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혁신도시’ 조성 계획의 핵심 골자는 지방에 공공기관을 이전, 지역 내 산·학·연관 네트워킹을 구성해 지역의 변화와 발전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혁신도시를 지역 발전의 거점으로 삼아 낙후된 지방 경제를 살리고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경제와 생활, 문화적 차이를 해소하겠다는 복안이다.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혁신도시 발전 계획은 강원도와 경상북도, 전라북도, 제주도 등 전국 10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혁신도시 조성 계획에 따라 수도권에 있던 공공기관들은 하나 둘 지방으로 이전했으며 혁신도시는 점차 완성돼 가고 있다. 하지만 혁신도시 조성은 당초 계획과 달리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시간적·경제적 부담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혁신도시 내 정주인구도 늘지 않으면서 지역 상권 역시 침체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인정하고 정주인원 증가를 위해 ‘혁신도시 종합발전계획’까지 발표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실효성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스카이데일리가 금주 이슈포커스 주제를 ‘혁신도시의 그늘’로 선정하고 현재 혁신도시 근로자들의 삶과 각종 문제점, 대안 등을 세 편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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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이철규 부장|조성우·강주현 기자] ‘혁신도시’는 노무현정부 시절인 지난 2005년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인구 수요를 분산시키고 지방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전국 각지에 자리한 혁신도시는 스마트헬스케어 도시를 꿈꾸는 원주시를 비롯해 총 10곳에 달한다.
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서는 혁신도시에 대해 실효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어 주목된다. 당초 취지와 목적과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인구 분산 대신 다수의 ‘기러기아빠’를 낳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지역 경제 발전은 커녕 오히려 애꿎은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하루 6시간 길에서 허비…외로운 기러기아빠 자처하는 혁신도시 공무원들
원주 혁신도시에서 근무하는 도로교통공단의 강동수 감사실장은 2016년 2월 도로교통공단이 처음 원주혁신도시로 이전했을 때 서울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했다. 6시40분에 왕십리역에서 출근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원주혁신도시까지는 꼬박 1시간40분 가량이 소요됐다.
연일 굵은 빗방울이 이어지는 장마철이나 단풍시즌이 시작되는 가을 시즌에는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량들이 많아 이른 아침에도 교통체증에 시달려 출·퇴근 시간이 더욱 길어지기 일쑤였다.
당시 그는 6시40분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6시면 집에서 나와야 했다. 출근 시에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면 하루 6시간을 출·퇴근에 투자하는 셈이었다. 시간도 그렇지만 더욱 큰 문제는 업무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일상에 몸이 견뎌내질 못한 결과였다.
결국 그의 선택은 ‘기러기아빠’가 되는 것이었다. 강 실장은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을 좀 더 생산적인 일에 투자하기로 하고 공단에서 제공하는 아파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3명이 함께 사용하는 아파트가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아침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는 7시면 일어나 관사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고 뜨거운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곤 한다. 더욱이 퇴근 후에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수영장을 다닐 수도 있게 됐다. 한동안 손에서 내려 놓을 수밖에 없었던 책들을 읽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후배들도 마찬가지다.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많은 직원들이 아침이나 저녁시간을 이용해 헬스장이나 수영을 하곤 했다. 일부 직원들은 영어나 중국어 등 자기개발에 시간을 투자하기도 했다.
주목되는 점은 삶의 중심을 원주로 옮기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지만 반대로 단점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우선 강 실장은 가족들로부터 아빠가 없어 공허하다는 볼멘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그 역시 특히 가족과 관련된 문제나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턱없이 대화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강 실장은 그동안의 삶의 근거지였던 서울을 떠나면서 친구나 친지들과의 만남의 시간도 줄어 외로운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아졌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다 다시 원주로 내려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급하게 이루어지는 번개모임이나 행사 참여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다보니 친구들과의 관계도 다소 소홀해졌다.
