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중 2.7%는 최근 1년 새 가출해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추산한 국내 청소년 인구가 925만명임을 감안하면 약 25만명의 청소년들이 집을 등진 채 거리로 나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동·청소년 전문가들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가출은 보통 1회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해진다. 가정 또는 학교와 거리를 둔 청소년들은 점차 가출 회수가 더해지면서 가출 기간도 길어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가정 혹은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들은 범죄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거나 스스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매 년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거나 혹은 어른들의 범죄에 이용당하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곧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주역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라는 게 여론의 중론이다. 스카이데일리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청소년 가출 실태’를 금주의 이슈포커스 키워드로 선정하고 가출 청소년 실태, 부작용, 해결방안 등을 세 편으로 나눠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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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관악구 신림동은 서울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가출청소년들이 모여드는 장소로 알려졌다. 자연히 이 과정에서 뜻이 맞는 가출청소년들끼리 그룹을 형성해 속칭 ‘가출팸’을 이루기도 한다. 이들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신림동의 명물인 순대타운 일대(사진)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가 이들과 만난 것은 모바일 채팅앱을 통해서였다. 양 군과 김 양이 살았던 곳은 각각 경기도 안양시, 인천시 등이었다. 두 사람은 모바일 채팅앱에서 ‘식사구걸’을 하고 있었다. 식사를 사주는 대가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으나 무언가를 에둘러 말하려 하는 낌새가 보였다. 어른들의 심부름, 나아가 성매매 등을 대가로 지불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두 사람을 수원의 한 식당으로 데려갔다.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 이내 기자 신분을 밝혔으나 두 사람은 아무렇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음식이 나오자 주변 시선은 아랑곳 않은 채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틀을 굶었다고 했다. 이들이 어느 정도 허기를 채운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한 달째 같은 옷, 샤워는 공중화장실…노숙자가 된 10대 청소년들
대화를 나눠본 결과, 두 사람의 가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가출을 경험했다. 양 군은 “처음 가출을 시도했을 때,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 집에 숨어 살았는데, 결국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발각돼 집으로 끌려왔다”고 말했다.
양 군과 김 양은 가출한 후 지난 한 달간 친구집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보통 야간시간 대에 부모님들이 집을 비우는 곳을 이용했다. 가끔 부모님들이 하루 머물 것을 허락한 경우라도 가출 사실은 철저히 숨겼다. 인천·안양 등을 전전했던 이들이 수원에 오게 된 것은 이틀 전이었다.
두 사람은 친구 집을 섭외하지 못했을 때는 노숙 외에 별다른 방안이 없었다고 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이들이 그나마 새벽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은 24시간 운영하는 카페·패스트푸드점 등이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쪽잠을 자야만 했다.
김 양은 “어젯밤에는 음료한잔 시키지 않고 카페에서 쪽잠을 자다가 직원한테 쫓겨나 결국 공원 벤치에서 아침을 맞아야 했다”면서 “그렇게 눈을 뜨고 해가 질 때까지 온 종일 그 벤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가 여기 오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 수원역 로데오거리서 만난 양모 군은 약 1개월 전 집에서 나와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가출한 여자친구와 함께 사실 상 노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양 군은 “이틀 간 굶었다”며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은 가출한 후 함께 생활하고 있는 10대 청소년 양모 군(사진 왼쪽)과 김모 양ⓒ스카이데일리
공원 내 공중화장실에서 씻었다는 이들의 옷은 상당히 낡아 있었다. 소매와 옷깃은 새까맣게 때가 타 있었다. 옷 곳곳에는 얼룩이 묻어 있었다. 여벌옷을 챙기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한 가출이었던 탓에 한 달 째 같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던 것이다.
이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방식은 스카이데일리와 처음 만났던 것처럼 모바일 채팅앱을 통해 구걸하는 것이 전부였다. 친구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바깥에서 생활해야 할 때는 도움의 손길이 나타날 때까지 며칠 굶는 것이 예사라고 했다. 다만 이들은 식사를 구걸하고 난 후 ‘대가’에 대해서는 무엇인가 숨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양 군은 “현재 있는 위치를 채팅앱에 올리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밥을 사주겠다고 연락을 준다”며 “밥과 용돈을 대가로 잠자리를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지만 아직까지는 다들 착하신 분들만 만난 것 같다”고 얘기했다. 옆에 있던 김 양은 “솔직히 누군가 성관계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다”며 미심쩍은 이야기를 넌지시 흘렸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두 사람 모두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이내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지만 두 사람 모두 고개를 저었다. 집에 들어가고 학교에 돌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이 행복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들은 결코 가정으로 돌아갈 수없는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가출 청소년 임시 보호 시설(쉼터) 등에 입소할 것을 권했다.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규율과 통제를 따라야 할뿐만 아니라 집에 연락 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양은 “보통 쉼터는 남·녀 구분이 지어져 있어 지금 이 상태로 쉼터에 들어갔다가는 결국 우리는 이별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된다”며 “남자친구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찾겠다”고 말했다.
