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10-21 07:47
뉴스 > 富동산 > 유통·물류·광고
[기획탐방=강남상권을 가다]-<129>내곡동 헌인가구단지
나환자촌 극과극…권리금 10억 갔던 ‘가구단지 비운’
나환자촌 극과극…권리금 10억 갔던 ‘가구단지 비운’
재개발 여파 거치며 사실상 흉물로…“예전 월세 1000만원, 1/10로 떨어져도 못내”
이경엽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5-11-21 00:05:23
헌인가구단지가 위치한 헌인마을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이름은 근처에 있는 헌인릉에서 따와 헌인마을로 정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이 일대를 ‘음성 나환자’(활동성 임상증후군이 없어지고 증상의 진행이 정지된 환자)를 수용하기 위한 마을로 지정하고 이들을 거주하게 했다. 마을이 만들어 지면서 내곡동에서 유일하게 이 일대만 개발제한구역이 풀렸다. 당시 이곳에 정착한 나환자들은 정부의 배려로 양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양계장은 가구를 만들기에도 적합한 구조였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헌인마을로 몰려들고, 기존 거주민들 역시 가구업을 시작하면서 헌인마을에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가구전문 단지가 들어섰다. 한때 500개의 매장과 1000여개의 공장이 있던 헌인가구단지는 2009년 헌인마을도시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한순간에 몰락했다. 이 마을의 시간은 2009년에서 멈췄다. 지난 2011년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에 참여한 한 업체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스카이데일리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헌인가구단지를 찾았다.


 
 ▲ 이 지역에서 20년째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스산한 분위기 때문에 가구를 구입하러 온 고객들이 가게에 오는 길이나 가게에 들어와서 무서워하기까지 한다”며 “오죽하면 일주일에 서너 개 팔리면 많이 팔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손님이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헌인가구단지 ⓒ스카이데일리

“고급주택단지 아닌 고급가구단지 만든다면 더 큰 이익 볼 수 있을 것”
 
“이곳에는 고급주택단지가 아니라 고급가구단지가 들어서는 것이 더 나았을 겁니다. 시행업체가  판단을 잘못한거죠. 사업을 조금만 세련되게 진행했어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겁니다”
 
17일 기자가 찾은 헌인가구단지는 인적이 드물었다. 철거로 인한 공터가 많았으며, 곳곳에 화재로 인해 검게 그을린 건물도 보였다.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였다. 가구점이 입점해 있는 건물들도 전체적으로 낡고 헐어보였다. 심지어 한쪽이 불탄 건물에서 영업을 하는 가구점도 있었다.
 
이 지역에서 20년째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다던 한 상인은 “매장으로 쓸 만한 건물들은 죄다 철거되고 지금은 공장으로 사용됐던 낡은 건물을 매장으로 쓰고 있다”며 “개발제한구역인데다가 재개발까지 걸려있어 건물을 수선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을씨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가구를 구입하러 온 고객들이 방문을 꺼려한다”며 “오죽하면 일주일에 서너 개 팔리면 많이 팔린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손님이 없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한 종업원은 “논현가구단지에서 200만원이 넘게 팔리는 소파가 여기에서는 60만원에 팔리기도 한다”며 “사람들이 헌인가구단지가 아예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이 종업원은 이어 “한창 때는 500개 넘는 매장과 1000개 넘는 공장이 몰려 있던 최고의 고급 가구 중심지였다”며 “계속 있었거나 재개발 시행업체 쪽에서 생각을 조금만 다르게 했다면 지금도 계속 전성기를 누렸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광고
장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가 건물이 없었다. 인근 부동산의 관계자는 “이 일대는 매물이 없다”면서 “있더라도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아서 가격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한창 전성기에는 위치상 중심부에 있었던 1000평 규모의 가장 크고 비싼 가게가 권리금 10억에 보증금 5억, 월세 1억 정도였다”며 “그 절반 정도 크기인 우리 가게의 경우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긴 했지만 보증금 1억에 월세 1000만원까지 나간 적도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1000평 짜리 가게는 이미 헐려서 없어졌고, 우리 가게는 거의 십 분의 일 가격으로 떨어졌다”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이지만 그마저도 밀려서 못내고 있다”고 말했다.
 
