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개막하는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가 외부 압력과 행정적 지원 배제, 후원 철회 등 비우호적 상황으로 존립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인권과 표현의 자유라는 문명사회의 기본 가치를 주제로 삼는 영화제가 열리기도 전에 상영관과 후원처, 심지어 공공 행정기관까지 등을 돌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이 나라가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얼마나 취약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는 ‘락스퍼국제영화제’는 당초 북한 인권을 중심에 둔 행사였다. 하지만 점차 다양한 국제 인권 문제로 주제를 확장해 온 이 영화제는 올해 중국 내 강제 장기 적출 문제를 다룬 작품 ‘국유장기’를 개막작으로 선정했다. 이 영화는 중국 정부가 연루된 장기 적출 의혹을 본격적으로 다룬 캐나다 제작 다큐멘터리다. 특히 파룬궁 수련자, 위구르인 등 중국 내 소수집단을 대상으로 국가 차원에서 생체 장기를 적출하는 충격적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알려진 이후 서울시가 영화제 지원 대상에서 락스퍼를 탈락시켰고, 후원처와 상영관도 줄줄이 이탈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탈락 사유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서울시는 ‘자부담률’ 문제를 들었으나 심사에 활용된 서류가 전혀 관련 없는 다른 행사 자료였다는 것이 영화제 측의 주장이다.
심사 시간은 고작 10분, 전문성 있는 위원은 한 명에 불과했고, 작년에 심사를 받지도 않은 영화제에 대해 ‘작년과 PT 자료가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다는 대목에서는 행정 절차에 대한 신뢰성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허은도 락스퍼 영화제 총감독의 지적대로, 이런 부실함이 우연일 수 있을까. 오히려 특정 주제를 꺼린 누군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생긴다.
후원과 상영 거부의 파장도 간단치 않다. 개막작이 언론에 소개되자마자 후원사들이 줄줄이 로고를 빼 달라고 요청했고, 특정 영화를 빼 달라는 요청은 물론 어떤 극장은 중국 관련 영화만 골라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모든 일이 ‘자유로운 문화 행사’를 둘러싸고 벌어졌다는 사실은 표현의 자유가 대한민국에서 실질적으로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국유장기’가 다루는 내용은 불편할 수 있다. 잔혹한 인권 침해, 국가 폭력, 국제 사회의 외면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는 공공의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인권과 정의의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나라라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단지 말할 권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불편한 말도, 불쾌한 진실도 보호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기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사태는 ‘중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자기 검열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 자기 검열을 부추기는 외부의 압력과 눈치보기가 결합된 구조적 검열에 다름 아니다.
이 상황은 대만의 경우와 비교된다. 대만에서도 ‘국유장기’ 상영을 막기 위한 압력이 컸지만, 정치인과 시민이 힘을 모아 끝까지 상영을 해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영화제 하나가 상영 여부를 고민하며 외압과 맞서고 있는 이 사태는 영화 한 편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주권적 판단과 표현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장면이다.
이번 사태가 일회성 논란으로 끝나지 않도록 서울시는 정당한 해명을 내놓아야 하며, 정치권 역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자유는 결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지키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가 더 이상 대한민국을 ‘자유국가’라 부를 수 없는 현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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