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디드로는 하루 동안에도 고요하고, 슬프고, 몽환적이고, 부드럽고, 격렬하고, 정열적이고, 열정적인 천 가지 얼굴을 보였던 사람이다. 또한 그에게는 감성을 자극하는 강렬한 힘이 있었다. 이런 그가 차분히 글을 쓰고 책을 편찬할 수 있게 도와 준 뮤즈가 있었으니 그녀는 루이즈 볼랑(Louise Volland)이다.
1755년 42세의 디드로가 세 살 연하인 이 여인을 만난 건 루소의 소개 덕이었다. 루이즈는 부르주아 집안의 규수로 미혼이었다. 기품 있고 지식이 풍부한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디드로는 그녀에게 루이즈 대신 소피(Sophie·지혜)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 이후 루이즈는 소피 볼랑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소피에 대한 디드로의 사랑은 의심할 여지없이 육체적 아름다움보다 그녀의 총명함과 재치에 기인한 것이었다. 디드로는 교양 있는 그녀에게 당대의 사건이나 예술가·작가 등에 대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이야기했다. 철학자 디드로에게 소피는 자신이 하는 일뿐만 아니라 사적 고민을 털어놓는 유일한 친구였다. 이들은 신뢰로 묶여 서로 조언이나 위로를 구하기도 했다.
소피는 디드로에게 인생 이야기와 일기를 쓰도록 설득했고 디드로는 그녀를 연인이라기보다는 첫 번째 비평가로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백과사전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디드로는 그녀를 통해 결정론과 숙명론에 관한 이론을 포함한 많은 작품을 발전시켜 나갔다.
디드로는 소피를 깊이 사랑했다. 그는 “나의 소피, 당신은 정말 친절하군요. 내면을 들여다보세요. 당신이 얼마나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 자신을 보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철학자의 뮤즈가 된 그녀는 디드로 곁에 있고 싶어 파리를 떠나길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소피가 기혼자인 디드로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들을 갈라놓으려고 방해 공작을 펼쳤다. 어머니는 딸을 1년에 6개월 정도는 볼랑 가족의 성(城)이 있는 샹파뉴 지방으로 보내 거기서 머물게 했고 소피는 디드로와 고통스런 이별을 나눠야 했다.
이 부재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편지뿐이었다. 디드로는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너무나 달콤하기에, 그것이 서로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서신을 주고받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통제가 심해 이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은밀히 서신을 주고받을 수 있게 공작을 꾸몄다.
디드로는 그의 친구인 일등 서기관 다밀라빌(Damilaville)에게 편지를 보내고 다밀라빌은 이를 받아 업무용 서신으로 둔갑시켜 그들에게 다시 보내는 방식을 취했다. 디드로는 서기관과 약속한 목요일과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편지를 써서 보냈다.
편지를 쓸 때 디드로는 자신이 여전히 소피와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마치 내가 당신 옆에 있는 것처럼, 한쪽 팔을 당신의 안락의자 등받이에 걸친 채로 글을 쓰면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 중얼거리면서 글을 썼다. 그는 수정도 필요 없이 줄줄 편지를 써 내려갔다. 따라서 초고를 만들지도 않았고 편지의 사본을 보관하지도 않았다.
이 편지들은 디드로의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된다. 15년간 쓴 총 553통의 편지 가운데 187통만 알려져 있으며, 모두 수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번호가 매겨져 있다. 디드로가 소피에게 보낸 많은 편지는 철학자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당시의 정치적·사회적·지적 삶에 대한 그의 고민이 담긴 자화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편지들은 1930년 처음으로 출판돼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훌륭한 서신 중 하나로 평가된다.
한편 소피가 디드로에게 보낸 편지는 한통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의 초상화도 마찬가지로 남아 있는 게 없다. 소피에 대한 유일한 정보는 과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디드로의 감탄을 자아낼만큼 대단한 재능을 지녔다는 것뿐이다.
샹파뉴 지방의 일쉬르마른(Isle sur Marne) 성에 소피가 유배 아닌 유배를 당했던 당시 디드로는 단 한 번 방문할 수 있었다. 1759년 8월, 디드로는 소피를 만난 지 4년째 되던 해에 이 성에 들렀다.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그의 고향 랑그르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 디드로는 이 성에 들어오는 건초와 곡물 마차를 보고 자신이 시골 출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그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고독한 곳에서 잠시만 시간을 보내면 자연을 움직이는 영원한 존재를 느끼고 우리 의견의 진실보다 우리 영혼의 순결에 훨씬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성에 아주 짧게 체류했지만 그의 마음에 너무나 소중한 곳으로 간직했다.
소피와 디드로의 추억이 서린 일쉬르마른 성은 샹파뉴 지방 보카주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도로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6헥타르 규모의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소피의 아버지 장 로베르 볼랑은 중세 시대 영주였던 다망스 가문이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건물 자리에 이 성을 지었다. 매력적인 이 성은 세월이 멈추기라도 한 듯 오늘날 완벽하게 복원돼 있다.
일쉬르마른 성은 디드로가 머물러 유명해졌다. 그 후 한참 세월이 흐른 후 샤넬을 진두지휘한 독일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소유해 더욱 알려졌다. 현재는 프랑스-룩셈부르크계 가족이 이 아름다운 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이 평화롭고 매력적인 성은 활력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휴양지로 각광받는다. 물론 디드로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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