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 원성을 무릅쓰고 보험료 인상을 단행한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무분별한 보험금 청구로 인한 ‘보험금 누수→손보사 부담 증가→보험금 인상→소비자 부담증가’ 등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이롱환자로 인해 발생한 보험금 누수액은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손보사의 보험료 인상을 막을 게 아니라 ‘나이롱환자’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 마련부터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로지 ‘소비자보호’만을 중시하는 지금의 제도는 종국엔 더욱 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도적 보완책으로는 손보사 자체적으로 보험금 지급 관련 조사를 강화하는 한편 자체적으로 보험금 지급 유무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금융당국은 보험금 수취자에 대해서도 사고 및 보험금 수취 경위 등을 철저히 조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특히 손보사의 아킬레스건인 민원 관련 부분에서는 소비자를 무조건 피해자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소비자와 손보사의 중립적인 입장에서 판단·조치하는 방안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100%까지 치솟은 자동차보험 손해율에 국내 손보사 상반기 실적 ‘우울’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9월에 이어 10월에도 90%를 돌파하면서 국내 손보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보험사의 손해율은 100%를 훌쩍 넘어섰다. 하반기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상반기보다 더 높은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업계에선 이와 같은 양상이 계속되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각각 88.3%, 89%, 89%, 88.6% 등이었다. 롯데손보와 MG손보의 경우 9월까지 각각 102.6%, 116.9%의 누적 손해율을 기록했다. 자동차보험 시장은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등 이른바 ‘빅4’가 80% 이상을 점유하고 나머지 손보사들이 20%를 두고 경쟁하는 구조다.
보험사들의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의 이유로는 다양한 요인이 꼽히고 있다. 우선 보험금 지급 기준이 되는 육체노동자의 정년이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된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다음으로는 자동차 정비요금이 올라 보험료 인상 요인이 늘어났지만 이를 제대로 보험료에 반영하지 못해 손해율 수치가 오르게 됐다는 주장이 뒤를 따른다.
특히 최근엔 일명 ‘나이롱 환자’로 대표되는 보험사기가 손해율 상승의 요인으로 급부상해 눈길을 끈다. 보험업계는 자동차보험의 대인보험금 청구 가운데 한방보험금의 비중이 급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것을 손해율 인상의 숨은 요인으로 꼽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보험 진료비는 1조9762억원으로 전년 대비 11.7%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한방진료비는 7308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29.8%나 증가했다. 한방보험금 청구 증가는 허위 또는 과다 입원, 사고내용 조작 등 보험사기에 한방치료가 쉽게 이용되고 있는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공교롭게도 한방진료비 청구액이 급격히 상승한 올 상반기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역대 최고, 적발인원은 역대 2번째를 기록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월 올해 상반기 보험사기 적발금액이 413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4억원 증가해 반기 기준 최고금액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17년 상반기 3703억원이었던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2018년 4000억원을 기록한 뒤 올 상반기 더 늘어났다. 적발인원도 4만3094명으로 전년 보다 4407명 증가해 2017년 상반기 4만4141명 이후 역대 2째로 많은 인원이 적발됐다. 2018년 3만800명대로 떨어진 뒤 올해 다시금 반등했다.
사기 유형별로 살펴보면 고의사고 유형은 감소지만 허위·과다사고 유형이 늘어났다. 속칭 ‘나이롱환자’가 여기 해당된다.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장기 손해보험 사기 적발액(3561억원)은 지난해 기준으로 약 17% 급증했다. 질병·상해보험 등에 가입해 허위·과다 진단을 이유로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덜미를 잡힌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나이론 환자’로 대표되는 보험사기와 보험지급 기준 변경 등에 따른 손해율 상승으로 국내 손보사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가까이 감소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손해보험사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조4850억원으로 전년 동기 2조1069억원에 비해 6219억원(29.5%) 감소했다.
이 기간 보험영업손실은 1조1132억원에서 2조2585억원으로 손실폭이 2배 이상 확대됐다. 투자영업이익은 4조355억원에서 4조2927억원으로 2572억원(6.4%)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보험사기가 근절되지 않으면 보험료 인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 몫이라고 지적한다.
김덕용 프라임에셋 팀장은 “매년 증가하는 보험사기는 보험금을 타내려는 이기적인 소비자들로부터 발생한다”면서 “작은 사고에도 병원에 장기 입원하거나 허위 진단을 통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보험사기는 결국 보험료 인상을 부르고 국민 피해를 부추기는 결정적 요인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보험시장 전반의 안정화를 위해선 제도적인 보완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보험료 인상 숨은 주범 한방보험금…“나이롱환자로부터 보험사 보호하는 제도 마련 시급”
보험업계는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해 보험료 인상 요인을 전부 반영할 수 없다면 손해율을 악화시키는 요인에 대해서라도 제도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동차보험의 대인보험금 청구에 있어 비중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 한방보험금과 관련해 보험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동차보험 총 진료비 중 한방진료비 비중 및 유형별 내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자동차보험 총 진료비 중 한방진료비 비중이 41%를 차지했다.
