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1월16일 미국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스위스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던 미 중앙정보국(CIA) 고위 간부가 연방수사국(FBI) 요원에 체포됐다. 그의 몸에서는 일급 기밀문서의 이미지가 담긴 필름 뭉치가 발견되었다.
체포된 것은 해롤드 니콜슨(Harold James(Jim) Nicholson·당시 46세)으로 그때까지 간첩 혐의로 기소된 CIA 요원 중 가장 고위급(GS-15·대령급)이었다. 이틀 후 CIA-FBI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니콜슨의 반역 행위가 상세히 밝혀졌다. 그는 1996년 11월21일 간첩 및 간첩공모 혐의로 기소되었다.
니콜슨은 1950년 11월17일 미국 오리건주 우드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육군 암호분석가였고, 계부인 아버지가 공군 장교였기 때문에 자주 이사를 했다. 오리건 주립대학에 다니는 동안 ROTC(예비역장교훈련단) 과정을 이수하여 1973년 대학 졸업과 함께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육군 정보부대와 101 공수사단에서 탁월한 정보 역량을 발휘하며 복무하다가 대위로 1979년 전역했다.
니콜슨은 1980년 10월 CIA 요원 모집에 합격하여 버지니아주 캠프 피어리(일명 The Farm·CIA 비밀훈련소)에서 교육 훈련을 마치고 해외 정보작전 임무에 투입되었다. 그는 주로 소련(후에 러시아)의 연방 정보기관 및 외국 정보기관에 대한 정보 작전을 수행했다. 핵심 임무는 상대국의 정보 활동을 수집하고 요원을 포섭하는 것이었다. 그는 필리핀 마닐라(1982~1985)·태국 방콕(1985~1987)·일본 도쿄(1987~1989)에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니콜슨은 1990∼92년 루마니아의 CIA 지부장으로 활동했고, 199∼94년 말레이시아 주재 CIA 부지부장(현지 작전 책임자 겸임)이라는 중요 직책을 맡았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승승장구와는 별개로 가정사는 매우 불안정했다. 23년 동안 무려 21번 이사를 해야 했으며 일 때문에 가족과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해 아내와 자녀들의 불만은 증폭되었다. 결국 1994년에 이혼에 이르렀다. 이후 그는 1994년부터 1996년 7월까지 버지니아주 캠프 피어리에서 특수훈련 센터의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CIA 훈련생들에게 정보작전 기법을 전수했다. 그리고 1996년 7월 CIA 본부 작전국과 대테러 센터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니콜슨 검거의 일등 공신은 9년간 러시아에 정보를 팔아넘기다 1994년 2월 체포된 CIA 특수요원 에임스 사건(본지 스파이세계 3회) 이후 정보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CIA와 FBI의 합동 방첩 프로그램(간첩활동 분석 및 탐지 메커니즘)이었다. 니콜슨 검거는 이 프로그램이 작동된 결과였다. CIA는 1995년 말 폴리그래프(거짓말 탐지기) 검사 이후 3차례 양성반응이 나온 것에 주목하며 그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CIA와 FBI가 합동 수사에 돌입한 결과, 잦은 해외여행과 사치스러운 지출, 출처를 알 수 없는 거액의 돈이 수 차례 그의 계좌로 입금되는 패턴에 주목했다. 런던·뉴델리·방콕·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 등을 여행하면서 러시아 SVR(해외정보국) 요원과 접선하는 것도 포착되었다. 니콜슨은 1964년 말레이시아 CIA 부지부장으로 근무할 당시 그해 6월 본부의 승인을 받아 러시아 SVR 요원을 4차례 접촉했는데(이 중 3차례는 러시아대사관), 6월30일 마지막 접촉 다음 날 자신의 미국 계좌에 1만2000달러를 입금했다. 이혼에 따른 심리적 갈등과 재정난의 갈등 속에서 러시아 SVR요원에 자발적으로 영입되어 그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이다. 니콜슨이 반역을 시작한 시점은 CIA 반역자 에임스가 가석방 없이 종신형을 선고받은 몇 주 후였다. 제2의 에임스가 탄생한 것이다.
니콜슨은 후에 재판 과정에서 1994년 6월부터 1996년 11월16일 체포될 때까지 국가 기밀정보를 러시아에 제공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2년 반 동안 CIA 컴퓨터 시스템을 넘나들면서 훔칠 수 있는 모든 기밀을 러시아에 제공해 왔다.
1996년 6월 싱가포르 여행 때는 역(逆)감시를 하기도 했다. 역감시란 자신을 누가 감시하는지 탐지하기 위한 행보이다. 예를 들어 걷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상점의 유리 패널을 바라보며 뒤를 돌아보거나 지하철역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오는 등 감시방지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CIA 신입요원에게 교육시킨 그대로를 반복했다.
연방 검찰의 기소장에 기재되어 있는 니콜슨이 넘긴 정보는 자신이 교관으로 재직할 당시인 1994∼96년에 훈련받은 모든 CIA 요원의 신상 정보·CIA 사건 담당자의 이름과 전자 데이터·모스크바에 배치된 요원 등 CIA 해외작전 요원의 신원 정보·체제 관련 정보 등이다. 또한 CIA 인적 자산(코드명과 직위)과 여러 주제에 대한 기밀 보고에 대한 7개의 요약 보고서도 있다. 니콜슨은 반역의 대가로 2년 반 동안 총12만 달러를 받았다.
재판이 시작되자 자신의 무죄를 강변하다 결국 극형을 면하기 위해 1997년 3월3일 자신이 러시아 스파이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유죄합의(a plea agreement)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해 6월6일 23년 7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09년 니콜슨은 교도소 복역 중 스파이 활동 혐의로 또 체포되었다. 그의 24세 아들 네이선 니콜슨(Nathaniel Nicholson·전역 군인·당시 24세)과 함께 간첩 공모 혐의 2건, 외국 정부의 요원으로 활동한 혐의 1건, 자금 세탁 혐의 4건으로 기소되었다. 니콜슨은 감옥 안에서 러시아인과 접촉하여 러시아 SVR과 연락선을 재개하고 2006년부터 2008년 12월까지 아들을 샌프란시스코·멕시코시티·페루 리마 등 여러 장소로 여행시키며 러시아 정보요원과 접선토록 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아 가족 생계비에 보태도록 했다. 아들은 감옥형을 피했지만 5년의 보호관찰과 10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니콜슨은 이미 선고받은 23년 7개월 형량에 추가하여 8년 형을 더 선고받았다.
니콜슨은 연방교도소에서 복역하다 27년 만인 2023년 11월24일 출소했다. 현재 생존해 있다.
이 사건은 당시엔 CIA 최고 간부가 돈 때문에 러시아를 위해 반역 활동을 했고 복역 중에 아들까지 동원해 재차 반역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미국 시민들에게 잊혀진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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