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규정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피란민과 만남에서는 푸틴 대통령을 “도살자(butcher)”라고 지칭했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의 희생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크고 작은 분쟁들이 발발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고한 생명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어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집중 공격이 한 달가량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에서는 지금까지 민간이 5000명 이상 희생되고 도시 대부분이 러시아 공습에 파괴됐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 인터뷰에서 “불행하게도 우리는 점령군 손안에 있다”면서 “아직 주민 16만명이 남아있으나 식수, 전기, 난방이 모두 끊겨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두렵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20일 마리우폴 주민 약 400명이 대피한 예술학교 건물을 폭격했으며, 16일에는 주민 약 2000명이 대피해 있는 극장 건물을 직접 공격해 전 세계의 비난을 샀다.
더욱이 건물 앞뒤의 바닥에 큰 글씨로 러시아어 단어 ‘어린이들’이라고 적어뒀음에도 무차별 공격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습 후 우크라이나 당국은 130명을 구조했을 뿐 파괴된 극장 건물 잔해 아래 약 1300명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는 전쟁… 영토·바다 등으로 갈등 확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전쟁이나 내전을 겪고 있는 분쟁지역을 살펴보면 중국,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예멘 등이 있다. 현대사회의 분쟁은 인종, 민족, 종교, 역사, 문화,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적 이익 등의 복합적 요소들로 혼재돼 있다.
국가 간 분쟁은 군사 기술 발전과 함께 지리적 경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영토뿐만 아니라 바다를 중심으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례로 중국 남동부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등으로 둘러싸인 남중국해 일대는 중국과 이를 둘러싼 주변국 간의 갈등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역이다.
남중국해는 총 700여개의 암초와 산호섬 등으로 구성된 4개의 군도가 있다. 이곳은 중동에서 중국으로 오는 중요한 해양수송로이며 풍부한 어족 자원과 엄청난 지하자원이 묻혀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한국, 일본, 대만 석유 수송량의 80% 이상이 이곳을 경유한다.
남중국해를 두고 중국과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6개 나라가 영해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해군 남해함대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호와 징강산호, 핵 잠수함을 비롯 20만명이 넘는 병력을 남해 함대에 주둔시키고 있다. 베트남도 러시아에서 호위함과 디젤 잠수함 등 첨단 무기를 도입했다. 필리핀 역시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군 현대화를 추진했다.
전문가들은 남중국에서 영해권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동북아문제 전문가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와 중국 남중국해연구원 우스춘 원장은 중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군사충돌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보겔 교수는 인터뷰에서 과거 1차 세계대전 당시 매우 작은 사건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남중국해에 아주 사소한 마찰로 전쟁이 격화될 수 있으며 이를 통제하지 못하면 재앙과 같은 결과를 불러와 결국 모든 국가가 패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 원장도 “중·미 관계가 영역분쟁에서 전방위분쟁으로 바뀌고 있고, 그 과정에서 남중국해는 양국의 핵심 분쟁지가 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군사충돌을 촉발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원인으로 대만 문제도 거론됐다.
대만을 놓고 중국과 미국 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중국 정부는 대만을 중국의 분리된 지방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미국이 대만 독립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불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다”며 “불을 갖고 노는 사람은 화상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평화적 수단을 통해 대만과의 통일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유엔 “군부가 미얀마인들의 생명 노골적으로 경시”
인구 수 약 5441만명의 미얀마는 지난해 2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2020년 11월 총선이 부정선거라 주장하며 정권을 잡았다. 군부는 이에 맞서는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1년이 지난 현재 최소 민간인 1600명이 희생됐고 44만명 이상이 피란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군부는 무자비한 탄압과 반군을 색출하겠다며 대규모 공습까지 벌였지만 국제사회 개입은 미미했다. 이에 따라 미얀마 인구의 3분의 1인 1400만명은 식량·의약품 등을 지원받아야 하는 절박한 상태이지만 군부에 의해 대부분 인도적 지원이 차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은 15일 ‘2021년 2월1일 이후 미얀마 인권 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미얀마 군부가 반인도적 전쟁 범죄를 자행했음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얀마 군부가 최소 1600명을 살해하고 1만2500명 이상을 구금했다고 명시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군부가 미얀마인들의 생명을 노골적으로 경시했다”며 국제사회가 폭력의 소용돌이를 막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첼레트 대표는 “미얀마 국민이 겪고 있는 끔찍한 국제법 위반 상황은 단호하고 결연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며 “더 많은 사람이 그들의 삶과 권리, 생계를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의 의미 있는 행동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인구 약 3160만명의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과의 전쟁 이후 탈레반 세력이 지배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2001년 알카에다 9·11테러 지원세력으로 지목돼 미군에 의해 카불 등 주요 지역에서 축출당했다. 그후 아프가니스탄은 새 헌법을 선포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국가를 통합하고 안정화하는데 실패했다. 지난해 8월 미국이 손을 떼면서 탈레반 정권이 다시 들어섰다. 이후 테러 등이 이어지며 400명 가까운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 인구의 절반이 넘는 2300만명이 굶주리고 있어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세계 곳곳에 머무는 난민은 26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3월 아프간을 방문한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사무총장은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아프간은 매우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며 “정치적 관심과 자원이 필요한 다른 지역 상황도 잊거나 간과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티오피아·예멘 등 식량 부족으로 아사 위기
커피로 유명한 에티오피아는 2020년 11월부터 티그라이 지역 정부와 중앙정부가 내전을 벌이고 있다. 인구 약 1억1500만명의 에티오피아는 4개의 다른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인구 수가 가장 많은 게 오로모족이다. 오로모족 출신인 아비 아머드가 2018년 총리가 되면서 기존에 권력을 잡고 있었던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의 티그라이족과 갈등이 생겼다. 티그라이족은 에티오피아 인구의 6~7%밖에 안 되지만 오랫동안 에티오피아 권력을 잡고 있었다.
지난해 3월, 아머드 총리가 코로나19로 총선 연기를 발표하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티그라이족은 선거실시를 요구했고 이후 갈등이 계속되면서 내전이 일어났다. 정부군은 티그라이로 가는 길을 가로막으면서 이곳에 살고 있는 민간인 약 600만명이 몇 개월째 식량 등 구호물자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40만명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밖에도 인구 수 2983만명의 ‘축복받은 아라비아’라고 불렸을 정도로 부유했던 예멘은 무장 반군이 정부에 반기를 들며 내전이 일어났다. 2021년 말까지 적어도 37만명이 숨졌고, 식량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17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멘을 떠난 난민은 약 400만명에 이른다.
전 세계 이목이 현재 우크라이나로 쏠리고 있지만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분쟁이 발생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6일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이 우크라이나 위기에 가려져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개발도상국들은 계속 두들겨 맞고 있다”며 “그들은 잇따라 발생하는 심각한 인도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분쟁을 자유와 독재의 싸움으로 요약했다. 그는 26일 “자유를 위한 노력을 두려워 말라”는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을 인용해 “자유를 위한 거대한 싸움, 민주주의와 독재의 대결, 자유와 억압 간의 새로운 싸움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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