 
 ▲ 헌인가구단지는 한창 때 500개가 넘는 매장과 1000개가 넘는 공장이 몰려 있던 고급 가구 단지였다. 이곳 상인들에 따르면 지금은 장사가 되지 않아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가가 전무한 실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가구단지 내 가구들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한때 잘나가던 가구 상권…재개발 여파 이후 급격히 몰락
 
20년째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상인 역시 과거를 회상하면서 “너무 바빠서 딱 하루 동안 장사를 못한 것이 이야깃거리가 될 정도로 고객이 많았던 상권이었다”며 “1500명이 넘는 용역깡패들이 평화롭던 마을에 들이닥치기 전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되는 동네였다”고 전했다.

그가 전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용역깡패와 집달관이 매장에 들어오더니 1억4000만원어치 가구들을 싣고 가버렸다. 몇 달 뒤 찾아온 가구들은 다 썩어서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았는데 그가 받은 보상금은 겨우 4000만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다른 상인들 역시 억울하게 당한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일어난 방화인지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근에 이 일대에 전혀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증거다”고 답했다.
 
실제 지난 2009년 4월 철거업체로부터 고액의 사례비를 받고 이 일대에 방화를 저지른 일당이 검거되기도 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방화를 저지른 혐의로 임모씨 등 조직폭력배 3명과 시행사로부터 금품을 받고 방화를 교사한 철거업체 대표 방모씨 등 2명이 구속이 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상인들과 마을 주민들은 “시행사가 생각을 잘못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주민은 “주민들에게 정당하게 돌아갈 대가보다 싼값으로 주민들을 내쫓으려고 한 것이 오히려 자신들의 목줄을 죈 격이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최초에 주민들이 요구한 금액안을 받아들였다면 이런 사태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건물을 구입하면서도 내쫓지 말고 계속 소유 부지만 늘려나가다가 한날한시에 퇴거했다면 지금처럼 일부는 영업하고, 일부는 불타고, 일부는 공터인 볼썽사나운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원래 이 마을은 60년대부터 ‘음성 나환자’ 집단 정착촌으로 시작했다. 때문에 이 일대 원래 땅주인은 모두 이 마을 주민들이다. 한 주민은 “마을에 있는 모든 건물의 주인은 이 일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고, 지금은 세월이 흘러 1세대는 대부분 사망했으며, 2세대 혹은 3세대가 주인”이라고 전했다.
 
이곳 토박이라고 밝힌 다른 주민은 “이 마을에 있는 건물 절반 정도는 이미 헐렸고, 건물이 헐린 토지는 시행사에 의해 인수된 토지”라며 “나머지 건물이 남아있는 토지는 아직 인수되지 않고 마을 주민들이 소유한 토지”라고 했다.
  
▲ 헌인가구단지는 인적이 드물었다. 곳곳에 탄 자국을 간직한 건물들이 있었다. 심지어 반쯤 무너진 건물도 있었다. 시설이 낙후돼 전날 내린 비로 물이 새는 가게도 보였다. ⓒ스카이데일리

국정원·서울공항·52사단 한가운데…세곡과 양재 잇는 교통요지
 
헌인가구단지는 고도제한이 심한 지역이다. 서북쪽으로는 국정원, 서남쪽으로는 52사단, 동남쪽으로는 서울공항이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지역처럼 높은 아파트 단지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또 다른 한 주민은 “시행사가 주거 단지를 건설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저층의 고급빌라를 계획했다”며 “만약 인헌마을의 특성을 인정하고 가구공단의 재정비 등을 통해 이곳을 고급 가구단지로 재탄생시켰다면 시행사는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른 상인 역시 “아직도 늦지 않았다”며 “지금이라도 다른 회사에서 시행사가 갖고 있는 토지를 매입해 가구단지를 추진한다면 비록 첫 1년은 큰 손해를 보겠지만 이후로는 커다란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우리은행 등 7개 금융기관이 자신들이 보유한 2000억원 규모 헌인마을 재개발 사업장 관련 대출채권 매각 공고를 냈다. 이미 지난 10월 20일까지 참가의향서를 받았고, 지난 11일까지 일괄 경쟁입찰이 진행됐다. 낙찰자 선정 시기는 이번 달 말이며, 예상대로 절차가 진행되면 계약은 오는 12월 초가 될 예정이다.
 
현재 시행사인 에이알도시개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어떻게 될지 말해줄 수도 없지만, 사실 사업이 어떻게 될지 우리도 잘 모르겠다”며 “다만 사업이 잘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box1#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1
감동이에요
1
화나요
1
슬퍼요
1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50,633 ▶
어제 181,255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