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그 자체의 매력뿐 아니라 쓰임새가 넓어 악기 중의 악기로 꼽힌다. 주요 악기를 통틀어 독주곡이 가장 많고 앙상블이나 반주에 요긴하다. 한 국가·사회가 산업화(서구화)로 나아갈 때 가장 먼저 붐을 일으키는 악기이기도 하다. ‘피아노 교육의 대중화와 중산층의 출현’이 학술적 주제일 정도다.
‘약하게·강하게’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피아노포르테’란 이름의 18∼19세기 건반악기가 현재 형태로 발전하며 이름도 축약되어 ‘피아노’가 되었다. 건반 누르는 힘을 조절해 강약을 다 표현할 수 있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피아노는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중심이던 이탈리아에서 ‘클라비치아르’라는 악기가 개량을 거쳐 하프시코드 형태를 지나 오늘날 모습으로 완성됐다. ‘키’(key·건반)를 뜻하는 어원 클라비스에서 유래한 클라비치아르가 독일어 ‘클라비어’를 비롯해 몇몇 언어에 흔적을 남겼으나 전 세계 대부분 피아노는 ‘피아노’ 내지 그에 가까운 발음으로 불린다.
서구근대음악, 이른바 ‘클래식(음악)’은 음악이 교회를 벗어나 세속 즉 권력자(왕족·귀족)의 궁정이나 성공한 중산층의 저택 거실에서 연주되면서 급성장했다. 모차르트와 그 이전 시대 피아노 소품들은 왕족·귀족 부인·딸들 레슨 교재용으로 작곡된 것들이 많은데 19세기 들어선 주요 고객이 중산층 가정이다. A. 르누아르의 유화 ‘피아노치는 소녀들’(1892)을 보면 당시 먹고 살 만한 서유럽 보통 가정에서 피아노가 어떤 이미지였나 알 수 있다.
그런 현상의 연장인 동북아시아 버전이 현진건 단편소설 ‘피아노’(1922)에 생생하다. 이 짤막한 블랙코미디는 작가의 글쟁이 능력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신식 결혼을 한 주인공 부부가 서양식 인테리어를 한 신혼집에 어울릴 물건들을 사들이며 매일 행복에 겨워하다 마지막으로 떠올린 게 피아노였다. 그리고 “두 시간이 못 되어 훌륭한 피아노 한 채가 그 집 마루에 여왕과 같이 임하였다.” 부부 모두 피아노를 못 치는 게 밝혀지는 광경이 압권이다.
우리나라에서 피아노는 1980년대 이래 급속히 보급됐고 이젠 동네 피아노학원에서 심심풀이로 배우기 시작해 유명 국제콩쿠르 우승자가 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는 피아노 국산 브랜드를 보유한 지구상 대여섯 나라 중 하나다. 다만 세계적 공연장엔 아직 진입 못하고 있다. 중고시장의 규모와 현실 역시 한때 피아노가 어떤 존재였나 짐작하게 해준다. 겉보기는 신품인데 건반감(感) 흐트러진 중고품이 많다. 무리해서 구입한 집에 여왕처럼 임했더라도 조만간 베란다나 골방에서 장기간 직사광선·습기에 방치됐었을 사정이 상상된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