자동차보험에서 한방진료 비중은 2015년 23.0%에서 2016년 27.7%, 2017년 31.3%, 2018년 36.1% 등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 상반기 한방진료비는 4288억원으로 2015년 한해 한방진료비 3576억원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한방진료비 중 비급여 진료비는 2050억원으로 전체의 47.8%에 달했다. 항목별로는 △첩약 1050억원(51.2%) △추나요법 458억원(22.3%) △약침 380억원(17.5%) △한방물리 145억 원(7.1%) 등의 순이었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치료받으러 다니는 통원진료의 경우 한방이 양방을 크게 앞질렀다. 지난해 한방 통원진료비는 5263억원으로 전체 통원진료비의 65.4%를 차지했다. 2015년 한방이 양방을 처음 추월한 이후 꾸준히 비중이 늘고 있다. 지난해 양방 통원진료비는 2780억원으로 한방에 크게 못 미쳤다.
문제는 한방진료의 경우 상대적으로 비급여 항목이 많은데다 동일증상 환자도 한의원, 한방병원 등 의료기관에 따라 치료 기간이나 비용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자동차보험에서 한방 건당 진료비는 2015년 6만5997원에서 올해 상반기 9만596원으로 37.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1인당 진료비는 78만원에서 86만1000원으로 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방진료는 소수의 한방 의료보험을 제외하곤 자동차보험에서만 보장해준다. 국민건강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환자도 본인부담금을 내지만 자동차보험은 본인부담금이 전혀 없다. 급여뿐 아니라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도 모두 보상된다. 자동차사고로 치료를 받게 되면 비급여 진료로 분류되는 치료는 자기 부담 없이 자동차보험으로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보험업계는 자동차보험 사기증가와 한방진료비 급증의 원인으로 자동차보험 수가기준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 등의 검토와 평가를 거치는 건강보험 수가와 달리 자동차보험은 수가기준을 만드는 데 별도로 규정된 절차가 없다. 국토교통부가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기준고시를 개정해 별도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과잉진료비를 삭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진료수가 기준이 없거나 불분명하면 별도의 심사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 건강보험과 달리 자동차보험은 비급여에 대한 통제가 거의 안 된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뇌졸중 환자에게 수가 약 1만3000원 짜리 치료를 실시할 경우 하루에 몇 번까지 수가를 인정할 지 세부 기준이 없을 때 건강보험은 심평원이 진료심사평가위원회를 열어 기준을 정할 수 있다.
반면 자동차보험의 경우 2013년부터 심평원에 진료수가에 관한 심사를 위탁한 후 진료수가분쟁심의회의를 열 수 없게 돼 세부 기준을 만들 수 없고 청구하는 대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송윤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건강보험 환자와 달리 본인부담 진료비가 없는 자동차보험 환자는 의사 처방에 수동적으로 의존하고 과잉진료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통사고 환자가 한방진료를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한방 의료기관의 진료비 청구자료에 한약의 성분·원산지·효능 표기를 의무화하고 과잉진료를 막기 위해 한방 비급여항목의 진료수가 및 인정기준 명확화, 양한방 유사진료행위 중복시술 제한 기준 마련 등을 도입해야 자동차보험 손해율과 보험금 안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방진료비 수가기준 설정과 더불어 금융소비자에 대한 금융당국의 과도한 보호도 손보사의 손해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금융당국은 보험료 지급과 관련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민원 제도를 시행 중이다. 보험금 수취에 어려움을 겪는 등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와 선량한 피해를 막는다는 취지다.
그러나 해당 제도는 나이롱환자가 손보사를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이용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민원 접수 현황을 공개해 손보사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하는 등 민원성격 등에 관계없이 단순히 민원건수 자체로 손보사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손보사 입장에선 민원성격 등에 관계없이 민원을 최대한 안 받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셈이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 민원시스템 자체가 소비자 권익에만 초점에 맞춰져 있다 보니 나이롱환자라는 100% 확신이 있어도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한다면 금융당국의 제재가 무서워 보험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며 “최근에는 민원을 악용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데 보험금 관련 민원이 접수되더라도 소비자와 손보사의 중립적 입장에서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나이롱환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고 말했다.
[나광국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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