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임현범 차장|유은주·나광국 기자]최근 경기침체 장기화와 더불어 체감물가까지 빠르게 상승하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굳게 닫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폭염 이후 농산품 가격까지 급상승한 탓에 ‘장을 보는 것이 무섭다’는 반응마저 나오고 있다.
할인에 몰리는 발길, 물건 집었다 내려놨다 반복…“수입 그대론데 물가만 오른다”
최근 소비자심리지수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에 다르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2다. 이는 지난 2017년 3월(95.3)이후 17개월 만에 최저치다. CCSI는 소비자동향지수(CSI)중 6개 주요지수를 이용해 산출한 심리지표다. 장기평균치(2003년1월~2017년12월)를 기준값 100으로 정하고 높으면 소비에 비교적 관대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낮으면 그 반대다.
소비자심리지수가 악화된 이유로는 국민들의 체감물가 상승이 꼽힌다. 각종 생필품이나 농산물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발표된 물가 추이를 보면 채소류는 전 월 대비 30.0%나 뛰었다. 2016년 9월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전월대비기준)이다. 올 여름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면서 채소류 공급이 감소한 탓이다. 공업제품(기름값), 서비스(임대료) 등의 가중치가 비교적 높은 항목 역시 비교적 높은 물가상승률을 보였다.
스카이데일리가 서울·시내 전통시장 및 대형마트 등에서 만난 소비자들의 반응은 수치상으로 나타난 것 보다 더욱 심각했다. 소비자들 대부분이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울 용산구 용문동에 위치한 용문전통시장이었다. 이곳에서는 손님들을 끌기 위한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고구마순 1000원”을 외치는 행상인의 앞에 손님들이 모이기도 했다. 하지만 별다른 호객행위 없이도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곳이 있었다. 바로 일시적으로 할인행사를 하고 있는 정육점 앞이었다.
긴 줄을 서서 고기를 사들고 나온 김분래(여·65)씨는 “전단지를 보고 할인 행사를 한다는 시간에 맞춰 일부러 시장을 왔다”며 “요즘 고깃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세일하지 않으면 사 먹기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한 야채 가게를 손으로 가리키며 “저 주먹만 한 배추 한 덩이가 2000원인 것 좀 보라”며 “야채 가격이 가장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임현주(여·60) 씨 역시 과일·야채 값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임 씨는 “무 1개에 5000원, 배추 한 포기에 최근 7000원에 파는 것도 봤다”며 “수입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오르는 것 같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변은주(여·41) 씨는 “아이 2명을 키우다보니 한 달 식비가 7~80만원은 된다”며 “상추·나물·대파 등 자주 사먹는 음식재료들의 가격이 최근 거의 2배 수준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마트에서 한 번 장을 보면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해도 10만원이 훌쩍 넘기 마련이다”고 덧붙였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로 인해 대형마트는 물론 재래시장에서도 손에 든 물건을 들었다 놨다하며 구매를 고심하는 소비자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 용산역 이마트에서 만난 박세영(여·35·가명) 씨는 쌀을 파는 코너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박 씨는 “쌀값이 올라 싼 것을 사자니 밥맛이 걱정돼 고민 중이었다”며 “예전엔 3만원 대면 10kg을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4만원을 넘는다”고 말했다.
민족 최대 명절 무색케 하는 닫힌 지갑…전문가들 “얼어붙은 소비심리 부작용 클 것”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도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녹이진 못하는 모습이다. 추석을 앞두고 대형마트에서는 다양한 선물세트 코너를 마련해 놨다. 할인쿠폰들도 잔뜩 준비해 놨다. 하지만 생필품 구매도 망설이는 소비자들에게 선물세트 코너는 철저히 외면받고 있었다. 이따금씩 구경을 하러 온 소비자들도 잠깐 살펴보다 이내 발길을 돌렸다.
서울 동작구 홈플러스에서 만난 김수정(여·35)씨는 “지난해만 하더라도 한우세트가 7만원대였는데 올해는 무려 2만원이나 올라 9만원대에 달한다”며 “아기에게 사주려는 (장난감)과자만 하더라도 가격이 3000원이니 선뜻 사주기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추석을 앞둔 주부들은 벌써부터 근심어린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원시장에서 만난 나명숙(여·60·가명) 씨는 “제사에 쓸 음식은 싱싱해야하기 때문에 주로 재래시장에서 사는데 최근 과일이며 야채며 가격이 너무 올라 걱정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가들은 소비심리가 오랜 기간 위축되는 상황은 결국 내수경제 침체로 이어지기 때문에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심리 침체로 추석이 제수용품이나 설빔 등을 챙기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도 문제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며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게 되면 돈의 흐름이 막혀 결국은 기업 그리고 자영업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현재 경제지표를 예민하게 보고 정책결과를 받아들이고 성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며 “지속적인 소비심리 악화는 결국 서민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권오인 경제실천민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직원·자영업자들이 일반적인 소비주체인 경우가 많다”며 “임금상승의 수혜를 못 얻는 이들이 물가 상승만 체감하니 지갑을 닫게 되고 돈이 돌지 않아 내수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구조 개혁을 통해 (경기침체)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며 “근로장려금(ERTC)같이 재정을 풀어 지원하는 단기적인 경기활성화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시장이 자생력이 생기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은주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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