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주택 1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구상이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수도권 도심의 유휴부지와 노후 공공시설을 묶어 총 6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큰 그림 속에서 용산은 상징성이 가장 큰 ‘메인 카드’다. “수요가 몰리는 곳에 물량을 박는다”는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같은 부지 안에서 가구 수만 늘리면 주거의 질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이번 대책은 지난해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의 연장선이다. 당초 정부 안팎에서 거론되던 5만 호 안보다 공급 규모를 더 키웠고, 도심권에 집중했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공급은 △도심 유휴부지 활용 △노후청사 복합개발 △신규 공공주택지구 조성으로 나뉜다. 발표와 동시에 개발 예정지와 주변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 투기 수요를 선제 차단하겠다는 장치도 달았다. 다만 시장의 관심은 총량보다 “용산 1만 호를 어떤 방식으로 채우느냐”에 더 쏠린다.
핵심은 ‘늘리는 방식’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원래 6000호 안을 기준으로 도시계획이 짜였고, 서울시는 절충안으로 8000호를 거론해 왔다. 그런데 정부가 1만 호를 밀어붙이면 선택지는 제한된다. 주거 비중 확대, 용적률 추가 상향, 세대 면적 축소가 사실상 세 갈래다. 이 과정에서 학교 부지와 교통·생활 SOC가 압박을 받는다. 공급 숫자를 맞추기 위해 학교 용지를 조정하거나 외곽으로 돌리는 방안이 언급되는 것 자체가 “어린이·가족 생활권을 전제로 한 주거”보다는 “청년·1인 가구 중심의 소형 주거”로 설계가 기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게 현장 반응이다.
‘영끌 공급’ 논란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같은 땅에서 물량을 끌어올리는 순간, 주택 유형이 소형·초소형으로 쏠릴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용산이 “초소형이어도 싸기 어려운 입지”라는 점이다. 교통·업무·상업 기능이 결합되는 핵심지에서 임대료(혹은 부담 가능한 임대료의 상한)가 낮게 책정되기 어렵다면, 면적은 좁고 비용 부담은 큰 조합이 만들어질 수 있다. ‘도심 프리미엄’을 지불하면서도 거주 품질은 낮아지는, 이른바 ‘비싼 벌집’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1인 가구를 둘러싼 인식 싸움도 겹친다. 정부 정책은 청년·1인 가구 공급 확대를 내세우지만, 1인 가구의 증가가 곧 “작은 집이면 충분”을 의미하진 않는다. 재택근무, 장기 거주, 취미·여가 소비 등 생활 패턴이 달라진 상황에서 법적 ‘최소 면적’을 기준으로 한 초소형 공급이 실질적 주거 안정으로 이어지느냐는 질문이 커졌다. “최소 주거면적은 생존 기준일 뿐, 적정 주거 수준과 동일시할 수 없다”는 비판은 결국 용산 1만 호의 설계 철학으로 되돌아온다.
용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변수다. 이번 패키지에는 한 번 표류했던 사업지가 다수 포함됐다. 노원 태릉CC 재추진, 과천 경마장·방첩사 통합개발, 성남 판교 인접 공공택지 등은 절차(평가·이전·보상)와 지역 수용성에 따라 속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발표는 크지만 착공·입주까지 시차가 길다”는 점에서 단기 시장 안정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후청사 복합개발 역시 합산하면 1만 호지만, 개별 사업지는 대개 세 자릿수 규모에 그쳐 ‘체감 공급’이 약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취재 중 접한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 등은 결국 용산 1만 가구가 ‘공급 확대’라는 정책 상징성과 ‘도심 고밀 주거 품질’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시험대에 섰다는 이야기에 힘을 싣고 있는 모습이었다. 숫자를 맞추는 데 그치면 초소형 고밀 단지 논란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커뮤니티에 한 부동산 투자자는 “반대로 세대 면적 구성의 다양화, 임대료·관리비 부담 설계, 학교·교통·생활 SOC 패키지, 공공임대의 품질 기준까지 함께 제시한다면 용산은 단순한 ‘물량 채우기’가 아니라 새로운 도심 주거모델을 보여주는 장이 될 수 있다”며 “지금 필요한 건 1만 호 자체가 아니라, 1만 호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설계도”라고 제언했다.
또 다른 투자자도 “용산 1만 가구냐 8000가구냐는 본질이 아니다. 이 사업은 도시개발 방식이라 지상 연면적의 약 30%를 주거로 쓰는 구조가 고정돼 있다”며 “결국 세대 수는 같은 면적을 어떻게 쪼개느냐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는 “평형을 줄이면 숫자는 늘지만 총 주거 면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실제 시장에서 어떤 상품이 선택되는가”라며 “서울 핵심 입지에서 민간 사업자가 수익성이 낮은 초소형을 대량 공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숫자 논쟁은 정책 메시지에 가깝고, 최종 결과는 시장 논리에 따라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1만 가구냐 8000가구냐’가 아니라, 용산에 어떤 주택이 들어서느냐다. 지금은 숫자 싸움처럼 보이지만, 승부는 ‘얼마나 지었느냐’가 아니라 ‘무슨 집을 어떻게 지었느냐’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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