이들과의 대화가 무르익을 때쯤 또 다른 17세 청소년(여성)이 합류했다. 양 군과 김 양을 만나기 위해 찾아 온 송모 양이었다. 두 사람이 수원을 찾은 것도 송 양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송 양은 “집에서 오는 길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15세 때 처음 가출을 경험한 이래 수차례 가출과 귀가를 반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송 양에 따르면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 간에는 보통 가출 후 행태를 3단계로 나눈다. 1·2 단계는 양 군과 김 양이 겪은 것들이었다. 가출 후 친구 집을 전전하는 것이 1단계다. 2단계는 더 이상 기거할 곳이 없어 카페, 공원 등에서 노숙하는 것이었다.
3단계는 양 군과 김 양은 아직 겪지 못한 것들이었다.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가출청소년들끼리 모여 함께 모여서 생활하는 속칭 ‘팸(가족의 영어단어인 패밀리의 줄임말)’을 결성하는 게 3단계다. 가출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이를 일컬어 ‘가출팸’이라고 불렀다.
새로운 가족의 출현 ‘가출팸’…낮밤 가리지 않고 돈 벌며 남녀 청소년 함께 동거
스카이데일리는 송 양으로부터 가출청소년들이 서울 관악구 신림사거리 일대에 많이 집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대 지역을 탐문 취재했다. 취재도중 인근의 모텔에서 남녀 청소년들이 합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곧장 그들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가출청소년들이 함께 모여살고 있는 곳은 대로변 중심가의 화려한 호텔·모텔 등이 밀집한 신림동에서도 후미진 골목 어귀에 있는 낡은 모텔이었다. 방문을 노크하자 한 눈에 봐도 앳된 청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 모(15)양이었다. 중학교 동급생들보다도 체구가 작아보였다.
박 양에게 신분을 밝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방 안을 구경할 수 있겠느냐’고 요청하자 “일을 마치고 돌아 온 친구들이 잠을 자고 있어 안 된다”고 말했다.
대화소리를 들은 김 모(17)양도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김 양이 문을 열 때 보인 신발들의 개수로 봤을 때, 방 안에는 3명 가량이 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김 양은 시간이 늦어 모두 자고 있으니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두 사람 설명에 따르면 이들 가출팸의 전체 인원은 총 8명이다. 여자는 두 사람을 포함해 총 3명이다. 경기도 광명시가 집이라는 박 양은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 된 김 양의 소개로 이 팸에 들어오게 됐다. 김 양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온라인 채팅 및 게임 등을 통해 서로 만난 사이다.
박 양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누구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는데 팸에 들어오니 주변 친구들을 가족처럼 의지하게 된다”며 “현재 한 달에 45만원인 모텔 값을 포함해 식비와 생활비 등도 각자 일해서 모은 돈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옆에서 듣던 김 양은 “비록 지금은 싼 모텔을 전전하는 신세지만 월세 보증금 낼 돈이라도 모이면 조금이라도 번듯한 집으로 옮길 계획도 갖고 있다”며 “지금도 3명의 친구가 바깥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으며 방에서 자고 있는 3명도 일을 마치고 돌아와 골아 떨어진 것이다”고 부연했다.
▲ 처음 가출청소년들이 찾는 곳은 친구·친척집 등이다. 가출사실을 숨긴 채 어른들의 허락을 맡아 하룻밤을 청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게 어른들이 없는 집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봉착하게 되고 결국 가출청소년들은 노숙단계로 접어들며 거리 위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사진은 신림역 인근 골목길을 배회하는 청소년들 ⓒ스카이데일리
가출청소년들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하는 곳은 신림사거리 인근에 위치한 식당들이었다. 특히 신림동의 명물인 순대타운에서 많이 일했다. 순대타운은 순대볶음을 주메뉴로 한 식당들이 한 건물에 밀집해 있는 곳을 말한다. 이곳 식당들은 대부분 중·고등학생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 주방·서빙 등의 일을 맡기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대부분의 ‘가출팸’은 이들처럼 낡은 모텔을 전전하거나 신림동 고시촌의 저렴한 원룸텔을 임대해 한 집에 모여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 중 만난 청소년들과 가출을 겪어 본 이들은 대부분 “온라인 등을 통해 당장의 필요성을 이유로 결합된 만큼 이내 갈등이 불거질 경우 해체되기 십상이다”고 언급했다.
대다수의 아동·청소년 전문가들은 ‘가출팸’이 범죄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돼 있는 점을 지적했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집단을 이뤄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며, 또 어른들의 범죄 행위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박 양과 김 양 등이 속한 가출팸의 경우도 이미 범죄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숙박업소 출입은 금지돼 있다. 혼숙 또한 금지다. 아이들의 노동력을 제공받는 업주들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가출청소년들은 “순대타운에서 별도의 동의서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속이 미흡하다보니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급액으로 아이들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업주들이 가출청소년임을 알면서도 채용해 쓰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김기남 회장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섞인 ‘가출팸’ 생활을 하면서 정상적인 고용시장에서 생산적인 일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더욱 심각한 문제는 돈을 벌기 위해 가출팸 자체가 하나의 불법적인 범죄집단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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