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만 되면 많은 국민이 각종 여론조사에 시달리던 일이 줄어들 조짐이다. 한국조사협회(KORA)가 정치·선거 여론조사에서 자동응답서비스(ARS) 방식을 없애고 조사원이 직접 진행하는 전화면접조사만 시행할 것을 밝혔다. 그간 참여율도 적고 공신력이 낮은 마구잡이 여론조사 결과가 민심 혼란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비난과 외면을 받아왔던 것을 생각하면 만시지탄이나 환영할만한 일이다.
KORA 회원으로 소속된 국내 주요 여론조사기관 34곳에서는 대통령 국정 지지도·여야 정당 지지율·총선 관련 여론조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 KORA는 앞으로 이들 기관이 실시하는 여론조사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혼탁한 여론조사 환경을 자정하겠다는 선언이다.
실제로 말이 여론조사이지 사실상 여론조작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최근 우후죽순 난립한 조사기관과 조사방식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심각하다. 일단 틀에 박힌 기계음을 통해 들려오는 지루한 질문을 끝까지 인내하면서 응답해 줄 사람이 많지 않다. 응답률이 채 1%도 안 되는 ARS 조사가 부지기수라고 하니 이런 조사결과가 유의미할 리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KORA가 ARS를 퇴출시키겠다고 한 결정은 바람직하다. 특히 ARS 조사는 응답률도 낮지만, 그나마 응답자의 성향이 이를테면 ‘개딸(개혁의딸)’ 등 정치 고관여 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가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KORA는 응답률과 관련해 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도 보여줬다. 가상번호 방식은 응답률 10%, 임의걸기(RDD) 방식의 조사는 7% 미만일 경우 공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의 여론조사 최소 공표 기준이 5%라는 점을 생각하면 조사기관들이 자체적으로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셈이다. 여론조사 질문 문항의 수도 13개 이하로 권고했는데, 이는 응답자의 피로도를 고려한 결정이다.
한 가지 더 주목되는 점은 여론조사 결과 공표 시 ‘소수점 이하를 반올림한 정수’로 표기하겠다는 결정이다. 협회는 소수점 이하를 표기하는 것이 결과가 ‘과도하게 정확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일본·영국 등에서도 소수점 아래까지 쓰는 나라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여론조사는 표본조사이고 그 특성상 어차피 오차가 생기는 걸 피할 수 없다. 이런 점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조사기관으로서 일보 진전된 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결정을 통해 여론조사기관들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KORA에는 한국갤럽·넥스트리서치·리서치앤리서치·엠브레인퍼블릭·한국리서치 등 주요 여론조사기관이 모두 소속돼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도 활발히 진행될 것이다. 공신력을 인정받을지 아니면 여론조작의 주범으로 지목될지는 조사기관의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에 달려있다.
과거에는 조사원이 특정 후보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응답자에게 유도 질문을 하는 사례가 적발된 일도 있다. 이 밖에도 나이·지역·응답내용 등을 조작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여론조사를 여론조작의 온상으로 만드는 자격미달의 조사기관이 아예 발붙일 수 없도록 입법 등 법적 제도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번 협회의 자정 선언은 ‘선언’에 그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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