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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투표할까 벚꽃 구경 갈까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09 06:31:00
 
▲ 최문형 동양철학자‧작가‧성균관대 교수
미국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액션영화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과거 서부 카우보이와 악당의 대결부터 시작하여 스파이더맨·배트맨 시리즈를 거쳐 우주전쟁 이야기까지 선과 악의 구도로 짜인 액션영화는 통쾌함과 짜릿함을 보장하는 인기물이다. 스포츠도 비슷하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한때는 레슬링 경기와 권투경기가 텔레비전에서 많이 중계되었다. 링 위에서 경기규칙을 지키며 살벌하게 싸우는 두 사람의 투지는 현장뿐 아니라 안방에도 아슬아슬한 쾌감을 전해 준다. 전통적인 힘겨루기인 씨름도 한참 유행했다.
 
사람들은 왜 액션물이나 스포츠를 좋아할까? 그 안에는 생명체의 본능 중 하나인 ‘공격성’이 들어 있다.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있어서 공격성은 매우 중요한 본능이다. 모든 생명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삶을 위한 공격성을 발휘한다. 영역을 차지하고 유지하며 짝짓기를 하고 배우자와 자식을 지켜 내기 위해 적재적소에서 공격성을 활용한다. 인간 또한 원시시대에는 공격성을 잘 발산하며 살았을 것이다. 인간이 문명화되면서 이 공격성은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대부분의 사회는 관습과 법률을 통하여 구성원의 공격성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공격성은 결코 권장되는 덕목이 아니다. 과도한 공격성은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범죄를 일으킨다. 물론 지금도 공격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회가 있다. 문명보다는 자연과 벗 삼아 사는 부족들의 경우다. 아프리카나 아마존에 사는 부족들은 성인 남자의 용감함과 공격성의 손을 들어 준다. 
 
스포츠나 액션물의 인기는 억눌린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인 공격성의 표출을 반증한다. 평소에 꽁꽁 숨겨 두었던 공격성이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또는 널따란 운동장 위에서 펼쳐지면 우리는 대리만족을 하곤 한다. 그런데 공격성이 정교하고 세련된 옷을 입고 나타나는 장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정치와 선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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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2대 국회의원 선거 유세가 절정기로 접어들고 있다. 색깔이 비슷한 정당들이 헤쳐모여를 하면서 국민의 마음을 사려고 분투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잡느라 피부가 다 부르튼다. 그 핵심에 ‘공격성’이 있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선거유세 기간을 즐길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각 정당의 리더와 후보들은 의도치 않게 인간의 본능인 공격성을 건드린다. 그들끼리의 폭로와 비방·심판과 응징의 외침은 학습보다는 본능에 의지한 것임은 모르는  채로.
 
정치는 전쟁과 같다. 그래서 전략이니 전술이니 공격이니 방어니 하는 단어들을 서슴지 않고 쓴다. 승자는 트로피를 거머쥐고 패자는 어딘가로 ‘도망’하게 되어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랑과 일에 실패한 주인공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듯이 국민에게서 선택받지 못한 ‘투사’ 또한 해외로 또는 다른 일로 ‘도망’한다. 어떤 후보는 싸우는 도중 후퇴하여 도망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의 실수나 부적절한 일이 상대편에 의해 드러나게 될 때 그의 선택은 둘 중 하나이다. 끝까지 버틸 것인가 아니면 문제를 인정하고 내려올 것인가이다. 버티기는 방어이니 이것도 공격성의 일면이다. 결국 공격성을 발휘할 것인가 도망을 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도망’ 또한 생존을 위한 방어이다. 동물의 삶을 보면 즉각적인 결정이 생사를 가른다. 새끼 딸린 암사자가 ‘나홀로 사냥’을 나갔을 때는 물소 두 마리를 상대할 수 없다. 물소 한 마리를 사냥감으로 건드렸어도 동료 물소가 구하러 달려오면 즉각 도망한다. 당장은 도망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하다. 물소 두 마리를 상대로 욕심을 부리다가는 사냥은커녕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것을 안다. 야생의 세계를 사는 동물들에게는 이처럼 초 단위의 판단이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전락과 전술을 가르치는 학교도 없고 이론도 없다. 어린 시절 부모와 다른 성체들이 활동할 때 따라다니며 보고 들은 것이 전부이다.
 
동물들은 본능으로 살아가지만 경험을 통해 본능을 강화한다. 공격과 도망·전진과 후퇴·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촉을 세워 생존에 유리한 쪽을 선택한다. 어찌 보면 버티고 버티다가 폭삭 망하는 인간 사회의 높은 사회지도층 어른보다 세련되고 지혜롭다. 요즘 젊은이들은 정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20대 유권자의 예상 투표율은 50% 정도이다. 투표하기 싫은 이유를 물으니 정치인들이 서로 흠을 잡고 싸우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한다. 물론 점잖고 교양 있게 학술적으로 자신들의 공약을 설명해 주면 좋을 거란 생각도 들지만 선거유세의 공격성은 결국 본능과 관련된 것임을 유권자들이 이해할 필요도 있다. 유권자는 어떤가.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활짝 핀 4월의 꽃길로 ‘도망’할 것인가. 공격성과 도망 중 어떤 본능에 따를 것인가를 국민 각자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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