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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칼럼] 경찰은 구조했나, 고통에 감금했나?
스위스행 폐섬유증 환자 경찰설득에 귀가
죽음을 선택할 권리? 사회적 타살 우려도
“고통을 끝내고 싶지 죽고 싶은 게 아니다”
이상준 필진페이지 + 입력 2026-02-12 10:54:38
 
“나 너무 아파!” 암 말기 환자 상연은 안락사를 결심했다. “아직 시간이 있잖아?”  친구 은중은 스위스행을 말렸다. “더는 아프지 않고, 내가 누군지 아는 채로 죽고 싶은 게,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고 욕심이야?” 은중에게 죽음은 마지막 선택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은 지난해 가을 안락사란 화두를 던졌다. 
 
폐섬유증을 앓고 있는 60대 남성은 가족에게 여행을 간다고 말했다. 가족은 불길한 예감에 112에 신고했다.  “아버지가 존엄사를 위해 출국하려는 것 같다.” 아버지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 달리 동행할 친구조차 없었다. 가족이 유서를 찾아내자 경찰은 비행기를 붙잡았다. 경찰이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아버지는 비행기에서 내렸다. 드라마처럼 극적인 이야기는 9일 인천공항에서 벌어진 실화다.
 
상연과 폐섬유증 환자의 최종 목적지는 스위스였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조력사망(assisted suicide)이란 비상구를 허용했다. 스위스 형법은 이기적인 동기로 타인의 자살을 돕거나 부추긴 경우에만 처벌한다. 한국과 달리 이타적인 동기라면 조력사망을 돕는 게 합법이다. 외국인에게도 조력사망을 허용한 스위스는 죽는 것보다 힘든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마지막 희망이다. 
 
안락사는 환자 요청으로 의사가 약물을 치사량으로 투입하는 죽음이다. 상연과 폐섬유증 환자가 선택했던 조력사망은 의사 도움을 받지만 환자가 약물을 투입한다. 안락사와 조력사망은 한국에서 불법이므로 동행자가 자살방조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선 존엄사로 불리는 연명치료 중단만 합법이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은 자살을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흄은 자살도 자연 법칙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변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흄에게 자살이란 고통이 심할 때 죽음을 선택하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자살을 죄가 아닌 권리로 재정의한 흄 사상은 오늘날 안락사 찬성론자에게 가장 강력한 이론적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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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양 근대철학을 집대성한 임마누엘 칸트(1724~1804)은 자살을 악으로 규정했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칸트에게 자살이란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였다. 이성적인 사람이 이성을 사용해서 스스로 죽는 건 논리적 모순이란 뜻이다.
 
죽을 권리를 허용하려면 얼마나 아파야 할까? 자폐증을 가진 27세 여성은 2024년 캐나다에서 조력사망 승인을 받았다. “딸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던 아버지는 법원에 조력사망 중단 가처분을 신청했다. 조력사망이 미뤄지자 딸은 단식을 선택했고, 생명이 위독해지자 아버지는 항소를 취하했다. 자폐증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허용해야 할까?
 
미끄러운 비탈길은 무섭다. 암 말기 환자를 위한 권리가 우울증 환자를 위한 도피처가 될지도 모른다. 가난에 지친 빈곤층이 합법적으로 삶을 포기하거나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한 현대판 고려장이 될 수도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 사회적 타살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어쨌든 폐섬유증 환자는 발길을 돌렸다. 아버지를 걱정한 가족과 국민을 지켰던 경찰 이야기는 감동을 준다. 하지만 굳어가는 폐는 날마다 끔찍한 통증을 줄 게 뻔하다. 미담 주인공인 경찰이 그를 고통이란 감옥으로 돌려보낸 건 아닐까? 조력사망 문제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무조건 찬성할 수도 무조건 반대할 수도 없는 숙제다.
 
암 말기 환자 조순복씨는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암이 뼈까지 퍼져서 칼로 쑤시는 것처럼 아팠다. 딸은 호스피를 찾았지만 자리가 없었다. 해마다 약 9만명이 암으로 죽지만 호스피스 병상은 고작 1798개다. 너무 아파서 2023년 스위스를 선택했다. “그냥 디그니타스에 가자!” 디그니타스는 조력사망을 돕는 스위스 비영리단체다. 
 
아내가 비상구를 선택할 때 남편은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하지도 못했다. “어디 한 군데라도 성해야 가지 말라고 잡을 텐데….” 조력사망을 앞두고 행복하다던 어머니를 떠올린 딸 남유하 작가는 “고통을 끝내고 싶은 거지 사실 죽고 싶은 게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비상구를 폐쇄하려면 적어도 대기실을 마련해야 한다. 죽으러 가는 사람을 붙잡은 국가는 적어도 아프지 않게 머물 곳을 마련해야 한다. 암 말기 환자 76%는 집에서 죽음을 기다린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과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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