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중립 화장실(혼성 화장실)’이 지난해 성공회대에 이어 주요 대학 내에서 설치가 확정되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설치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성범죄 예방과 동성애 확산을 금지하기 위해서라도 성중립 화장실이 도입되지 말아야 한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팽배한 가운데 성소수자의 ‘생리 욕구’가 존중되는 화장실도 필요하다는 찬성 입장이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소변 참다 방광염…’ 성중립 화장실 ‘이해’ 아닌 ‘인정’의 문제
1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성중립 화장실은 남성과 여성뿐만 아니라 성 소수자와 장애인 등 모두가 차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로서 ‘모두의 화장실’ 혹은 ‘혼성 화장실’로 불린다. 14일 취재진이 찾은 국내 1호 ‘성중립 화장실’은 서울 구로구의 성공회대 새천년관 1층에 있다. 해당 화장실은 2017년 처음 설치 논의가 시작됐으나 반대 여론에 부딪혀 약 5년 만인 지난해 설치됐다.
‘성중립 화장실’은 ‘모두의 화장실(Restroom for All)’이라는 푯말을 달고 있었는데, 픽토그램에는 여성과, 남성 그리고 기저귀를 교환하는 보호자와 휠체어를 탄 이가 함께 그려져 있다. 공간 내에는 샤워기와 기저귀 교환대 및 세면대 및 좌변기가 설치돼 있다. 남성용 양변기는 없다.
1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10분, 5분, 15분 간격으로 남·녀 학생 3명이 화장실을 이용했다. 성공회대 재학생 A(22)씨는 “한 사람이라도 성중립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면 의미는 충분하다”며 찬성의 뜻을 밝혔다.
성공회대 대학발전실 관계자는 “‘이해’와 ‘인정’은 다른 개념”이라며 “장애인을 이해는 못 해도 인정을 해야 하는 것처럼, 성소수자도 ‘이해’가 아닌 ‘인정’의 영역에서 봐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 명의 성소수자라도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자유가 있다”고 설치 이유를 설명했다.
복수의 성소수자 인권 모임 등에 의하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성소수자의 경우 동성 동료와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소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런가 하면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물을 가급적 마시지 않으며, 1인 화장실이 설치된 카페의 위치를 외우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당한 대우나 불쾌한 시선을 받을까 봐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트랜스젠더 응답자 수는 전체 조사자 591명 가운데 36%(212명)로 나왔다. 트렌스젠더 10명 중 3.6명은 성 정체성으로 화장실 이용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변호사로 관심을 모은 박한희 변호사는 언론 기고글에서 “트랜스젠더 등은 많은 경우 법적 성별과 자신이 살아가고 겉으로 인식되는 성별이 불일치하다”며 “두 가지 성별로 구분된 화장실 앞에서 어디로 갈지 망설이게 되며, 법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소위 ‘여성적’인 모습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면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남녀 공용 화장실’은 단지 공간상의 문제로 성별 구분을 하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합쳐 놓은 것”이라며 “‘모두를 위한 성중립 화장실’은 명칭 그대로 모든 사람이 성별, 장애, 동반자 유무 등에 따른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화장실”이라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의 주장대로 보통 구조는 가족들이 함께 사용하는 가정용 화장실 혹은 기내 화장실과 비슷한데, 내부에 변기와 세면대가 갖춰진 게 특징으로 기존의 화장실과 비슷한 구조다.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주최한 ‘2020 모두를 위한 화장실 랜선 토론회’에서도 박 변호사는 “모든 화장실은 인권문제”라며 “화장실을 못 가면 사실상 그건 인간이 어떤 생물로서의 기본적인 욕구를 넘어서 기본적인 존엄성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성소수자와 관련한 인권 또한 인권 증진을 위한 프로젝트를 넘어서 행정적, 법적인 움직임을 통해 구체화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중립 화장실은 2010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롱비치 캘리포니아주립대(CSU 롱비치) 화장실에서 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한 후 성중립 화장실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로 백악관 내 설치를 시작으로 선진국에서는 스웨덴과 캐나다 등을 중심으로 성중립 화장실이 확산됐다.
국내에서도 성공회대에 이어 카이스트와 서울대 등으로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소식을 전하고 있다. 카이스트는 지난해 12월 전산학부 건물 내의 남성용 장애인 화장실 일부를 ‘모두의 화장실’로 교체했으며, 준공 예정인 전산학부 증축 건물에 ‘모두의 화장실’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서울대도 2026년 준공 예정인 문화관 증축 및 리모델링 설계도에 ‘모두의 화장실’을 반영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또한 트랜스젠더 여성 입학을 앞두고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논의한 바 있다.
성중립 화장실의 대학가 확산은 학생들의 화장실 선택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수 있는 결정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국내 성소수자 연구의 권위자인 죠셉 리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자유를 추구하며 이것에 의한 행복 추구권과 선택의 자율권을 보장해주는 합의 과정을 모색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하게 된다”며 “같은 맥락에서 성중립 화장실이 확산하고 있는 것은 성 소수자의 화장실 선택권과 자율권이 더 보장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성 정체성으로 화장실을 갈 수 없는 한 명의 트랜스젠더를 위한 화장실을 만드는 것에 대한 논의도 토론과 숙의의 과정을 통해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성중립 화장실’이 아니더라도 다른 해결 방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동성애 부추기고 성범죄 온상 될 것” 우려 목소리도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직장인 B(29)씨는 “물론 대학 내에서는 안전할지 모르지만, 성중립 화장실이 대중화됐을 때에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며 “구조와 크기 등을 봤을 때 성범죄 장소로 악용될 여지가 충분하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실제 공중화장실에서 일어나는 범죄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경찰청에 따르면 화장실 범죄가 2015년 1981건, 2016년 2044건, 2017년 2081건, 2018년 4224건, 2019년 4528건으로 5년 동안 약 2.3배 가까이 증가했다.
‘여성들이 성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반대 논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남녀 구분이 없고 폐쇄된 공간인만큼 몰래카메라나 성범죄 등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성중립 화장실은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데 공간이 폐쇄적인데다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성 소수자로 인해 동성애가 확산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회사원 C씨(49)는 “성 소수자는 독버섯과 같아서 가정의 가치와 정상적인 남녀 관계를 비정상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결혼에 반대 가치관을 형성해 후손이 나오는 것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며 “성중립 화장실이 계속해서 확산하는 이유는 결국 성소수자의 인권을 추구한다면서 정상적인 남녀 관계의 역할구분을 모호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 소수자의 문제를 여론화하고, 이후 성중립 화장실 설치 등을 ‘문화’로 만든 후에 법까지 개정하려고 하는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정상적 ‘가족관계’를 해체시키는 도화선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포항공대에서 인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찬성 변호사는 본지에 “성 소수자의 차별 극복을 위한 노력의 목적으로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지만, 국내에 적지 않은 이들이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반대론자들은 ‘성폭력 범죄의 온상이 될 것’이라고 크게 우려하고 있는데, 미국은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한 지자체에서 범죄율이 증가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경우 성중립 화장실이 확산할 경우 성범죄가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 모르겠지만 도입에서 반대하는 이들의 의견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발생 가능한 성범죄의 예방을 위한 적절한 대비책도 함께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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