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레이스가 본격 가동되고 있다. 후보들은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다시 살리겠다고 각자의 목청을 높인다. 유권자 표심은 예리하게 이들을 주시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비율이 일관되게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정권 재창출을 희망하는 비율보다 15% 내외의 격차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현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에 대한 불만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결과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성공적 K-방역을 외치지만, 국민 평가와는 괴리감이 큰 것도 이를 부채질한다. 결국 모든 것은 경제로 귀결되고, 경제와 이와 연관된 방역 정책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박감이 민심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 타당하다. 당면한 위기를 극복도 중요하지만 한국호(號)의 미래를 재설정해 지속 가능한 국가가 되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자칫 선진국에 들어서자마자 추락하는 이른바 ‘선진국 함정’을 불식시킬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누가 선출되든, 그리고 역량의 문제를 떠나서 다음 5년은 절체절명의 시기가 될 것이다.
우선 지난 5년 헝클어진 국가 경제의 펀드멘탈을 전면 손질해야 한다. 지나치게 분배에 치중한 나머지 성장의 불씨를 지피는 경제 주체들의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성장 동력이 추가로 생겨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국가의 종합적인 경쟁력이 후퇴하기 마련이다. 우리보다 앞서간 선진국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성장이 이뤄져야 분배 여력이 충전되고, 현재 직면한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단계적으로 풀린다. 청년 실업, 저출산, 지방 소멸, 노인 빈곤 등 당면한 현안들을 가진 파이로 퍼주는 포퓰리즘적 접근 방식으로는 곳간이 거덜나고, 궁극에는 일본과 유사한 혹독한 잃어버린 세월을 재촉하는 길밖에 없다.
퇴행적 정치, 무능한 정부, 국가부채 폭증, 글로벌 리더십 부재, 젠더 갈등 등 고질적 후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해결한답시고 말단지엽적 혹은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면 또 다른 실패한 정부를 보는 불행을 피하기 어렵다. 리더의 복이 없다고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리더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채찍을 들어야 한다.
한국 경제에 당장 요구되는 것은 안방 강화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신(新)자유주의 기조에 의해 파생된 자본의 세계화에 편승해 한국은 가장 혜택을 많이 받은 국가 중 하나로 지목된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부(富)의 편중과 기회의 불균형 등 자본주의의 타락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솟구쳐 나왔다.
또 다른 최대 수혜자인 중국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글로벌 질서 재편 움직임과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대두하고 있다. 연이어 터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은 글로벌화에 대한 원초적 의구심을 적나라하게 표출, 대응 수단으로 지역 혹은 개별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생존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글로벌 트렌드가 태동한다. 기존 글로벌 공급망 와해라는 초유의 경험을 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부분 국가가 밖에 나가 있는 경제 주체들을 속속 안으로 불러들이는 데 공을 들인다. 심지어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은 외국 기업까지 회유와 압박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판이다.
경쟁국, (美)제조업 부활·(中)홍색공급망·(日)디지털 모노쯔구리로 안방 강화에 사활 걸어
최근 수년간 현 정부는 경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을 시장 논리보다 이념에 치중하는 경향을 집요하게 보였다.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반기를 들고 싶은 집권 세력들이 이른바 장기판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이념이 집요하게 정책에 반영됐다. 소득주도성장, 반(反)시장적 부동산 정책 남발, 주 52시간 근무, 원전 폐기, 정치 방역, 중대재해법 등의 악수를 연발하면서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빈부 격차는 심화하고, 백수 혜택이 늘어나면서 ‘공짜 돈’에 의존하려는 심리를 부추겼다. 양질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국민 세금으로 만든 허드레 일자리만 늘렸다. 국내에선 희망이 없다는 판단으로 해외로 나가려는 기업, 청년, 기술 인력들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중국에서 설 자리를 잃은 기업이나 상공인들도 국내로 유턴하기보다 또 다른 해외 본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기존 기업의 국내 투자는 줄고 새로 생기는 스타트업도 밖에서 둥지를 튼다. 한국에 신규로 들어오지 않고 보따리를 싸서 철수하려는 외국 기업이 더 많다. 경제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편으론 입만 열면 대전환의 시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편협한 사고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愚)를 반복한다. 디지털 혹은 에너지 전환을 기치로 내걸면서 마치 한국 경제의 전체 미래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이는 경제의 틀을 바꾸는 수단에 불과하고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전면 수정이 대세이지만 이를 통한 자국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물밑 글로벌 다툼이 치열하다.
미래 산업 선점이라는 다각적인 포석을 깔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탄소중립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글로벌 석유기업들은 7년 만에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탈(脫)탄소가 유가 혹은 물가 인상을 부추겨 ‘그린 인플레이션’이 글로벌 경제의 복병으로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디지털 혹은 에너지 전환 드라이브가 경제에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며 현실화하고 있다. 긴 호흡으로 속도 조절을 하면서 경제의 선순환을 일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는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국민 절반 이상이 차기 정부의 1순위 과제로 경제 활성화를 바란다. 기업 10곳 중 9곳이 새 정부는 규제 혁파와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 조정을 우선 주문한다. 규제를 푼다는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한 지가 3년이 되지만 별별 조건들이 달리면서 신(新)사업이 줄줄이 폐업하는 악순환이 전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수요자보다 공급자 편이 논리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고용시장의 경직성과 대기업 강성 노조로 인해 업종별 임금 격차가 일본·유럽연합(EU)보다 커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생산성은 오르지 않고 임금만 올라서는 기업가 정신을 훼손시키고 저임금·고생산성 국가로 기업을 내쫓는 빌미를 제공한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좁은 국내 시장보다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해 가동력을 높여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 체계에서 한국 경제가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내와 해외의 산업 기반이 균형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당분간은 급격하게 경사가 돼 있는 해외에 대한 시각을 국내로 돌리는 것이 급선무다. 다음 정부에게 안방 경제를 추스르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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