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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 기자의 책캉내캉] 여성, 남성적이고 동물적인 세상에 맞서다
여성의 이름으로 역사를 다시 쓴 30인의 이야기
정 그렇다면 반항할 수밖에/ 최문형 지음, 문연각, 1만8500원
임요희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3-10 10:10:46
 
 
여자가 바지를 입으면 잡혀가고 딸 이름이 ‘죽어라’일 만큼 여성의 삶이 가볍게 여겨지던 시절, 과감하게 세상에 맞선 여성들이 있었다.
 
신간 ‘정 그렇다면 반항할 수밖에’는 가브리엘 코코 샤넬부터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까지 30인의 여성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다.
 
저자 최문형 작가는 학문과 삶의 교차점에서 빛나는 지혜를 발하는 이야기꾼이다. 이번 책에서도 철학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낸 여성들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여성은 아름답고 강인한 식물
 
▲ 여성들을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가브리엘 코코샤넬. 퍼블릭도메인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억압받는 여성을 식물에 빗대 그들이 어떻게 ‘약자의 굴레’를 벗어나 자신만의 생명을 피워냈는지 보여준 것이다.
 
여성들을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가브리엘 코코샤넬을 ‘뷔페요리를 준비해 여러 종의 중매쟁이를 부르는 꽃꼬비과 식물’에 빗대는가 하면, 여성할례라는 무자비한 전통에서 이슬람 여성들을 구한 와리스 디리를 ‘관습이라는 가뭄을 덤불의 힘으로 버텨낸 사막의 꽃’에 비유한다.
 
그런가 하면 페미니스트 언론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위계가 아닌 연결을 보여주는 담쟁이덩굴’에 비유한다. 저자는 건물 외벽에서 쉽게 만나지는 담쟁이덩굴에서 ‘여남소노’ 누구와도 대화했던, 인종과 문화를 가리지 않고 만났던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떠올려 볼 것을 당부한다.
 
희생가지 윤희순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들 30명 가운데 우리가 특히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조금은 낯선 이름 윤희순은 1875년 서울에서 춘천의 고흥 유씨 집안으로 시집왔다.
 
첫날 밤, 갑자기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안전한 곳에 피신시켰는데 열여섯 새색시는 장삼과 족두리를 벗어 던지고 불길을 잡으러 뛰어다녔다.
 
당시 여성은 집이 불에 타건 말건 다소곳이 자리를 지키는 게 미덕이었다. 그런 여성이 그것도 시집온 새색시가 불을 끄겠다고 버선발로 뛰어다녔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 것인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제 일을 했던 바로 그 용감한 새색시가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1860~1935)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윤희순의 시부인 유홍석은 춘천을 대표하는 의병장이었으며 그의 6촌 형제인 유인석은 13도의군 도총재를 지낸 인물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후 시부를 따라 남편 유제원이 의병투쟁을 위해 집을 떠나자 윤희순은 친척과 동네 사람 30명을 설득해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한다. 아녀자들은 직접 군사훈련을 하며 총탄을 제조하고 무기와 군자금을 의병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
 
또 윤희순은 “우리나라 의병들은 나라 찾기 힘쓰는데 우리들은 무얼 할까. 의병들을 도와주세”로 시작하는 ‘안사람 의병가’를 지어 이웃과 친척들을 독려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윤희순은 시부를 따라 만주로 이주, 랴오닝성 깊은 산골에서 ‘노학당’이라는 교육기관을 세워 교장으로 활동하며 50여 명의 애국지사를 길러낸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노학당은 3년 만에 폐교되고, 시부와 남편마저 세상을 떠난다. 졸지에 가장이 된 윤희순은 집안을 이끌면서 한중지사 180여 명으로 구성된 ‘조선독립단’을 결성한다.
 
또 예순을 넘긴 나이에 그는 사돈 음성국·아들 유돈상과 함께 ‘가족부대’를 결성, 낮에는 낫을 들고 밤에는 총을 들고 사격훈련을 하면서 무장투쟁 준비에 들어갔다.
 
윤희순은 “나라를 구하는 데 남녀 구별이 없다. 남을 가르치려면 내가 먼저 실력이 있어야 하고 내 집안부터 실행해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했다. 그의 신념을 이어받아 아들 유돈상도 만주에 조선독립단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조선 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과 무순습격작전(1932)에 참가했다.
 
1920년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에게 대패한 일제는 만주의 한국인 3469명을 학살하고 민가와 학교를 불살랐다. 윤희순도 방화로 집을 잃는데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 큰아들 유돈상이 일제에 체포돼 한 달여 모진 고문을 당하고 어머니 품에서 절명한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윤희순도 아들 사후 11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76세였다.
 
윤희순의 사망 후 홀로 남겨진 며느리 음채봉은 어린 아들 둘과 유리걸식하다가 1940년 33세로 삶을 마쳤으며 둘째 아들 민상은 1942년에 일제에 살해당했고 셋째 아들 교상은 총에 맞아 불구가 됐다. 저자는 윤희순 의사를 희생가지에 비유한다.
 
“희생가지, 희생지는 나무의 줄기를 키우기 위해 살려두는 가지다. 굵고 긴 희생지는 수많은 잎을 피워내어 영양분을 만들어 나무를 키우고 살린다. 하지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잘려 나간다. 윤희순 의사는 자신과 후손들을 철저히 희생했다. 대한민국의 광복을 위한 온전한 숙명으로 묵묵히 희생지의 임무를 수행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은 자신의 한 많은 삶을 ‘해주 윤씨 일생록’(1935)으로 남겼다. 이국땅에 60년간 방치됐던 그의 유해는 돈상의 아들 연익에 의해 1994년 10월17일 독립된 조국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 이름을 되찾은 꽃들
 
▲ 여성할례라는 무자비한 전통에서 이슬람 여성들을 구한 와리스 디리. Desert Flower Foundation
 
책은 식물처럼 살아간 30명의 쎈 언니들을 조명하면서 한국인 여성 8명을 포함시켰다.
 
희생가지 윤희숙 외에 △바다에 뜬 문주란 노라노(한국 패션계의 대모) △최초의 영화를 터트린 물봉선 박남옥(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샘골을 피운 한 알의 밀알 최용신(농촌계몽운동가·소설 ’상록수‘의 모델) △’노라‘를 위한 채송화 이태영(변호사·사회운동가) △제국주의와 맞선 복수초 박차정(독립운동가) △해마다 발아하는 씨앗 박경리(소설가) △보도블록 사이의 갈네 권기옥(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비행사)이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익히 알려진 사람도 있지만 처음 듣는 이름도 있을 것이다. 한국 여성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더할 수 없는 비참과 곤고함 속으로 던져졌다. 그런 그들 특히 무명에 머물렀던 꽃을 발굴해 제 위치를 찾아 준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식물이 지구의 모든 생명을 먹이고 키우는 것처럼 여성의 삶도 그러했다. 인간(남자)을 위해 태어난 존재, 인간(남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사악한 대상, 인간(남자)을 낳는 책무를 다해야만 가치를 인정받는 도구에서 어엿한 인간으로 대접받기까지 이들의 용기와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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