아울러 업무를 진행하는데 있어 서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단점이었다. 서울에 비해 원주가 대중교통이 발달돼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혹 경북이나 전남의 지사를 찾아가기 위해선 몇 차례 버스를 갈아타거나 승용차를 이용해야 했다. 우리 나라 대중교통 체계가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공단 내에는 최근 자비를 들여서라도 승용차를 구입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는 게 강 실장의 설명이다.
강 실장은 “많은 직원들이 원주로 이전하면서 본사가 강원지사가 된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한다”며 “또한 지방에 있다 보니 서울에 생활권을 둔 사람들은 입사를 꺼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젊은 직원들 중심으로 아예 가족과 원주에 자리 잡는 이들이 늘곤 있지만 모든 직원이 그런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경제적·시간적 부담 큰 생활, 혁신도시 자리잡기엔 가족들 삶의 질이 걱정
세종시 조치원 소방서에 근무하는 권낙훈 소방행정과 과장은 고민 끝에 가족과 함께 세종시에 둥지를 텄다. 근무지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처음엔 권 과장 혼자 이곳에서 생활했지만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집에서 느끼는 안정감을 누릴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과거 혼자 세종에 거주할 적엔 일산에 갈 수 없는 평일에는 대부분의 저녁시간을 동료들과 밥을 먹거나 함께 회식을 하며 보내곤 했다. 관사는 단지 잠을 자는 공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동료들과 회식이나 영화를 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 같이 함께 지낼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권 과장은 작은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다.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주중에는 세종, 주말에는 일산을 오가는 두 가구 생활을 시작됐다. 아내는 혼자 사는 남편을 위해 각종 반찬을 보내거나, 몸에 좋은 건강식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보내준 반찬에 밥을 해 식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하루 이틀 고된 업무에 지친 퇴근 시간에 직접 밥을 차려먹기는 여간 까다로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업무를 끝내고 혼자 회사 식당에서 혼밥을 즐기는 일이 잦아졌다. 두 집 살림으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권 과장은 아내와 합치기로 결정했다. 세종시에 아파트를 구입해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했다. 가족이 함께 살면서 삶은 더욱 풍족해졌다. 주말이면 인근의 금강자연휴양림을 찾거나 세종호수공원들을 걸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우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팀장은 나주혁신도시와 서울의 집을 오가는 주말부부 생활을 3년째 이어가고 있다. 주중에는 나주 집에서 출퇴근 하고 금요일 퇴근 후에는 KTX를 이용해 서울 집으로 가 주말을 보낸다.
한 팀장에 따르면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직원들 뿐 아니라 나주혁신도시로 이전한 기관에 다니는 직원들 중 상당수가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나주혁신도시 내에 문화시설이나 교육시설이 아직은 서울에 비해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가 중학생 이상인 경우 대부분 서울에서 학원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일부 직원들의 경우 나주보다 교육여건이 좋은 광주에 집을 구해 출퇴근하는 경우도 많다.
주말부부가 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서울과 나주의 부동산 시세차 때문이다. 서울에서 집을 팔고 나주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직원들의 경우 그동안 서울의 집값이 2~3억씩 올라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을 겪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나주 역시 아파트 가격이 3~4천만원 정도 오르긴 했지만 서울의 상승 속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가족과 함께 어렵사리 나주에 자리 잡더라도 아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화 시설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삶의 질 또한 서울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딱히 놀만한 시설도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지역처럼 외국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래서 많은 직원들이 야근을 해서라도 일을 처리한 후 주말에는 서울로 올라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결국 ‘기러기아빠’가 될 수밖에 없는 나주 혁신도시 근로자들의 고민은 경제적·시간적 부담이다. 주말부부를 청산하고 매일 같이 KTX를 타고 다닐 순 있지만 이는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 KTX보다 싼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편도에 5시간을 소비하기엔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너무나 큰 낭비다.
지방에 지사가 있는 공공기관의 경우 나주를 벗어나 수도권지역으로 발령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한 팀장이 소속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젠 짧은 주말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야근을 마다하지 않는 삶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철규 기자/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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