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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수가 봄맞이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3일 간 열린 진달래 축제에만 무려 19만 명 이상 방문하는 등 행락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여수는 젊은 층 사이에서 감성적인 여행지로 통한다. 가수 장범준의 노래 ‘여수밤바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여수하면 밤바다라는 공식마저 생겼을 정도다.
여수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볼거리도 늘었다. 해상 케이블카부터 벽화마을, 낭만카페 거리 등이 대표적이다. 돌산대교를 중심으로 펼쳐진 운치있는 야경과 저렴한 가격에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은 여수 여행의 장점으로 손꼽힌다. 기자는 10만 원만으로 최근 유행하는 ‘나 홀로 여행(혼여)’에 동참해보기로 했다.
무궁화호에 몸 싣고 훌쩍 떠난 혼여…6시간 이동 끝에 만난 여수의 ‘봄’
여수 취재가 결정된 직후 기자는 들뜬 나날을 보냈다. 3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여수행 기차를 타기 위해 용산역으로 향했다. 저녁 10시45분 출발 기차에 몸을 실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처음 야간열차를 타고 떠나는 나 홀로 여행인 탓이리라. 여수로 가는 동안 10만원으로 알차게 여수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동경로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서울을 떠난 지 5시간 30분이 지나 마침내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했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역에서 내려 인근에 위치한 찜질방으로 향했다. 4시간의 짧은 취침 후 찜질방을 나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돌산대교 근처 식당을 찾았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거리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서울에선 아직 볼 수 없었던 벚꽃이라 더욱 반가웠다.
인근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벌써부터 적지않은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수에서 열린 ‘여수영취산진달래 체험행사’를 찾은 봄맞이 행렬이었다. 대부분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였다. 기자처럼 혼자 여수를 찾은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여수에 오면 필수로 방문해야 한다는 오동도의 명성을 확인하고자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를 타고 오동도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내리자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한껏 고조된 분위기가 전해져 왔다.
오동도에는 차량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길을 따라 오동도로 걸어가거나, 오동도 안에 있는 열차 식 버스 혹은 자전거를 이용했다. 자전거를 타고 싶었지만 10만원으로 여행을 마무리 지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10분가량 걸어가자 만개한 벚꽃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설렘이 가슴에 꽂혔다.
오동도에 있는 등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마다 벚꽃, 진달래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펼쳐져 있었다. 등대에 올라가면 오동도의 전경을 확인할 수 있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오동도 주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일상에 치여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한 풍경이다.
10만원 여행의 위기…벽화마을에서 만난 또 한명의 나 홀로 여행객 ‘스테파니’
오동도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오후 1시가 가까워졌다. 허기짐을 느끼고 오동도를 나와 게장 맛집이 몰려있다는 ‘게장거리’로 향했다. 점심시간임을 감안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대기줄이 늘어서 있다. 기본 30분은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15분 정도 기다리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음식점에는 2인 이상을 위한 메뉴만 있었고 혼자 온 여행객을 위한 메뉴가 없어 입장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여수까지 왔는데 게장도 못 먹고 돌아갈 순 없었다. 아쉬움에 한참을 설득한 끝에 겨우 메뉴판에도 없는 1인 게장정식을 1만2000원에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여수 게장만의 특별한 맛을 느낄 순 없었다. 맛이 없진 않았지만 서울 어디서든 먹어볼 수 있는 그런 흔한 게장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여수 벽화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제 여수 벽화마을과 낭만카페 거리에는 젊은 청춘들이 많이 찾고 있었다. 여수에는 ‘낭만포차’, ‘낭만카페’ 등 ‘낭만’이라는 단어로 영업하는 가게들이 많았는데, 사실 그냥 ‘낭만’이라는 단어만 붙일 뿐 큰 차이점은 없었다.
벽화마을에 도착해 한참을 둘러보다 처음으로 나 홀로 여행객을 만났다. 그런데 혼자 열심히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그 여성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여기 벽화 진짜 예쁘네요. 혹시 사진 한번 찍어줄 수 있나요”라며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져왔다. 어려운 부탁이 아니기에 선뜻 수락했다. 여수 바다를 배경으로 그녀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몇 장 찍어줬다.
한국인 어머니와 호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그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스테파니’라고 소개했다. 언뜻 보면 혼혈이라고 생각이 안 드는 외모여서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호주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시간을 호주에서 보냈고, 올해부터 교환학생으로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벽화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낭만카페 거리에 도착했다. 사실 낭만카페는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10만원에 여행을 마치기에 커피는 사치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스테파니였다. 카페와 풍경이 예쁘다며 카페에 가보자는 물음에 거절할 수 없었다. 풍경만 예쁜 게 아니었다. 그녀도 예뻤다.
사심은 없었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여행객과 이렇게 대화하는 경험이 처음이라 들뜬 기분이 들었다. 스테파니는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한국어를 가르치셔서 그런지 한국어도 상당히 능숙했다. 서로 혼자 여수로 여행 온 이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다양한 얘기가 오갔지만 여수밤바다를 보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싶다는 건 공통점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니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무궁화호 열차는 8시 출발 예정이다. 더 늦기 전에 여수밤바다도 보고 저녁도 먹을 겸 돌산대교로 향했다. 스테파니와 함께였다.
돌산대교 인근에 도착하니 해가 거의 지고 여수의 밤바다가 펼쳐졌다.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긴 줄이 늘어선 가게가 눈앞에 보였다. 해당 가게주인은 평소 여수밤바다를 부른 가수 장범준이 방문하면 손님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마침 이날 장범준이 가게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정해놓은 곳은 없었으니 길게 늘어선 줄을 뒤로하고 다른 음식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수밤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니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평소라면 달랐겠지만 10만 원 한도 내에서 여수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던 터라 1인당 1만5000원짜리 회무침조차 만만찮게 다가왔다. 하지만 앞에는 스테파니가 있었고, 10만 원 여행은 그 순간 포기했다.
음식 값의 절반은 스테파니가 지불하긴 했지만 최종 여행비는 결국 12만원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스테파니는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했고, 열차시간도 다가와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해 서울행 무궁화호에 올라타 자리에 앉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결과적으로 10만 원으로 여수 여행하기는 실패했지만, 봄을 맞아 떠났던 나 홀로 여수 여행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여수의 수많은 꽃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 그간 지쳤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었다. 처음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나 홀로 여행을 마무리하며 어느새 다음 여행지를 고민하는 나를 찾아볼 수 있었다.
[나광국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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