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TC애국동지회의 김재수(77·학군사관 8기) 회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현 정부가 부정선거 수사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시스템의 기초를 닦아주지 않는다면 훗날 윤 정권의 명암이 엇갈리는 것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안보가 무참히 짓밟히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피 끓는 심정으로 호소했다.
4·15 부정선거 규명을 촉구하는 크고 작은 집회에 3년째 빠짐없이 참가하는 애국단체가 있다. 푸른색 깃발을 휘날리는 ROTC애국동지회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을 계기로 자생적으로 결성됐다. 당시 “탄핵 반대” 구호를 외치며 아스팔트 집회에 삼삼오오 모인 ROTC 전우회원들이 우파를 지향하자는 뜻 아래 회원들을 불러 모았다.
총회를 하고 현재 6대 회장을 배출하기에 이른 정식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공식 회원은 2000명 규모이고 회비를 내는 진성회원은 약 600명이다. ROTC중앙회 다음으로 ROTC 전우들로 구성된 가장 큰 조직이며 회비도 중앙회 다음으로 많이 들어온다.
ROTC애국동지회는 △자유민주주의 수호 △자유시장 경제 존중 △북한 사회주의 척결 △한·미동맹 강화 △평화통일 사회봉사 참여 △호국 안보의 6대 정책을 추진한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헌신한다 △시장 경제질서를 존중한다 △북한 사회주의 세력 척결에 앞장선다 △한·미동맹 강화로 호국 안보의 선봉이 된다 △행복한 대한민국을 후손에게 물려준다는 5대 강령을 준수한다.
애국동지회가 세력을 키운 과정에 거리 집회는 빼놓을 수 없다. 21대 국회의원 선거(4·15총선) 이후 강남역에서만 2년간 부정선거 규명 촉구 집회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35도를 웃도는 불볕더위에도, 영하 20도를 밑도는 혹한에도 200명 이상이 집회에 참석했고 거리 행진도 함께했다.
정파와 종파를 초월하고 회계 투명성을 모토로 하는 동지회는 부정선거 규명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명선거 시스템 정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김 회장은 “윤 정부는 지난 정권에 부역했던 이들을 단죄한 뒤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부정선거에 대한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큰 이정표를 세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애국동지회장은 경선 없이 내부 회의를 거쳐 추대한다. 다른 애국시민단체와 다른 점이다. 경선을 하면 사심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우려에서다. 동지회의 비전에 어울릴 만한 인물을 내부에서 추천받고 검토해 회장으로 추대한다.
김재수 회장은 5대에 이어 6대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5대까지는 6월1일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 회기였다. 하지만 회비를 내는 시기가 헷갈린다는 건의가 있어 6대 회장단부터는 1월1일부터로 임기를 바꾸면서 6개월을 더 재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ROTC애국동지회 총회는 일정이 앞당겨질 전망이다. 보통 연말에 총회를 열고 집행부 구성은 또다시 한 달이 걸린다. 그러나 내년 4월 총선에 대비하도록 차기 집행부가 체제를 정비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회장은 “대부분 60대 후반이 주축이고 젊은 회원들이 많지 않아 다음 회장단은 15기를 중심으로 꾸려지길 원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끈다. 이는 김 회장의 개인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듣는다 △가능한 한 말을 적게 한다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하는 데 소명 의식을 갖는다.
이 때문에 참모진을 구성한 뒤 모든 걸 맡겨 자율적으로 운영해 왔다. 김 회장은 “제가 회장이 됐는데 강남 플래카드 내용을 어떻게 쓸까요, 후배들이 문자를 보내왔다”며 “후배들이 나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그걸 왜 묻나, 몇 부 만드는 데 얼마가 드는지만 내게 이야기하고 내용은 나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후배들이 알아서 하길 바란다고 답장했다”고 말했다. 즉시 생산적인 아이디어들이 샘솟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연구소 시절에도 비슷하지만 가능하면 아래 사람에게 재량을 맡기고 나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하려 했다”고 밝혔다.
“사수 아니면 싸워 이긴다”김재수 ROTC애국동지회장김재수(사진) 회장은 김천초·중·고교와 연세대 도서관학과(현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에서 정보학 석·박사를 마쳤다.1972년 ROTC 8기 육군 중위로 전역하고 국방과학연구소에 들어갔다. 경직되기 쉬운 직장문화였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어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 그는 “(대학에) 늦게 입학하는 바람에 ROTC 6기·육사 24기와 같은 나이인데 앞으로 차기 회장단은 훨씬 더 젊은 세대로 내려가는 게 바람직하다”며 애국단체의 세대교체 바람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방위산업 초창기에 국방의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한 그는 문과 출신으로는 입지전적으로 기술정보센터 본부장까지 올랐고 2006년 정년 퇴직했다. 경기대 대우교수와 방산업체 부사장 및 고문을 거쳐 개신교 신앙을 바탕으로 캄보디아 헤브론병원 기획처장으로 선교사역에 3년 가까이 매진했으며 2009년부터 콜텍문화재단 이사 겸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굵직한 집회에선 단상에 올라 직접 쓴 원고로 연설한다. 보수 유튜브 방송들이 연설 실황을 중계할 만큼 명문이고 달변이다.최근 8·15 보신각 집회에서는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듯이, 없앨 수 없는 증거가 엄연히 남아 있기 때문에 진실이 밝혀져서 죽으나 다시 한번 부정을 저지르다 발각돼 죽으나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라고 선거를 조작해 온 세력을 통렬하게 꼬집은 뒤 “세계 10대 강국임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후진국형 부정선거 의혹이 없도록 윤석열정부는 사즉생의 각오로 공명 선거제도 수립에 당장 착수해 주시길 온 국민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했다.앞서 작년 10월 광화문 집회에서도 “‘스탠드 오어 다이(Stand or Die)’ 즉 사수 아니면 죽을 각오로 당당하게 싸워 이기자”고 연설해 화제를 모았다. 그 연설을 듣고 주말 집회마다 충청도에서 올라오는 노부부가 보약을 보내준 일은 개인적으로 더 큰 책임감을 갖게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3년 전 겨울에는 ‘탄핵 무효’를 외치며 청와대 앞에서 진행된 텐트시위에 참여했다. 심장에 삽입된 스탠드 3개에 1개를 더 추가하는 시술을 마친 직후였다. 혼자라도 철야 집회에 가겠다는 아내 이재정 권사를 따라 나섰다가 같이 3일 밤을 꼬박 새웠다. 의사는 크게 당황해 김 회장의 행동을 나무랐다. 그때 아내는 담당 의사에게 “이 나이까지 살았는데 나라를 바로 세울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을 가질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안심시켰다고 한다.늘 같은 뜻으로 구국의 사명감을 가지고 아내와 함께 주말마다 집회를 개최해 온 김 회장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후배들 앞에서 솔선수범하는 80대의 ROTC 1기 선배들의 열정 때문에 제가 멈출 수 없다”며 선거 부정 사범이 모두 잡히고 선거 시스템이 공정하게 개선될 때까지 아스팔트를 지킬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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