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인터배터리 행사에 가서 관계자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 이야기가 슬슬 흘러나오던 때였다. 대표적인 배터리 기업인 배터리 3사나 에코프로뿐만 아니라 배터리와 상관없어 보이던 기업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때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전기차 캐즘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전기차와 배터리가 미래 핵심 산업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홍보하기 위해 나온 자리이기도 하고 기자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 앞이니 잘될 것이라고 하는 건 당연하지만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정말로 전기차 캐즘이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이 앞으로 잘되지 않으면 큰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듯한 위화감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메타버스 사업에 뛰어든 기업에서도 느낄 수 있었고 블록체인 사업을 발표하는 기업에서도 느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하던 기업들 중 상당수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인터배터리 이후 4달이 지나는데 전기차 캐즘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전기차 수요 둔화가 수치로 나타나고 있으며 전기차 전환의 가장 큰 근거였던 친환경 정책에도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전기차 전환에 가장 적극적이던 유럽은 속도 조절을 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전기차 보조금 폐지까지 논의되고 있다. 전기차가 계속 잘나가는 곳은 중국이지만 중국의 특성상 시장을 파고들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전기차의 가장 큰 단점으로 여겨지던 비싼 가격과 충전 인프라 등의 문제들은 아직도 갈길이 멀다. 어쩌면 전기차 캐즘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외면했던 문제점들이 현실화된 것일 수도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하이브리드차라는 대안을 갖고 있지만 배터리 업체들은 감축에 나서고 있다. 하반기에는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는 하지만 어느 산업이나 올해 하반기에는 나아질 것이라는 말을 그다음 해에도 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때 인터배터리에서 전기차의 밝은 미래를 점치던 기업들이 대책 없이 전기차가 계속해서 잘나갈 것으로 생각하고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원래 산업이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걸 생각하면 일시적인 정체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전기차 배터리 산업이 정체기를 맞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먹을 수 있는 파이도 당분간 줄어들 것이다. 배터리 산업에 뛰어들었던 수많은 기업 중 일부는 사업을 축소할 것이고 과감한 투자를 했음에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기업도 생길 것이다.
신산업 투자는 원래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산업의 미래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는 시점이 되면 이미 먼저 들어간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해 그 시점에 시장에 뛰어든다면 후발 주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 과감하게 뛰어든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장밋빛 미래만이 보이던 배터리 산업이 멈칫하는 이 순간은 어떻게든 탈락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다. 배터리 산업이 잘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도 뒤에서는 위기 상황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경쟁력을 향상시켜 온 기업이 살아남을 것이고 배터리가 유망하다니까 일단 들어간 기업은 전기차 캐즘을 이겨 내지 못할 것이다.
파티는 끝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겨울이 찾아왔다. 이제 시험대에 오를 시간이다.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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