금리가 인하됐다. 특히 현대카드의 경우 1~2등급 대출금리는 0.98%p 오른 반면, 5~6등급 대출금리는 0.65%p 인하됐다. 종합하면 고신용자의 대출 금리가 더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이에 대해 카드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고신용자의 카드론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면서 “카드사들이 자금을 카드채로 공급하는데,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카드채 금리가 빠르게 오르고 있어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금리도 오를 것이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가계부채를 지목하면서 올해에도 이러한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점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발표한 올해 신년사에서 “총량관리에 기반하되 시스템관리를 강화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를 4~5%대로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6%대에서 더 낮추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어 “분할상환·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높이는 한편 서민·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조치도 병행하겠다”면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개인사업자대출은 차주의 경영·재무상황을 세밀히 점검하고 차분히 연착륙을 유도하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개인사업자 대출이 금융당국의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에 대해서도 고삐를 죄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한편 이번 달부터 적용되는 차주단위 DSR 40% 규제로 인해 대출문턱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DSR 규제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카드론 등을 포함한 개인별 총 대출액이 2억원을 초과할 경우, 1년간 내는 총대출액 원리금 합계액이 연소득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만 신규 대출이 가능하도록 제한한다. 7월부터는 기준이 1억원 초과로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은행권 대출 규제로 인한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DSR 적용기준 역시 기존 60%에서 10%p 줄어든 50%로 낮아진다.
여기에 DSR 산정시 적용하는 대출만기가 기존 ‘최대만기’에서 ‘평균만기’로 바뀌게 된다. 신용대출은 기존 7년에서 5년으로, 비주택담보대출은 10년에서 8년으로 각각 축소된다. 이럴 경우 DSR 계산시 대출 가능 금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고소득·고신용자에 대한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풀어주는 것은 금융의 기본에 비춰 이해하기 힘든 조치다”라면서 “자칫 부실대출 비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어 은행 건전성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