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의 극단화·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역내 경쟁 심화·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라는 삼중고의 외교·안보의 다차원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미·일 3국은 미·일 중심의 공동 안보 대응을 위해 ‘한·미·일 안보 프레임워크(TSCF)’라는 역사적 첫걸음을 내디뎠다. 28일 TSCF 협력 각서 체결은 단순 협정을 넘어 ‘정례적 고위급 회의 개최·정보 공유·공동 훈련 등을 통해 3국 간 협력 강화라는 내용을 담았다.
앞서부터 미·일 동맹은 과거의 포괄적 안보 조약에서 벗어나 일본의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이번 TSCF 3국 협력 강화로 동북아시아 지역 평화·안정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역내 평화·안정 유지를 위해 긴밀한 협력 체제 구축을 통해 미국의 역내 확장억제의 중심이 일본과 한국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미·일 양국은 올해 안으로 자위대 통합사령부(JFHQ)를 설치하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이슈다. 2027년까지 자위대를 지휘·통제할 합동통합사령부를 창설할 예정이다. 이는 육·해·공·우주·사이버 부대를 일원적으로 지휘하는 통합사령부를 두기로 한 것이다. 미국이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연계를 강화하기 전 지휘 체계를 함께하는 것이다.
한·미·일 협력각서에는 △3국 간 국방부장관 회의 정례화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 실시간 공유체계 운용을 위한 삼국 간 소통·협력 강화 △다 년 간 삼자 훈련 계획에 프리덤 에지(Freedom Edge) 등 3자 훈련의 정례적·체계적 시행 등을 언급한 ‘군사동맹 급’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조했다. ‘아시아판 나토’ 결성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한국군·주한미군과·주일미군·자위대 간 긴밀한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일본 방위 정책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김주형 안보경영연구원 정책전략연구본부 연구위원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아시아 지역 안보의 핵심 축이 미·일 동맹에서 한·미·일 협력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김 연구위원을 만나 미·일 동맹 및 3국 군사협력 본질에 대해 들어봤다.
-일본의 군사 역할 확대와 미·일 안보 동맹 변화 기조에 대해 말해달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미국의 병참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은 미군의 군수품 생산과 수송의 중심지로 활용됐으며 상당한 병사들의 치료와 휴식을 위한 후방 기지 역할도 수행했다. 이에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재발할 경우를 대비해 일본에는 7곳의 유엔군사령부 후방 기지가 지정됐다. 기지들은 유사시 한반도로 전력을 급파하고 탄약 등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자국이 필요 이상으로 휘말릴 것을 우려하며 196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 시 주일 미군의 (재)배치와 장비·군사 작전에 관한 ‘사전협의’ 제도를 명시하여 연루 가능성을 억제하려 했다.”
“사전협의 제도의 취지는 일본이 미군의 주요 군사 활동에 대해 사전에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 일본의 불필요한 연루 가능성을 억제하려는 데 있다. 다만 동시기 양국은 사전협의제도를 유명무실화하는 비밀 협약(1960 Secret Agreement)을 체결했다. 비밀 협약 내용은 주일미군의 자유로운 이동과 중요한 군사 장비의 일본 영토 반·출입을 사실상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사전협의제도를 통해 미군 활동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으나 실제 미군의 활동에 큰 제약을 가하지 못했다. 이 같은 구조를 통해 일본의 병참 기지 역할은 현재까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역내 역할이 일본을 중심으로 흘러왔던 이유는.
“미·일 안보 조약 6조에 따라 미국은 극동아시아 지역 분쟁(한반도 혹은 대만) 발생 시 일본의 역내 안보 유지 역할 증대를 기대해 온 바 있으며, 대략 1960년대부터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안보 무임승차에 대한 비판을 받아왔다. 이 같은 압력에 의해 일본은 역내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역할을 계속 모색했다.”
“그 일환으로 한반도 유사시 일본 역할을 상정한 미쓰야 연구를 1963년에 수행한 바 있다. 미·소간 냉전이 발생한 1979년 이후 일본에 대한 미국의 역할 분담 요구는 더욱 증가했으며 1980년대 나카소네 일본 총리 재임 당시 방위비를 GNP의 1% 이상으로 책정하는 등 다양한 조치를 통해 미국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노력하였다. 변화는 미·일 동맹 강화 및 일본의 역내 안보 유지를 위한 잠재적 역할을 증대로 이어졌다.”
-일본 방위 정책의 변화가 북한 위협에 중심이 맞춰져 변화한 계기는.
“1994년 북핵 위기와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사건은 일본의 안보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1차 북핵 위기 당시 일본에 적극적인 역할 수행을 요청한 것과 아울러 19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 사건은 일본의 역내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1993~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은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더 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일본 정부는 국내법적인 제약을 근거로 이와 같은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이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1997년)과 주변사태법 제정(1999년)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안보 3문서’ 개정은 일본의 방위 정책에 어떤 변화를 불러왔나.
“2022년 일본의 안보 관련 3개 문서 개정은 국가안전보장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 정비계획을 포함하고 있으며 적기지 타격 능력 구비를 명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개정으로 일본이 선제공격 역량을 갖추게 되었고 일본이 전후 유지해 온 ‘전수 방어’ 기조를 탈피하는 것으로 우려한다.”
“그러나 미·일동맹의 틀 내에서 오랫동안 만들어진 일본 방위 정책의 기본 골자는 극단적으로 변경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변화는 일본이 보다 강력해진 중국과 핵무장한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미·일 간의 전략적 조치로 볼 수 있다.”
-한·미·일 군사협력의 최적화 모델이 있다면.
“현실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응하여 한국과 일본 간 정보 공유를 하는 것이다. 비록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는 미·일간 구축한 MD 체계에는 편입되지 않았지만 정보 공유를 통해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시 가장 효과적인 요격 수단을 통해 대응능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의 ‘적기지 타격 능력’을 한국의 3축 체계와 연계하는 방안도 있다. 이 경우 북한의 지상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여 유사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적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방안들이 효과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및 한·일·간 상시 협의가 필수적이며 한·미·일 군사 당국자들은 이를 유념하여 보다 정기적인 협의 채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TSCF 이후 한·미·일 군사협력은 어떠한 형태로 가능할까.
“3국안보협력 프레임워크(TSCF)의 세부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이며, TSCF가 1960년대 불발되었던 동아시아판 나토(아시아태평양조약 기구(APATO)로까지 진화될지 현재로서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TSCF를 통해 3국 간 안보 협력의 제도화가 가능케 된 점은 삼국 간 상호작전운용성(interoperability) 증진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며 TSCF의 존재를 기반으로 3국의 안보협력을 직·간접적으로 강화하는 다양한 조치(한일군수지원협정(ACSA) 체결, 한국의 AUKUS 가입 등)를 취하기가 용이하게 되었다. 향후 TSCF가 어떠한 형태로 운영되든지 간에 북·중·러 블록에는 부담 요인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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